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기차를 타기로 한 날 아침, 비가 내렸다. 발코니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예약해둔 툭툭이 왔는지 확인했다. 툭툭 한 대가 아파트 입구에 있었다. 나는 로비로 내려가 제이를 기다렸지만 아침잠이 많은 그녀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 잠시 후 그녀가 내려왔고, 우리는 서둘러 툭툭에 올랐다.
김쌤과 자전거를 타고 며칠 후, 나는 캄보디아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목적은 몬둘끼리 트레킹이었지만 오가는 길에 시엠립이나 그 밖의 지역도 들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얘기를 들은 제이가 바탐방에도 아직 안 가본 곳이 있다며 그곳부터 먼저 가야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는 이미 질리도록 가 봤지만 같이 가줄게’라는 말을 선심 쓰듯 덧붙이면서 말이다.
바탐방에는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 두 군데 있다. 바로 대나무 기차를 탈 수 있는 오담봉역(O Dambong Station)과 박쥐 동굴이 있는 프놈 썸뻐으(Phnom Sampeau) 산이다. 박쥐는 해 질 녘에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대나무 기차를 먼저 타러 갔다.
오담봉역에 도착했을 때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비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여행객은 우리 둘 뿐이었다.
역 안으로 들어가자 선로가 보였다. 선로 옆에선 다부진 몸의 남자들이 대나무 기차를 조립하며 영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들은 먼저 역기처럼 생긴 쇠바퀴 두 개를 선로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고 나서 대나무 널로 만든 평상을 쇠바퀴 위에 고정한 후 팬 벨트로 엔진과 쇠바퀴를 연결했다. 마지막으로 평상에 알록달록한 자수가 새겨진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두꺼운 방석을 깔자 대나무 기차가 완성됐다.
이 기차는 여행객들에게는 ‘밤부 트레인(Bamboo Train)’이란 영어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노리(Nori)’로 불린다. 노리는 날아다니는 양탄자를 의미하는데, 완성된 모습을 보니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노리는 캄보디아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때 만든 철로를 보수해 물건과 사람을 수송하면서 생겨났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직접 밀어서 이동했고, 나중에는 대나무 작대 같은 것을 이용하다가, 최근에 와서 오토바이 엔진 등을 개조해 동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노리는 사람을 열 명에서 열다섯 명, 화물은 3톤까지도 실어 나를 수 있다고 하니 꽤 유용한 운송 수단인 건 분명했다.
우리는 방석에 앉아 가장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엉덩이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잠시 후 운전기사가 엔진의 시동을 걸자 팬 벨트가 돌기 시작했다. 덜덜덜, 하는 소리와 함께 규칙적인 진동이 전해졌다. 운전기사는 노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확인한 후에야 평상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엔 아직 먹구름이 가득했다. 풀밭은 녹음이 짙었고, 풀잎마다 이슬처럼 빗방울이 맺혀있었다. 이제 내게 이 진한 녹색은 황토색과 더불어 캄보디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이 되었다. 사방이 확 트인 노리는 이런 풍경을 즐기기에 완벽했다.
노리가 출발하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혀 기차처럼 보이지 않는 이것이 실제 ‘기차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선로의 마디를 지날 때는 덜컹 소리와 함께 큰 진동이 일었다. 노리는 시속 30킬로~40킬로 속도로 달리는데, 체감하는 속도는 그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이었다. 바람이 내 콧등에 부딪혀 갈라졌다. 나는 잠시 그 시원한 갈라짐에 몰입하느라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는 것도 몰랐다. 모자의 턱 조임 끈이 목에 걸려 낙하산처럼 부풀었고 동그란 챙이 마구 펄럭였다. 나는 지나가는 풍경을 하나라도 놓칠까 기차가 멈출 때까지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로의 끝엔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기차가 도착할 즈음 한 무리의 아이들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리자 아이들은 기대를 품은 얼굴로 팔찌를 들이밀었다. 그 날의 마수걸이가 우리에게 달려 있었다. 팔찌의 가격은 두 개에 1달러였지만 우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눈치가 빠른 아이들은 재빨리 세 개, 혹은 네 개에 1달러로 점점 값을 낮췄다. 다들 같은 영어 문장들을 반복하며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중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리를 뜨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다시 또 나타나 우리를 처음 봤다는 눈을 하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리는 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어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이런 상황에 소극적으로 반응하게 됐다. 팔찌라도 마음에 들었다면 샀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다음 기차가 도착했고 아이들은 미련 없이 우리를 떠났다.
돌아올 때 깨달은 사실이지만 선로는 단선이었다. ‘그게 왜?’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노리가 왕복으로 다닌다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 맞은편에서 오는 노리와 부딪힐 게 뻔했다. 대나무 평상 위에 어떤 안전장치도 없다는 것에 불안해졌다. 앞뒤로 ㅠ자 모양의 막대가 있기는 했지만 뒤에 있는 막대는 운전수의 의자로 쓰였고, 앞에 있는 건 너무 낮아서 우리가 앞으로 튕겨 나가도 막아 주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노리로부터 튕겨나가 풀숲 어딘가에 처박히는 상상을 했다.
얼마 안 가 맞은편에서 나의 의문에 답을 해줄 노리가 나타났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노리를 서로 부딪히게 두는 황당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오던 노리는 이미 멈춰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무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미리 정해놓은 규칙이 있었던 것이다. 규칙은 이랬다. 좀 더 가벼운 쪽이 비켜주는 것이다. 운전기사들은 둘 중 인원이 더 적은 것을 분리해 길을 내어준다. 혹시 탑승객이나 짐의 양이 비슷해 모호하다면 돌아오는 쪽에서 비켜 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노리를 분리하고 조립해서 그런지 운전기사들의 작업 속도는 매우 빨랐다. 나는 이 문제가 양보를 통해 해결된다는 것이 흐뭇했다.
다시 오담봉역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구름 사이로 나와 후덥지근했다. 역은 우리가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여행객들로 붐볐다. 그들은 땡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줄을 서고 있었다. 아침엔 피곤했지만 서두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 많은 제이 덕분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지나쳐 다시 툭툭에 올랐다.
「이제 어디로 가지?」 내가 물었다.
「우선 차야 아파트로 갈 거야.」 제이가 대답했다.
「박쥐 동굴은?」
「박쥐들은 해 질 녘에 나오니까 오후에 갈거야.」
느지막한 오후, 우리는 프놈 썸뻐으 산에 갔다. 툭툭 기사는 박쥐 동굴 앞에서 우릴 내려줬다. 동굴 앞에는 노상 식당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박쥐가 나오려면 한두 시간은 더 있어야 했지만 식당엔 이미 많은 여행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이는 산 정상에 있는 사원 앞에 가면 근사한 전망을 볼 수 있다며 나를 그리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등산로를 오르듯 완만한 경사를 올랐다. 산길은 시멘트로 포장돼 있어 오르기 편했다. 박쥐 동굴과는 달리 사원을 찾는 여행객은 거의 없었다. 사원 입구에는 흔히 일본원숭이라 불리는 마카크원숭이(Macaques) 무리가 있었다. 회갈색 털의 원숭이들은 새끼부터 몸집이 큰 녀석까지 다양했다. 원숭이들은 수가 꽤 많았는데, 마치 사원을 차지한 것 마냥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경계하는 듯 몸은 가만히 있어도 시선만은 늘 우리를 따라 이동했다. 언제라도 빈틈을 보이면 달려들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꽤 위협적이어서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원숭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 곳으로 멋모르고 다가갔다가 원숭이가 귀중품을 채갈 수도 있다고 했다(어떻게 아는 건지 신기하게도 카메라나 목걸이 같이 값비싼 물건들만 채간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길목 위 나무에 앉은 원숭이들이 뭔가를 낚아채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서로 밀치며 신경전을 펼쳤다. 그들의 자리다툼은 나무가 흔들릴 정도로 격해졌다. 나는 난생 처음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나뭇잎만 떨어질 뿐 원숭이가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건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아래로 내려와 박쥐 동굴 앞에 자리를 잡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다. 대충 세어 봐도 백 명은 넘어 보였다. 바탐방에 있으면서 이렇게 많은 여행객들을 한곳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모두들 박쥐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노상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도 모두 의자를 돌려 동굴을 향해 앉았다.
잠시 후 하늘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이때가 신호라는 듯 뾰족한 울음소리를 내며 박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 백, 수 천, 수 만, 셀 수 없이 많은 박쥐들이 끝없이 나오며 장관을 이뤘다. 그 모습은 굵은 붓으로 두껍게 그린 검은 오로라 같았다. 여행객들은 박쥐와 노을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광경에 감탄했다. 나도 어느새 입이 떡 벌어져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옆에 있던 할아버지는 테니스 경기를 보듯 동굴과 떠나는 박쥐들을 번갈아 보며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10분쯤 지나자 슬슬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박쥐의 행렬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많은 박쥐들이 다 들어가려면 동굴은 얼마나 커야할지 가늠조차 안 됐다. 혹시 프놈 썸뻐으 산의 속은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닐까.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에도 박쥐들은 계속 나왔다. 어두워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박쥐가 보이지 않자 우리도 자리를 떴다.
돌아오는 길엔 우리가 탄 툭툭의 전조등 불빛 외에는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룸쎄이 쏙(Rumsay Sok) 이야기라는 캄보디아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온통 바다였다고 한다. 변변한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는 이곳이 정말 바다였다는 걸 상기시키듯 온통 검푸른 색으로 뒤덮였다. 하늘엔 달과 별만 선명했고, 뾰족한 울음소리는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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