삶이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는 그 불완전함마저 사랑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언제쯤 가을이 올까 했는데,
하늘은 부쩍 높아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돈다.
하지만 나는 별안간 여름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아이들 개학하자마자, 일 순위로 잡혀 있던
일정이 어머니 모시고
대학병원에 동행하는 일이었다.
CT촬영, 피검사, 심전도 검사를 마치면
심장혈관흉부외과, 심장내과, 정형외과 등을
돌면서 진료를 받고 약까지 받아 온다.
몸이 크게 힘들 건 없어도
병원이란 곳은 왠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니
일정을 마치고 귀가할 때쯤은 괜히 피곤하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어머님을 모셔다 드린다.
며느리 고생한다며.
손자들 용돈과 주유비 명목으로 현금을 또한
챙겨주시는 어머니다.
갑자기 생긴 현금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냥 귀가할까 하다가
어머님댁 근처에 새로 생긴 과일가게를 발견했다.
바구니에 야채와 과일을 담아 놓고 파시는데,
요즘 과일값 같지 않게 수량대비
가격이 무척이나 저렴하다고 느껴진다.
기분 좋게 딱딱이 복숭아와 포도를 담고
피망과 가지도 더 샀다.
그것만도 두 손이 무겁다.
집에 오자마자 물건을 정리하고,
큰 일 한 것도 아닌데 허기가 져서
허겁지겁 복숭아를 닦아 깎는다.
살 때 복숭아에 거뭇한 작은 흠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찍힌 상처 같았다.
도려내고 먹으면 되겠거니 싶어 샀기에
전혀 거슬릴 것이 없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깎아 내고 한 입 베어 무는데,
입 안에 복숭아 향과 과즙이 한가득이다.
복숭아 맛이 이렇게도 좋았던가 놀라울 정도로.
내가 고른 과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맛이 이렇게 좋은데, 어쩜 그렇게 저렴하게
파셨을까 생각해 보니, 복숭아 군데군데 보였던
바로 그 찍힌 자국 같은 것 때문이겠다 싶다.
하지만 그 상처는 보기와는 다르게 깊지 않았다.
깔끔하게 도려내고 깎아보니 최상품 복숭아였다.
끝나가는 여름 나절에
그렇게 나는 복숭아 맛에 홀랑 빠져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게 된 것이다.
복숭아에 보이는 작은 흠이 크게 보여
만약 그 복숭아를 사지 않았더라면
결코 맛보지 못했을 복숭아의 참맛과 향기,
'육각형 인재'라 하며 사람도 인생도
흠 하나 없이 더욱더 완벽해지기를 꿈꾸는 이때에
나는 흠이 있어도 달달한 향기나는 복숭아 같이
과즙 풍성하게 터지는 내 인생을 생각했다.
하나에 빠지면 주변 못 보고,
직진하는 성격에 다소 외골수적이지만
그 불완전함까지 껴안을 수 있는
내 나름의 참맛과 향기 풍기는 인생이고 싶었다.
이 여름 끝자락에 만난 복숭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