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은 경계선 위에 있다.

by 엘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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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신앙을 동경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이 강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나의 취약점을 메꿔줄 수 있다 판단되는

그 무엇은

언제든지 나에게 '신앙'이 될 수 있다.


오직 하나여야 한다는

'유일신'에 대한 교리는 차치하고

아주 일반적인 세속적 신앙에 대해 묻는다.


나를 지탱해주는 그 무엇,

그 무엇을 위해 인간은 언제나

믿고 싶은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옛부터 그래왔다는 관습에서부터

신을 탄생시킨 신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신적 나약함을 파고 든건

언제나 신앙이었다.

아주 작고 사소하다 싶은 믿음조차

신앙적 욕망의 발현이다.


그저 따지고 묻지도 않고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그리 해야한다는

강요는 믿는 사람도 속편하게 한다.

맹목적으로 믿기만 하면 되니,

속 시끄러울 일도 없고 평온하다.

하지만 그 평온은 가짜다.

자신이 일궈낸 신앙이 아니다.

내가 일궈낸 신앙은 일상 속에서 그 형태를

그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텐데

그저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신앙은

아주 잠시 우리를 스쳐지나갈 뿐이다.

몇 번 해보고 이건 나에게 맞지 않는다며

아무 죄책감 없이 손절한다.


하지만 받아들인 후에 나의 것으로

새롭게 재탄생 시키는 사람의 신앙은

처음에는 나약하고, 상처투성이에

보잘 것 없지만 결국 자신도 모르게 몸에

베어버려서 어쩌면 나중에는 인이 박히겠다.


내가 찾은 새로운 신앙,

바로 글쓰기 이야기다.

동경의 대상이 되는 작가님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하지만 그 동경은 조심스럽다.

그의 글솜씨를 예의주시하며 모방하고,

다시 모방을 넘어 나의 글에 녹여낸다.

'수령'을 찬양하는 동물농장의 양떼들처럼

속이 빤히 보이는 맹목적 합창을 혐오한다.


"우리는 보는 자이면서

또한 보이는 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내면에서 신을 발견해야 한다."

<블리스로 가는 길>, 조지프 켐밸


속해 있으나 속하지 않은 사람,

빠져들지만 빠지지 않은 사람,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

배우지만 배우지 않는 사람,

언제나 경계선 위에서 왔다갔다 하며

외줄을 타는 사람.


나는 강한 신앙을 동경하는 나를

언제나 경계한다.

내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곧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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