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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나를 욕망하길 멈추다

by 엘샤랄라

"알맞은 정도의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다만 도를 넘어서면 소유가 주인이 되고,

오히려 소유하는 자가 노예가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평소에는 잘 입지 않을 정장 한벌이 눈에 들어온다. 정장 입을 일이 많은 건 아니지만,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번 보기 시작하니, 멈출 수 없다.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있어야 한다. 고심 끝에 결제한다.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주문 시에 제작이 들어가는 상품이라 배송이 늦어지는 제품인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무도 욕망하던 그 순간의 나와 막상 물건을 받아 든 나는 극명하게 다르다. 욕망하던 순간의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욕망의 불씨가 소유하는 순간 꺼진다는 걸 알고 때로는 장바구니에 묵혀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열어보면 별 것도 없다. 내가 왜 이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았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욕망하는 물건의 대상은 아이의 교육용품으로 바뀌었다. 나를 위해 사는 물건은 몇 차례 고심하게 되지만, 아이를 위해 사는 물건은 몇 백만 원이 우스웠다. 그렇게 해서 들이기 시작한 물건들이 전집부터 교구, 때로는 주말 교육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얼마인지 모른다. 이 교구들로 아이들과 놀아줄 생각을 하니 신이 난다. 교구가 도착했다. 이리저리 공간이 채워진다. 제법 잘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내 몸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질 않는다. 육아하고, 일하고, 육아하고, 일하며 나의 체력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려니 인내심과 지구력 또한 빠르게 소진되는 것을 느낀다. 아이는 더 놀자 하는데, 되려 내가 마무리 놀이 하자며 성화다.


두 아이는 이제 모두 초등학생이다. 올해 5학년과 2학년이 된다. 가끔씩 동네 문구점과 다이소에서 소소하게 필요한 것들을 사긴 해도 예전처럼 몇백만 원씩 쓸 일은 없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동네 공원에서 뛰어노느라 바쁘다. 각종 스포츠와 놀이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단다. 칼바람이 불어 손이 꽁꽁 얼어도 추운 줄 모른단다. 놀 시간이 부족해서 언제나 아쉬울 뿐이다. 경찰과 도둑, 물귀, 스무고개, 가족캠핑놀이 등등. 주변 아파트 단지들의 놀이터를 섭렵해 가며 논다.


책은 동네 도서관과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여 빌려오고, 교구는 더 이상 살 일이 없다. 아이들 어렸을 때 되려 돈이 더 나갔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물건으로 아이를 키우려 하다 보면 그 욕망은 채울 수 없다. 프로그램으로 키우려 하다 보면 또한 그 욕망은 채울 수 없다. 물건에 대한 욕망은 줄었을지언정,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 생각에 배웠으면 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생산되는 세상이다. 부모의 하루도 24시간, 아이들의 하루도 24시간이지만, 절제할 줄 모르는 욕망은 24시간을 끝없이 활활 태우도록 부추긴다. 아이가 둘이면 그 욕망은 배가 된다. 이성적인 잣대로 들이대는 계산법에 따르면 성별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니 제공되어야 할 것들도 모두 배가 된다. 이를 위한 자원은 두 배 그 이상이 필요하다. 둘이 벌어 자신들을 건사하고, 아이들까지 한 사람당 기본 두 명씩 챙기고, 거기에 더해 양가 부모님들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이를 더 못 낳는다.


계산법을 바꿔야 하는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다 글쓰기 모임을 하고 함께 귀가하던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혜안을 얻는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사과가 하나고, 아이가 둘이면 나눠 먹으면 되지."


남편은 여전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의 사업체라 시간조절이 유연하다. 나는 수업을 줄였다. 아이들과 남편에게, 그리고 또한 나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식탁 앞에 온 가족이 모여 밥 먹는 시간이 늘었다. 뉴스를 보는 아빠에게 큰 아들이 뉴스는 잠시 끄고 자신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자고 한다. 아들의 제안에 아빠는 바로 보던 뉴스를 끈다. 아들과 딸은 경쟁하듯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밥그릇은 비워지고, 눈가에는 웃음이 진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또한 열심히 하루를 살았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몰려온다. 함께하는 시간으로 서로가 더 끈끈해진다. 혈육이라 하여 부성애, 모성애가 저절로 넘쳐나는 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젖먹이고, 기저귀 가는 시간을 지나, 손잡고 놀아주고, 커서는 속 깊은 대화로 마음을 나누며 마일리지를 쌓아나가면서 아이도 부모도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이 생긴다. 그 애틋함으로 공부도, 일도 신이 나서 하게 된다. 아이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성장한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다. 더 질적인 시간을 보내고자 욕망한다. 더 해주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되려 그 심리를 역이용한다. 절제의 선을 그어 주었을 때, 그 안에서 방법이 생겨난다. 어떻게든 찾게 되고 하게 되며, 더 하고 싶어지는게 사람 마음이다. 방법은 있다. 또한 적절한 수준 안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외부 자극은 결코 끝이 없다. 한 번의 결심으로 이겨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함으로 건강한 부모가 되기위해 평생 배우고, 적용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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