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I'm not judging."의 태도가 깔린 사람

by 엘샤랄라
필사백-Day_61-001 (2).png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다. 모임의 인원은 나 포함 4명이다. 책과 글, 그리고 수다가 있는 모임이다. 모임 구성원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다. 모임을 이끌어가는 특정한 형식은 없다. 그저 자유롭게 논제를 꺼내고 그 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한 번 만나면 꽤나 오랜 시간 대화가 이어지지만, 지루할 새가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화가 길어지면 피곤할 법도 한데,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면 나는 되려 에너지가 샘솟는다. 그 이유가 뭘까.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I'm not judging."


자신의 의견을 상대방에게 제시함에 있어서 그 어떤 도덕적 혹은 비판적 평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자 할 때에 쓰는 표현이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중립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있으며, 또한 당신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내포한다. 당신과 당신이 처한 상황을 결코 비하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을 대놓고 밝히는 말이다. 물론 상대방이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임의 특징들을 두루두루 살펴본다. 모임들의 공통점은 그 안에서 만큼은 내가 '나'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무얼까. 바로 'I'm not juding."의 태도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는 믿음이 드는 곳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제는 이 십년지기 대학 친구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이제는 함께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된 우리다. 우리는 얼마 전, 개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 만나 키즈카페에서 놀기도 했다. 그때 친구는 다른 대학 동창 두 명과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덕분에 동창들 소식을 또한 건네받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이십 대의 추억이 소환되었다. 무척이나 자유분방했던 기억이 선명한 두 친구들이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훌쩍 여행을 떠날 듯 이십 대를 보내는 친구들이었기에 자연스레 결혼 생활도 궁금했다. 결혼은 했지만, 또한 '이혼'을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서 -그 이유가 꼭 부부의 성격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유분방한 삶을 위해-그런 근황을 친구에게 슬쩍 물었다. '잘 살고 있지~'하며 대화는 편하게 흘러갔지만, 지나고 나니 별 시답잖은 것을 다 물었다는 생각에 나 혼자서만 영 찜찜했다. 그래서 어제 친구에게 그때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이야기를 꺼낸 연유를 이야기하며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친구는 대뜸 이야기한다.


"하하하, 그때 이야기하고 나는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오래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머릿속에 또 한 번 떠올려본다. 'I'm not judging you."라는 문장이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을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저 이유라면, 나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면 되겠다 싶다. 꼬장꼬장하게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비치지 않는 자가 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