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에 결혼해서
30살에 아이를 낳고
이후 근 10년 동안, 나는 정말 오직
나의 시간을 두 아이 양육에 쏟아부었다.
두 아이 양육에 쏟아부었다는 말은
그저 물리적으로 아이를 케어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온 정신을 쏟았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때에는 집 근처 도서관에서
중, 고등학교 때에는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학부 때에는 학교 도서관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주로 사서 읽었다.
공부하다 힘들고
사회생활 하다 힘들고
아이 키우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저 붙잡고 매달린 건 책이었다.
오직 나를 향상시키고 의지가 되는 대상이
책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에는
막상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책에 쓰인 작가의 블로그 주소를
기웃거렸고, 그렇게 하나 둘 그들에 대해 알아갔다.
그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는 온라인 세계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나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이며 신문이며 가리지 않고 읽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세상은 나에게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쩌면 이전부터 항상 읽어왔기 때문이었겠다.
읽고 또 읽어 왔던 시간들이 어떻게 엮여서
나의 삶에 그 모습을 드러낼지 나는 알지 못했고,
그저 마냥 좋아서 읽었을 뿐인데
이제는 그 시간들이 글로 엮인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의 전환은 순식간이었지만,
어쩌면 나는 십 대 시절부터 이미 나의 운명을
닦고 있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문장을 다듬고, 다시 다듬어서
더 정교하고 분명하게 나의 생각을 오롯이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몸부림은 칠지언정
무언가 끼적이며 쓰고 있는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중학교 2학년, 세 명의 친구들에게 시를 선물하며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었던 일,
몇 번의 퇴고를 거쳐 과학독후감을 써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일,
시험 답안지에 쓴 짧은 글짓기로
학년 선생님들에게 주목을 받았던 일부터
써야만 하는 운명은 이미 나를 지배해 왔다.
그리고 오늘, 그런 나의 작은 재능을 알아봐 주고
잘 쓰든 못쓰든 쓰기 위해 새벽을 깨운다.
쓰는 인간으로 전환하여 살고 있는 이 삶이
그저 한 땀 한 땀 모여서 또 어떤 운명을 그려낼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즐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