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의문의 남자가 부르는 노랫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창밖을 보니 아직 어두웠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노래를 부른다는 게 믿기지 않아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듯 에코가 잔뜩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라도 잘 부르면 말을 않겠는데, 지나치게 콧소리를 내는 이 남자의 노래를 듣는 건 고역이었다. 결국 노랫소리에 못 이겨 잠에서 깼다.
바탐방에서 두 달 가까이 살면서 이곳에서는 몇몇 소음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표적인 소음으로는 결혼식과 장례식 때 몇 날 며칠이고 울려 퍼지는 축가와 진혼곡이었다. 그밖에도 툭툭이나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 공사하는 소리, 부부젤라Vuvuzela, 요란한 소리를 내는 트럼펫 모양의 플라스틱 악기떠올리는 악기 소리 등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것들을 소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축가도, 진혼곡도, 심지어 오토바이 소리까지도 그럭저럭 그 순간이 지나면 괜찮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소리들이 끊이지 않자 이거 적당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불만과 함께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하루는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발코니 너머로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려왔다. <Happy Birthday To You>를 캄보디아어 가사로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생일이겠거니 생각하고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캄보디아어 버전이 끝나자마다 영어 버전이 시작됐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다양한 언어의 생일 축하 노래들이 이어졌다. 목소리도 남자아이였다가, 여자아이였다가, 독창이었다가, 합창이었다가 다양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일 축하 노래가 담긴 앨범을 재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래는 한두 시간 정도 계속되다 끝이 났다. 제발 당분간은 누구의 생일도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제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 역시 노랫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것이다.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닭울음소리에도 깨지 않는 그녀를 깨운 걸 보면 정말로 시끄러웠다는 것이다.
잠이 깬 김에 우리는 꾸이띠유Kuy Teav, 캄보디아식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그녀는 꾸이띠유를 맛있게 하는 집을 안다고 했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늘 이렇다. 모처럼 가면 꼭 영업 준비 중이거나 정기 휴일이다. 우린 하는 수 없이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지만 그냥 들어가기엔 많이 아쉬웠다. 우린 차야 아저씨에게 꾸이띠유 집을 추천받아 보기로 했다. 보통 맛집은 여행자들의 추천보다 현지인의 추천이 더 나을 때가 많다. 게다가 바탐방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 것 같은 차야 아저씨가 추천하는 집은 어떨지 궁금했다. 우리는 아저씨를 찾아갔다.
「쭘립쑤어(안녕하세요).」 우리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언젠가부터 아저씨는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하기 시작했다.
「혹시 근처에 꾸이띠유 잘하는 집 아세요?」
아저씨의 미간 주름이 짙어졌다. ‘꾸이띠유가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하는 표정 같기도 하고 ‘난 입이 꽤 고급이라 그런 건 안 먹어’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아니면 아는 데가 너무 많아 한 곳을 추천하기가 쉽지 않았던가. 의외로 망설이는 아저씨의 모습에 우리가 더 당황했다.
이때 우리의 대화가 궁금했는지 옆에서 어슬렁거리던 썸낭 아저씨가 다가왔다. 썸낭 아저씨가 오자 차야 아저씨는 이 난관을 함께 헤쳐 나갈 지원군이라도 온 듯 반가워했다. 잠시 후 차야 아저씨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 쓰나초등학교 앞에 있는 집이 괜찮지?」
차야 아저씨는 썸낭 아저씨의 반응을 살폈다. 썸낭 아저씨는 우리와 차야 아저씨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동의한다는 듯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기가 맛있지.」
「그 식당 이름이 뭐예요?」 제이가 차야 아저씨에게 물었다.
차야 아저씨의 미간 주름이 다시 짙어졌다.
「노 네임(No name).」 옆에 있던 썸낭 아저씨가 말했다.
차야 아저씨의 미간 주름이 다시 펴졌다. 썸낭 아저씨가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 맞는 것 같았다.
「이름이 없어요? 이름을 몰라요?」 내가 물었다.
「노 네임, 노 네임.」 썸낭 아저씨가 대답했다.
제이가 캄보디아 말로 차야 아저씨께 식당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노 네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식당은 어디에 있어요?」 제이가 물었다.
돌아온 아저씨들의 설명에 의하면 노 네임은(편의를 위해 식당 이름을 ‘노 네임’으로 하겠다) 제이가 다니는 영어학원 근처에 있었다. 우리는 아저씨가 추천한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노 네임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름이 없어서 어떻게 찾나 걱정했지만 오히려 이름이 없어 찾기 쉬웠다고나 할까, 이 식당은 간판이 없었다. 그 주변에 노점을 제외하고 간판이 없으면서 꾸이띠유를 파는 식당은 그곳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식당은 꾸이띠유를 먹는 사람들로 차 있었다. 모두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앉아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국수를 입에 넣었다.
우리는 빈자리를 찾아 앉은 후 소고기 꾸이띠유를 주문했다. 하나는 해산물을 넣은 것으로 할까 고민했지만 노 네임엔 해산물을 넣은 꾸이띠유는 없었다.
테이블 한쪽에는 후추, 땡고추장아찌, 흰 조미료, 칠리소스, 해선장, 놈빵Nompang, 얇고 길게 튀긴 캄보디아식 바게트, 젓가락, 숟가락, 컵,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차 등이 한데 모여 있었다.
잠시 후 종업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꾸이띠유를 가지고 왔다. 멀건 국물에 가는 면이 가득 들었고, 고기완자와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는 소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갔다. 숙주와 고수, 다진 땡고추, 라임 반 조각도 같이 나왔다. 사람들마다 설렁탕에 양념을 하는 방식이 다르듯 꾸이띠유를 먹는 방식 또한 가지각색이다. 나는 우선 라임 즙을 내고, 고수와 숙주, 다진 땡고추를 듬뿍 넣었다. 그러고 나서 국물이 탁한 붉은색으로 변할 정도로 칠리소스와 해선장을 푼 후 후추를 국물 표면에 막이 생길 만큼 뿌렸다. 이렇게 완성된 매콤, 달콤, 새콤, 시원한 국물을 먼저 떠먹었다. 기대했던 맛이었다. 이제 다 익어 회색으로 변한 소고기와 단단하게 뭉쳐진 고기완자, 숨이 죽었지만 아삭함은 남아 있는 숙주, 부드러운 면발을 한입 가득 넣었다. 입안에서 다양한 맛과 식감이 어우러져 행복 회로를 작동시켰다. 나는 다시 한번 입 안 가득 쌀국수를 욱여넣었다(이렇게 한가득 입에 넣어야 맛있다). 가는 면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아무리 입안 가득 넣어도 몇 번 씹으면 금방 없어져 버리는 게 쌀국수 아니던가. 금세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이 순간 아침에 잠을 방해했던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들릴 것만 같았다.
차야 아저씨의 추천을 들은 건 옳은 선택이었을까? 물론 내 입장에서는 그랬다. 오랜만에 매우 흡족한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에겐 최악의 추천이 됐다. 꾸이띠유를 반도 못 먹고 남기더니 복통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치 고산지대를 오르는 산악인처럼 몇 발자국을 걷고 쉬고 또 몇 발자국을 걷고 쉬길 반복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툭툭을 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툭툭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에 그 많던 툭툭이 다 어디로 증발한 것인지 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그때를 제외하곤 어디서나 툭툭을 볼 수 있었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차야 아파트에 도착했고, 제이는 곧장 화장실로 갔다. 나는 주차장에 남아 부른 배를 만지며 차야 아저씨와 썸낭 아저씨에게 노 네임의 꾸이띠유를 극찬했다. 두 아저씨들은 칭찬이 어색한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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