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

by 엘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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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만남으로 '신분 상승'을 목적에 둔 일은 없다. 그저 사랑했으므로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식을 치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나'사는 이야기가 아닌, '남자'와 사는 이야기를 들어도 너무 자주 듣게 되면서. 그녀들은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 있는데, 나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 주말 아침 느지막이 침대에서 그와 널브러져 나뒹굴기도 힘들었다. 주말이라는 이유로 아침 9시부터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 '헛똑똑이'인가 싶었다.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다. 비서가 회장님과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틱한 사건 따위, 또한 한낱 궁녀가 왕과 눈이 맞아서 승은을 입는 일 따위 나는 애초에 기대한 바 없었다. 결혼을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혹은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저 사랑했으므로, 이제는 한집에 살아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 생각했기에 당연히 다음 수순으로 순순히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었다.


집이 필요했다. 세간살이가 필요했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가 생겼다. 완전히 독립하겠다고 결혼식을 통해 당당히 선언했는데, 이제 와서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에는 우리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즈음 시작한 남편의 사업은 어찌 잘 되겠나 하는 희망의 싹도 보이지 않았다. 그 씨앗을 위해 나는 움직여야 했다. 나 혼자 살겠다 떠날 수 없었다. 그의 곁에 머물러 주기로 했다.


'곁에 있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연애 때야 사랑으로 맞춰준다지만, 결혼하면 조금씩 본색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공부만이 살길이라 생각하며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생활을 해 온 사람이고,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사업수완으로 학자금을 벌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나는 무던했고, 그는 예민했다. 신혼 때-지금은 나아졌다-, 설거지를 하면 나는 어디 하나 허술했다. 분명히 한다고 했는데, 사각 반찬통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구석에는 기름때가 그대로였다. 반면에 그는 나보다 꼼꼼함으로 설거지 하나를 해도 시간이 두 배나 걸렸지만,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 가끔 욱하는 기질에 여기저기 모가 나서 뾰족하고 보수적인 천상 한국 남자였어도 나보다 섬세한 남자였다. 성격이 달랐다.


나는 안보는 드라마를 그는 즐겨본다. 다독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는 한 권을 읽더라도 꼼꼼하게 읽는다. 나는 내 관심 분야에서는 아는 것이 많아도 그 외의 분야에서는 바보 같지만, 그는 두루두루 아는 게 많은 재주꾼이었다. 나는 한 가지 방법만을 계속 쓰는 사람이지만, 그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는 사람이었다. 여행을 가도 나는 그냥 출발이 먼저인 사람이지만, 그는 이왕이면 미리 계획해서 출발하는 사람이었다. 취향이 달랐다. 그런 성향인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조금씩 양보하며 서로의 곁에서 맞춰나갔다. 맞춰주며 곁에 있어 주었다.


그렇게 '곁에 있어준다'라는 사실에 대해 나는 종종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배려를 당연시하게 되었다.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서운한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고마움을 망각함으로 관계에 서서히 금이 간다. 결국 부딪히게 된다. 꽝꽝 부딪혀보면 다시 알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그를 잠시 오해한 사이 그는 그저 나의 '곁에 있어주기 위해' 단지 그 하나를 위해 무진장 애태우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음을. 머리가 나쁘고, 관심사에서 벗어난 일에 신경이 무뎌 보지 못한 나의 탓이 크다.


그렇게 나는 그의 곁에서, 그는 나의 곁에서 지금까지 머물러 주고 있다. 그 사실이 결코 '당연(當然)'하지 않다는 사실을 시간에 새기는 깨달음을 주려고, 우리는 참 먼 길을 돌고 돌아 함께 걸어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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