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

by 엘샤랄라

집이 없었어도 올라오실 할머니시지만, 그래도 또 새로 집을 지었다니 겸사겸사 시골에서 할머니가 올라오셨다. 아버지의 어머니, 나의 친할머니 임순심 씨다. 아버지와 다른 성을 가진 할머니인데 할머니의 그 성씨에 나도 모르게 묻어놓은 애착은 훗날 내가 결혼하게 될 남자의 성씨에 자연스레 투영되었다. 아버지에게도 할머니는 고향이었지만, 나에게도 할머니는 고향이다. 전라남도 목포 여객터미널에서 그 시절만 해도 두세 시간은 배를 타고 더 들어가야 있는 장산도에서 할머니는 굴도 캐고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는 참으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자주 뵙지는 못했어도 언제나 이 사람은 나의 할머니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할머니가 올라오시는 날은 축제나 다름없다. 그 먼 길을 그냥 오시는 법이 없다. 보따리가 양손에 들리려면 두 개 정도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 기억에 할머니 보따리는 결코 두 개가 아니었다. 큰 보따리를 열면 그 안에서 나오고 또 나오는 시골냄새, 시골 바다 냄새까지 더하면 할머니 힘으로는 결코 들 수 없는 무게였다. 할머니가 찾아오실 수 있는 계절은 보통 가을 추수가 끝나 쉴 틈 없는 농사일에 조금이나마 시간을 허락하는 그즈음이다. 추워지기 시작해서 굴이 나는 바로 그 계절에 할머니는 이삼 년에 한 번씩 도시로 올라오시곤 하셨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니의 보따리를 엄마가 풀기 시작한다. 나는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몸에 좋은 것,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이 한가득이라는 것쯤은 안다. 그래서 옆에서 기웃거린다. 무거운 건 웬만해서는 소포로 보내주셨지만 들고 오시는 것도 많았다. 여름 내내 씨알 굵게 키운 고추를 바닷바람에 바짝 말려 직접 찹쌀을 풀어 쑤어오신 고추장이 일등이다. 할머니 고추장에는 엿기름이 가득이라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는 달달한 편이었기에 이것저것 양념할 것 없이 할머니 고추장만 있으면 웬만한 음식은 거뜬하게 그 자리에서 뚝딱 해결할 정도다. 고추장 뚜껑을 열고 한 주걱을 퍼서 너도나도 손가락을 내민다. 저마다 손가락을 쪽쪽 빨며 쩝쩝 맛을 본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할머니 고추장이다.


무거운 순서대로 하면 다음은 참기름이려나. 모두 할머니가 손수 키운 우리 농산물로 만든 것들이니 그 구수한 냄새가 어디 비할 데가 없다. 그때는 그 냄새를 알았으려나. 아이 키우면서 음식을 해보니 아련하게 그 진하디 진한 냄새가 기억 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랬구나, 간장에 할머니 참기름 몇 방울 톡톡 떨어 뜨려 비벼 먹기만 해도 맛있는 이유가 있었고, 참치 넣고 할머니 고추장과 참기름 톡톡 넣고 비벼 먹기만 해도 맛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먹지도 않는 그 간장밥과 고추장참치비빔밥이 별다를 것 없는데 별다르게 맛있던 이유를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할머니의 보따리 부피를 키운 건 사실 다름 아닌 고사리가 주범이다. 바닷바람 맞은 고사리를 봄철에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시며 뜯어 놓고 푹푹 삶아서 한가득 말려 놓으신다. 말린 것들은 수분이 모두 빠져 가볍기 짝이 없지만 그 가벼움이 지닌 향은 눅눅한 무거움이다. 야생에서 자란 고사리는 집 근처 시장에서 파는 것과는 또 달랐다. 물에 불려도 그 굵기가 결코 굵지 않으니 언뜻 보면 퉁퉁 불은 우동면발 같은 시장 고사리가 더 좋은 것 만 같다. 하지만 그 고사리는 입 안에서 힘없이 흩어지기 바쁘나, 할머니 고사리는 잘근잘근 씹어 먹으며 늦게까지 향을 느끼며 먹을 수 있었다. 엄마가 한참을 불려서 삶았다 하였는데도 힘이 남다르니 역시는 역시라며 중국산이 아닌 국산, 그중에서도 할머니 고사리만 찾게 된다.


시골 농사로 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다부지게 움직이시는 터라 군살하나 없이 볕에 그을린 할머니의 보따리를 무겁게 만드는 절정은 투명한 페트병에 담긴 굴이었다. 석화를 캤다고 꺼내셨는데 껍데기는 없고 알맹이만 그 큰 소주 페트병에 가득 담겨있다. 자연산이다. 땅에서 감자를 캐듯이 벌에 나가서 그렇게 하나하나 캐셨을 게다. 패류란 무릇 알맹이 하나 먹으려면 그 알맹이를 위, 아래로 감싸고 있는 껍데기를 벗기는 게 우선인데 제 몸보다 서너 배가 더 큰 껍데기를 제하고 알맹이만 모아 놨으니 도대체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서 그 굴을 캐신 것일지 지금 생각하면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그걸 모르고 나와 동생은 할머니 주신 굴을 그릇에 담아 휘리릭 헹궈서 초고추장 묻혀 숟가락으로 푹푹 신나게 퍼먹었다. 껍데기 하나하나 까는 노력 없이 너무나 쉽게.


그 섬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먹먹한 바다와 논뿐이고, 종종 낮은 언덕배기가 드문드문 자리했다. 차도 사람도 많지 않은 그곳은 개가 짖고, 개구리가 울고, 귀뚜라미 소리만 난다. 해가 지면 사방이 깜깜해지는데 나는 지금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가늠이 안된다.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간신히 내가 눈을 떴구나 알아차린다. 한시도 쉬지 않고 지켜보는 태양에 코를 간질거리는 바람맞아가며 하루의 대부분을 그렇게 자연 속에서 보낸 할머니의 살은 결코 하얗지 않았다. 그렇다고 까맣지는 않았고 그저 나무줄기를 감싼 껍질 같은 색이었으며, 세월이 흐를수록 피부결 또한 나무를 닮아가는 모양새였다. 그런 할머니와 달리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발등이 사골국물 마냥 뽀얬으니, 할머니는 오실 적마다 내 발등을 보드랍게 만져주시며 참으로 예쁘다 예쁘다 해주시는 분이었던 거다. 나 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 발등을 어찌나 예쁘게 바라봐주시는지 앞으로 헤쳐 나갈 수많은 일들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어쩌면 나는 그때 다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에게 사랑은 발등 같은 것이고, 발가락 같은 것이고, 나 자신도 거들떠보지 않을 곳을 봐주는 그런 눈빛이고 싶은 거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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