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캄보디아 전통 음악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에서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구슬픈 걸 보니 장례식 같았다.
처음엔 외국인인 내게 결혼식과 장례식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눈에는 비슷한 천막에서 비슷한 전통 음악이 흘러나오고, 비슷한 식탁보를 두른 원탁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비슷한 음식을 먹는 거로 밖에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제이는 딱 보면 알겠다고 했지만 내 눈엔 거기서 거기였다.
결혼식과 장례식의 구분은 간단했다. 화려한 색의 꽃이나 리본으로 천막을 장식했다면 결혼식이고 검은색 천과 흰색 꽃을 둘렀다면 장례식이다. 또 결혼식 하객들의 옷차림은 화려한 반면 장례식 조문객들은 대부분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제이는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되는데 어떻게 차이를 모를 수 있냐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나중에는 결혼식과 장례식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됐지만, 내게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요즘같이 비가 많이 올 때는 전통 음악 소리만 들려도 장례식이란 걸 알 수 있다. 결혼식은 주로 건기에 하는 반면 장례식은 우기든 건기든 때를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빨리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제이와 나는 오랜만에 테레사에서 닥터 후와 점심을 먹었다. 그는 먼저 식당에 도착했고, 평소와는 달리 풀이 죽은 모습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며칠 전 그의 직장 동료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사고 현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줬다. 처참했다. 무엇과 충돌했는지 사진 속 벤의 전면부는 폐차장에 있는 차처럼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이 사고는 신문에 날 정도로 심각했는데, 프놈펜 포스트(The Phnom Penh Post, 캄보디아 영자 신문)에 의하면 이 사고로 두 명의 운전수를 포함한 아홉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사고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 과속을 하던 벤이 앞차를 추월하려고 역주행 하던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발생했다. 시신들은 근처 사원으로 옮겨졌고, 닥터 후는 급히 사원으로 가 동료의 신원을 확인했다. 그 동료에게는 어린 쌍둥이 아이들이 있었다. 그는 매일 쌍둥이 아이들의 얘기를 했고, 그들의 사진을 닥터 후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 날이 있다. 사고가 나려고 그랬나 보다 하는 날이. 닥터 후의 동료는 사고 당일 갑자기 프놈펜에 갈 일이 생겼고, 급하게 표를 구한 탓에 하는 수 없이 조수석에 앉아야 했다(뒷좌석에는 생존자가 있었다). 요즘은 우기 치고 비가 잘 내리지 않지만 그날은 폭우가 쏟아졌다고 한다. 한 생존자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벤은 나와 제이가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메콩 익스프레스의 것이었다. 이번 사고로 이용객들이 줄기는 했지만 평소 메콩 익스프레스는 사고도 적고, 다른 요금이 저렴한 회사들에 비해 벤의 상태도 좋았다. 서비스도 준수한 편이었다.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고, 무선 인터넷이 되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안전벨트도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야 하니 차를 세워달라는 제이의 부탁에도 즉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로변에 있는 집까지 운전기사가 직접 에스코트를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곳보다 요금이 두 배나 비싸지만 불만 없이 이용해왔다.
사고의 원인은 폭우로 인해 시계視界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트럭이 앞차를 추월한 데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대부분 왕복 2차선 고속도로를 달린다. 앞에 화물차나 대형 버스가 달리고 있다면(가끔 우차牛車나, 경운기도 있다), 거의 모든 차들이 역주행을 해 앞차를 추월한다. 상식적으로 이런 경우엔 반대편 도로에 차가 없을 때에 역주행을 하는 게 맞다. 역주행을 하는 게 맞다,라는 말도 웃기지만 우차 같은 것이 앞을 막고 있으면 추월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목숨이 서너 개쯤 있는 건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있어도 조금의 틈만 있다면 추월을 시도하는 무모한 운전기사들이 있다. 만약 맞은편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즉시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는데, 치킨 게임을 하듯 둘 중 누구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위험한 추월을 감행한다.
충돌 사고 외에도 마주 오는 차를 피하려다 도로를 이탈해 나무나 담을 들이받거나 전복되는 사고도 많았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사고를 자주 목격했는데, 이쯤 되면 벤은 목숨 걸고 타는 것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사고로 변을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바탐방 사람들이었다. 오늘따라 많아 보이던 장례식들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장례가 아니었던 것이다.
「너희도 어디 멀리 갈 땐 조심해라. 자리가 없다고 앞좌석에 타라고 하면 차라리 다음 버스를 알아보는 게 현명한 거야.」 그는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네, 그럴게요.」
「얼마 전에 멜빈도 다쳤더라. 요즘 왜들 이렇게 사고가 나는 건지 참.」
「많이 다쳤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발목이 부러졌어.」
이때 멜빈이 툭툭을 타고 테레사에 도착했다. 그도 양반은 못된다. 그는 왼쪽 발목에 깁스를 한 채 툭툭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내렸다. 멜빈은 목발을 짚고 잘 걷는가 싶더니 갑자기 발을 헛딛고 휘청했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우리도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툭툭 기사가 멜빈을 떠받들다시피 잡고 버텨 넘어지지는 않았다. 닥터 후는 그냥 집에서 가만히 있지 왜 나왔느냐고 핀잔을 줬다. 멜빈은 울컥해서 과일을 사러 나왔다고 소리쳤다. 직접 시장에 가야 신선한 과일을 고를 수 있다고. 그의 과일 사랑은 남달라서 웬만해서는 산 지 며칠 된 과일이나 남들이 사다 주는 건 잘 먹지 않았다. 과일은 늘 신선해야 하고 직접 고른 것이어야 했다. 고집불통 할아버지의 전형이다. 닥터 후가 한 번에 많이 사다 놓고 먹으라고 말하지만 뒷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이럴 때 보면 둘은 꼭 오래된 부부 같다.
멜빈은 며칠 전 전자 제품 매장에 갔다가 입구 문턱에 신발코가 걸려 넘어졌다. 발목이 부러졌지만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다. 그는 발목이 부러진 이유를 자신의 부주의나 나이가 들면서 무뎌진 순발력 때문이 아닌 애매한 문턱의 높이 때문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내가 볼 땐 그냥 똑같은 문턱이었지만, 나는 굳이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
얼마 전 멜빈은 자신이 바람을 피울까 걱정하는 애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약 바람을 피우면 다리가 부러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진짜로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멜빈은 그녀에게 발목이 부러진 걸 얘기했다가 매일같이 진짜 바람을 피운 게 아니냐고 추궁 받았다. 그는 바람은 절대 안 피웠다고 해명했지만 그녀는 믿지 않았다.
멜빈은 부러진 다리보다 그녀에게 시달리는 걸 더 힘들어했다. 차라리 팔이 부러질 것이라고 하지, 하필이면 다리가 부러진다고 말해가지고. 아니다. 팔이 부러진다고 했으면 정말 팔이 부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멜빈, 그런데 정말 바람은 안 폈어?」 닥터 후가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No!!」 멜빈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다음부터는 바람을 피우면 부자가 된다거나 10년은 더 젊어진다 같은 좋은 얘기를 좀 해 봐. 혹시 알아? 정말로 그렇게 될지? 바보같이 손해 볼 얘기만 하지 말고.」 닥터 후가 말했다.
「그래 볼까?」 멜빈은 그의 아이디어가 만족스러웠는지 잠시나마 구겨진 얼굴을 폈다.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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