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탐방은 자전거로 둘러보기 적당한 곳이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기엔 좁고 걷거나 뛰기엔 너무 넓다. 자전거를 타면서 도시와 농촌의 풍경을 둘러보면 딱 알맞다. 하지만 막상 자전거를 타고 나가자 어디를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막막했다. 그냥 길을 따라서 가보자고 마음먹고 달려봤지만 금방 지루해졌고, 조금만 시내를 벗어나도 너무 멀리 온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바탐방을 잘 아는 누군가가 나만 믿고 따라오면 걱정 없어,라는 뒷모습으로 나를 인도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전거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나 찾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자전거 투어는 바탐방에서 꽤 인기 있는 여행 상품 중 하나였다. 트립 어드바이저를 찾아보니 ‘바탐방 여행의 하이라이트!’, ‘별 6개(5개 만점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좋은 말들뿐이었다.
나는 제이에게 자전거 투어를 하자고 얘기했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자전거 타기 싫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런 날은 피해서 가면 되잖아’라고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하지 않았다. 사실 뙤약볕은 진짜 이유가 아닐 테니까.
「자전거 투어 같은 거 알아보지 말고 김쌤한테 함께 자전거를 타자고 하는 건 어때? 자전거로 웬만한 곳은 다 가보셨을 걸? 같이 자전거를 타자고 하면 분명 좋아하실 거야.」 제이가 말했다.
김쌤은 차야 아파트의 주민이면서 바탐방 직업훈련소에서 강의를 하는 선생님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파트 주차장 수돗가에서 자전거를 닦고 있었다. 그의 자전거가 매우 좋아 보여 기억에 남았다.
제이는 그에게 연락해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는 몸이 조금 왜소한 듯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잔근육으로 가득했다. 눈은 늘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길을 지나면서 보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나름의 논리로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들도 꼭 한 번은 먹어봐야 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세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캄보디아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틈만 나면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내게는 찾아볼 수 없는 적극성이었다. 차야 아저씨에게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가르쳐 준 것도 그였다. 나중에는 ‘사랑합니다’도 알려줘 민망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바탐방을 둘러보고 싶은데 어디를 가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듣기로는 안 가보신 데가 없다고 하던데.」
「거의 다 가봤지. 바탐방엔 라이딩할 만한 곳들이 참 많아. 내일 아침에 바로 갈까?」
「네, 좋아요.」
「그럼 주차장에서 다섯 시 반쯤 보자고.」
「새벽에요?」
「당연하지.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더워서 힘들어.」
제이의 말대로 그는 자전거 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선 쓰는 말부터 달랐다. ‘자전거를 탄다’라는 표현 대신에 꼭 ‘라이딩을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라이딩’이나 ‘자전거 타기’나 같은 의미지만 ‘라이딩’이라고 하니 뭔가 전문적으로 자전거를 타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라이딩 복과 장갑, 헬멧, 손바닥만 한 전용 안장까지 소유하고 있어 나의 기대는 점점 높아졌다.
다음 날 새벽. 그는 자전거를 두 대 가지고 나타났다.
「오늘은 이걸 타.」 그가 검은색 자전거를 내게 건냈다.
「저는 차야 아저씨께 빌린 자전거가 있는데….」
「그런 자전거는 조금만 멀리 가도 망가져서 안 돼.」
「얼마나 멀리 가시려고 자전거가 망가진다고 그러세요?」
「그리 멀지 않아. 가깝지도 않지만.」
그때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그는 정말로 어중간한 자전거는 망가질 정도로 자전거를 탈 생각으로 한 말이었다.
그가 빌려준 멀리 가도 망가지지 않는 자전거는 내가 평생 타본 자전거 중에 가장 좋았다. 핸들에는 기어 변속 레버가 달렸고, 검은색 프레임 앞뒤로 스프링 모양의 완충장치도 있었다. 안장은 어린이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았지만 막상 앉아 보니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바퀴의 바람도 알맞게 채워져 있었고, 체인에 기름칠도 돼 있어 보기 좋게 윤이 났다. 즉, 바로 장거리를 달려도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출발 전에 그는 내게 몇 가지 조언을 해줬다. ‘안장의 높이는 발로 페달을 밟았을 때 무릎의 각도가 150도 정도 돼야 해’, ‘페달은 발의 앞축이 아닌 앞축과 아치 사이로 밟아야 해’, ‘페달질을 할 때는 무릎이 벌어지면 안 돼, 살짝 안으로 모은다는 느낌으로’ 그의 이런 조언은 라이딩을 처음 하는 내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 자전거에 올라 밖으로 나갔다. 바탐방에 와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밖에 나온 건 처음이었다. 공기가 맑았다. 다른 때에 마시던 공기와는 느낌이 달랐다.
김쌤이 앞장을 서고 내가 그의 뒤를 따랐다. 앞서가던 그가 갑자기 멈추더니 내게 세 가지 수신호를 알려줬다. 왼팔을 쭉 펴고 어깨 높이로 들면 좌회전을, 같은 동작을 오른팔로 하면 우회전을, 또 머리 위로 주먹을 쥐면 정지하라고 했다. 라이딩 중엔 말로 의사소통하기 힘드니 수신호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작은 가벼웠다. 우린 상커 강을 따라 익숙한 바탐방 시내를 지났다. 새벽이라 그런지 도로 위는 한산했다. 천천히 페달을 밟고, 기어를 단계별로 변속하고, 브레이크 레버를 조였다 푸는 등 새로운 자전거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잠시 후 김쌤이 예고도 없이 속력을 냈다. 그리고는 방향을 틀어 비포장도로로 들어갔다. 이내 풀과 나무들이 무성한 숲이 나왔다. 본격적인 라이딩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드문드문 나타나는 농가들을 지나쳤다. 도중에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이 여러 번 나왔지만 김쌤은 망설임 없이 길을 골랐다. 그는 이 숲을 훤히 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은 라이딩하기 참 좋은 날씨야!」 김쌤이 소리쳤다.
새벽에 내린 비 덕분에 공기 중의 먼지가 모두 씻겨 내려갔다. 강은 더 진한 황톳빛을, 풀과 나뭇잎은 더 짙은 초록빛을 냈다. 구름도 적당히 해를 가리고 있어 덥지 않았고, 황토도 촉촉하게 젖어 먼지 하나 날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흙투성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건기가 라이딩 하기에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비만 잘 피하면 우기가 더 좋아!」 그가 소리쳤다.
어디선가 염불 소리와 전통악기 연주가 들렸다. 장작 타는 냄새와 밥 짓는 냄새도 났다. 이내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장작을 떼 식사를 준비하고,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바구니에 담았다. 아이들은 대야에 물을 담아 고양이 세수를 했고, 할아버지들은 허리에 끄라마(Krama, 체크무늬가 들어간 캄보디아 전통 스카프) 하나만 두르고 돌아다녔다. 중년 남성들은 구멍가게에 앞에 앉아 한가롭게 텔레비전 뉴스를 봤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보면 반사적으로 ‘헬로(Hello)’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모두 퀴즈대회에서 첫 문장만 듣고 답을 알아차린 참가자들처럼 재빨랐다.
마을엔 가축이 많았다. 소는 주인이 준비해 놓은 여물을 먹거나 풀밭에서 풀을 뜯었다. 돼지는 어미 돼지와 아기 돼지들이 무리를 지었다. 닭은 쌈닭처럼 크고 날렵했다. 길 위에 있다가 우리가 지나가면 펄쩍 뛰어 피했는데, 높이 뛰는 놈은 족히 2미터 이상은 뛰어올랐다.
「엉덩이 많이 아프지? 오늘은 첫날이니까 적당히 타고 이만 돌아가자고.」 김쌤이 말했다.
사실 내겐 첫날 적당히 탄 것 치고는 꽤 힘들었다.
김쌤은 온 길을 그대로 돌아가면 재미가 없다며 숲을 가로지르는 강을 건너서 돌아가자고 했다. 강을 어떻게 건너나 궁금했는데, 이내 40미터~50미터는 돼 보이는 철교가 나왔다. 우리는 흔들리는 철교를 천천히 건넜다. 사실 나만 그랬다. 김쌤은 다리가 흔들리든 말든 거침이 없었다. 다리는 상당 부분 녹이 슬어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수축과 팽창으로 들뜬 자리는 그 위를 지날 때마다 덜컹 소리를 내며 아래로 푹 꺼졌다가, 다시 볼록하게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다리 전체에 진동이 일었고, 이내 그 진동이 온몸에 전해졌다. 다리 아래로 불어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은 고요한 숲의 풍경과는 반대로 매우 힘차게 흘렀다. 다리 중간에 이르자 뻥 뚫린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탁 트인 시야를 가져본 게 얼마 만이었던가. 강변에서는 흰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흐르는 강, 넓은 하늘, 푸르고 울창한 숲, 그리고 흰 소들까지, 한 번도 때 묻지 않은 세상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김쌤도 가만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캄보디아의 자연은 나를 확 사로잡은 화려함 같은 건 없었지만 소박하고 은은해서 아무리 오래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이 풍경으로 엉덩이 아픈 것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숲을 빠져나와 다시 도로 위를 달렸다. 먹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우리를 뚫을 듯이 비췄다. 선글라스를 썼는데도 인상이 자꾸만 구겨졌다. 김쌤의 페달질이 빨라졌다. 그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도 힘껏 페달을 굴렸다. 엉덩이가 아프고 허벅지가 터질 듯 단단해졌다. 도로는 차와 오토바이로 혼잡했다. 풀풀 날리는 흙먼지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나는 눈을 반쯤 감고 숨을 참아가며 김쌤의 뒤를 쫓았다. 우리는 뱀파이어라도 된 듯 해가 머리 위로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차야 아파트에 도착했다.
나는 잠시 그의 집으로 가 함께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단번에 맥주를 들이켜고 캔 중앙을 찌그러뜨렸다.
「캬~!」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방에 틀어박혀서 스마트폰만 보는데, 참 아까워. 밖에 나가면 보고 느낄 게 얼마나 많은데.」 김쌤이 새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며 말했다.
「얼마 전에 몬둘끼리(Mondulkiri)에 가서 정글 트레킹을 했는데, 정말 좋더라고. 캄보디아에는 평원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이런 곳이 있나 싶기도 했고. 자네도 언제 한번 가 봐. 캄보디아에 왔는데 바탐방에만 있다가 가기엔 좀 아깝잖아.」
「네. 그럴게요.」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는데 그가 말한 정글 트레킹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몬둘끼리라는 지명도 아름답게 들렸다.
「몬둘끼리….」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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