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었는지 돌아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두 아이 낳고 한 달 뒤,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기다리고 있을 학생들 생각에 바로 수업을 했다.
남편이 도와주기도 많이 도와줬지만,
또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비몽사몽에 첫째도, 둘째도 챙겼던 기억이다.
부기도 덜 빠져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앞섰지만,
세상모르고 젖 달라 우는 아이 앞에서
망설임은 사치였다.
나름 학창 시절 때부터 부지런히 시간을 계획하며
'열심히 한다'라는 패턴이 몸에 익었다 생각했는데,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밤늦게까지 일한다는 건
차원이 다른 '근면과 성실'을 요했다.
이대로 쭉 잠들 수 없을까를 수십번 외쳤다.
눈 떠야 하는 다음 날이 두려움이었다.
낳는다고 저절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키우면서 부모로 아이와 함께 부모가 되어갔다.
새벽부터 오전 그리고 점심시간까지
아이를 케어하고 나면,
어느새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이다.
보통 4시 이후다.
더 나른하고 쉬고 싶은 그때에
11시가 넘어서까지 수업을 해야 했다.
일을 마치고 누군가는 정리를 시작하는 그 시간에
되려 나는 일을 시작해야 하다니,
누군가는 온전히 쉼을 허락하는 주말에
되려 나는 빡빡하게 수업을 해야 하다니,
실체도 없는 그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시간 맞춰 와 주는 학생들이 있고,
생글생글 웃으며 나만 바라봐주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남편이 보였다.
출산한 지 얼마 안돼서 몸이 땡땡 부어있었지만,
그런 나의 초췌한 몰골과 상관없이
수업을 지속해 주었던 그때 그 제자들,
출산 후 한 달을 꼬박 기다려 준 학부모님들,
그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나는 또한 몸을 일으켰다.
포기하고 울고 싶었지만,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버텨온 시간들이 쌓여서
어느덧 강사생활도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어떻게 그 힘든 시간을 이겨냈나 돌이켜 보면,
결국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