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스티커를 떼어낸 자국과도 같다. 애써 스티커를 떼어놓으면 말끔히 자국이 사라진 것 같아 보여도 막상 만져보면 아직도 끈적이는 것이 남아있는 것처럼. 힘들여 불안을 지워놓아도 다시 그 자리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불쾌한 것들이 남아 마음을 괴롭힌다. 그 끈적이고 불쾌한 것들 위에 먼지가 붙는다. 자국이 다 지워져 맨들 거리는 표면이 아니라, 끈적이 위에 붙은 먼지들로 인해 우둘투둘한 표면만이 남는다. 마음은 그렇게 더럽혀져만 간다. 완전히 지우려 들면 그 자리를 칼로 긁어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럼 마음에 또 흉이 진다. 마음에 자꾸만 그런 흉터가 는다. 이 흉터는 누가 만들어낸 흉터일까.
나일까, 나를 스쳐간 사람들일까.
그 흉터가 아물 때 즈음 억지로 딱지를 떼어내 소금을 뿌리고, 또 같은 상처를 내기를 반복하면 마음에 황무지가 생긴다. 더 이상 딱지가 앉을 여력조차 남지 않은 상처에 깊은 골이 생긴다. 맨들 하던 땅이 그렇게 어느새 재만 남은 죽은 땅이 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죽은 땅이 황무지란 사실을 땅 자기는 모른다. 주변은 여전히 푸르고 생기 넘치는 나무와 꽃들로 가득하거든. 딱 거기 한 군데, 바다와 가장 가까운 코 앞 발치만 아무것도 들어서지 못하는 땅이 되었거든. 멀리서 보면 그래서 아름다운 작은 세계일 뿐이거든.
마음이 황무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밀물이 찾아와야지만 알 수 있다. 이 죽은 땅에도 밀물이 다시 칠 수 있구나, 와 보아야 안다. 오래도록 밀물이 찾아오지 않던 마음에 다시 물이 차기 시작한다. 생명이 차기 시작한다. 메마른 땅에 다시 이끼가 필 수 있을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밀물을 맞이한다. 들이치는 밀물에 땅이 요동친다. 나는 이 밀물을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렵다가도, 속절없이 차오르는 수면을 막을 도리가 없다.
무서운 속도로 굽이치는 지금 이 밀물이 내게 생명수가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썰물이 되어 사라져 버릴까. 이번에 썰물이 되어 나가면 그때는 바닥에 몇 안 남은 모래알 마저 다 쓸어가 버리면 어쩌나. 고작 가위바위보로 사랑을 논하던 어리석은 내가 이번에는 또 무얼 뺏기게 될까. 나는 이번에는 또 무엇으로 사랑을 속단하게 될까.
자연의 섭리로 다가오는 밀물을 고작 방파제 몇 개로 막아보려 애썼다. 다가오는 저게 무엇일지 몰라 우선은 막고 보자는 생각이었나 보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하면 막아지는 줄 알고, 둑이 터져 새어 나온 물줄기가 더 거세질 줄도 모르고 나는 또 그렇게 오만했다.
이미 터진 둑이야 어쩔 수 없고, 보수 공사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둑에다 자꾸 시멘트 칠을 해본다. 시멘트가 너무 독해 바르는 손에도 구멍이 난다. 발라둔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자꾸자꾸 터져 나오는 물줄기들을 결국 막지도 못할 거면서 온몸이 다 부루 트도록 소용없는 짓만 하고 있다. 그럴수록 그 땅에만 지진이 일 뿐인 것을. 막아보겠다고 애쓰는 짓들이 오히려 땅을 더 상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애먼 짓만 해대는 것이 가엽다.
밀물처럼 밀려든다. 사랑일까, 환각일까. 물이 다 차서 잔잔한 바다가 되면 그때는 이게 뭔지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