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문장 속에서 훌륭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대구를 이룬다.
하지만 공통점이 보인다.
둘 다 사람이 중심에 있다.
'훌륭하다'라 평가받는 사람은 아무래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람의 잘못은 어쩌면 우리에게 일으키는
반향 또한 마땅히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적인 평가는 후대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당장 그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언정
실수를 저질렀다면 그 평가는 냉혹하다.
높은 기대, 복잡한 사안에 따른 결정의 어려움,
과도한 압박,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야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겠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속절없이 생을 마감하는 일이
너무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잘못의 시시비비를 가리되, 사람은 살려놔야 할 텐데.
평범한 사람이라고 살아가는 일이 결코 녹록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 살아간다.
가볍게 주고받는 칭찬 속에서
어쨌든 서로 웃으며 기운을 얻는다.
니체가 말한 '평범한 사람의 진실'이다.
진실한 마음과 애정을 담은 말은
'나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 느끼게 해 준다.
올해 5학년이 된 아들은 요즘 부쩍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이 좋아도 너무 좋은 티가 팍팍 난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이 학교에서 해주신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하고 있다.
일례로, 선생님께서는 뭐든지 잘하시는데
수영을 기가 막히게 하신단다.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고, 필리핀에 갔는데
그곳에서 필리핀 수영강사가 거침없이 칭찬을
마구마구 날려 줬단다.
그 칭찬을 먹고, 열심히 했더니
한국에서는 그렇게도 뜨지 않던 몸이
필리핀에서는 거짓말 같이 뜨셨다며 아들이 더
신이 나서 어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의 진실'이 선생님에게 와닿아
뜨지 않을 것 같다 굳게 믿었던 몸을 띄웠다.
그 어떤 것보다 무겁다 느껴졌던 나의 몸이
이리도 가벼워질 수 있는 건 한순간이다.
그 변화의 핵심에
우리와 같은 범인(凡人)의 진실이 있었다.
내가 나를 위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것도 물론 가치가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일단 살고 보자.
살아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