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의 출발점은 상커 강변에 위치한 나루터였다. 나루터에서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최근 끊이지 않는 교통사고 소식에 버스나 벤을 타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바탐방에는 매일 오전 시엠립으로 떠나는 보트가 있다. 나는 산책을 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육로 이동을 피할 대안으로 보트를 선택한 것이다. 보트는 상커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톤레삽 호수를 지나 시엠립에 도착한다. 바탐방에 온 첫날부터 궁금했던 톤레삽 호수를 드디어 가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시작은 없을 것 같았다.
제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나를 배웅해줬다.
「이거 가지고 가. 상비약이야.」 그녀는 봉투를 하나 건넸다.
나는 봉투를 받아서 배낭 깊숙이 넣었다.
「고마워. 잘 다녀올게.」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나루터로 갔다. 나루터에 도착한 후 곧바로 보트를 타러 비탈을 내려갔다. 뱃머리에는 향이 피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붉은색 코카콜라 캔 하나도 함께 놓여 있었다.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강의 신에게 무사귀환을 빌며 바치는 제물 같았다. 나는 배에 오르기 전에 두 손을 모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보트에는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백인 가족들과 수상 가옥으로 가는 현지인들이 타고 있었다. 좌석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좌석은 2인석이었는데, 알루미늄으로 적당히 테를 만들고 그 위에 나무판자를 얹은 모습이었다. 짐칸이 따로 없어 배낭은 좌석 밑에 둬야 했다.
강은 간밤에 내린 비로 살짝 불어났지만 유속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수면엔 옅은 물안개가 떠있었고, 강 주변에 난 풀들은 빗물을 머금고 있었다. 막 떠오르기 시작한 해의 황금빛 광선이 보트 안을 비췄다.
출발 시간이 되자 한 청년이 말뚝에 묶어두었던 밧줄을 풀었고, 운전기사는 시동을 걸었다. 이내 모터가 덜덜덜 떨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휘발유 냄새가 코에 와 닿았다.
모터 소리는 굉장했다. 내가 뒷좌석에 앉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너무 요란해 저러다 폭발하는 게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강변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들을 생각이었지만 이어폰을 꽂고 음량을 최대로 올려도 음악 소리가 묻혔다.
보트는 요란한 소리가 무색할 만큼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하지만 강변의 풍경을 눈에 담기에는 더없이 알맞은 속도였다. 보트는 제법 강한 물살을 만들며 나아갔다. 근처에 있던 낚싯배들이 물살에 흔들렸지만 어부들은 뱃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물살을 맞으며 그물을 건지는 게 일상이라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강변에는 수상가옥이 있었다. 수상가옥의 사람들은 씻거나 밥을 짓다가도 보트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보트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수상가옥의 아이들은 이들과 경쟁하듯 더욱 힘껏 손을 흔들었다.
강변에는 가축들이 많았다. 대부분 소나 닭, 강아지들이었고, 가끔 염소도 보였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소들은 풀을 뜯느라 여념이 없었고 닭들은 벌레를 쪼아 먹거나 꼬꼬댁 목청 높여 울었다.
보트에 탄 여행객들에겐 어떤 허세나 겉치레도 없어 보였다. 옷차림은 소박했고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예의 바르고 참을성 있었다. 불평을 하거나 눈살을 찌푸릴 만한 행동을 하는 아이도 없었다. 아버지와 보트 2층에 올라가 탁 트인 풍경을 보거나, 독서, 글쓰기, 스케치북에 그림그리기, 게임, 사진 찍기, 그리고 수상가옥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답인사를 해주는 등 각자 자신의 관심을 끄는 일에 집중했다.
출발한 지 꽤 됐는데도 강은 여전히 잔잔했다. 가다 보면 점점 유속이 빨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똑같았다. 모든 것이 한결같았다. 보트 안의 사람들, 보트 밖의 풍경들, 맑은 하늘, 쨍한 햇빛, 요란한 모터 소리까지. 전체적으로 내가 기대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실망감 또한 느껴졌다. 반복되는 풍경이 점점 지루해졌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몸을 이쪽저쪽으로 바꿔가며 편한 자세를 찾았다. 눕기에는 좌석이 너무 작았지만 다리를 보트 바깥쪽으로 빼고 누우면 이 보트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가 될 것 같았다. 나의 예상이 맞았다. 그 순간엔 크고 요란한 모터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렸다.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가 자꾸 발을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나서 깼다. ‘대체 뭡니까! 지금 얼마나 단잠을 자고 있었는지 아세요?’라며 한마디 하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나뭇가지들이 나를 덮쳐왔다.
「우어어워!」
요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고 보니 그제야 보트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파악이 됐다. 보트는 커다란 나뭇가지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삐죽삐죽 뻗은 나뭇가지들이 보트 안까지 침범했고 한 남자는 팔과 목이 쓸려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말뚝에서 밧줄을 푼 후로 줄곧 해먹에 누워 있던 청년은 장대를 나무에 대고 밀며 보트를 강 중앙으로 되돌리려고 애썼다. 청년이 장대로 나무를 밀 때마다 나뭇가지가 흔들렸고, 거기에 붙어있던 곤충들이 보트 안으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모두 몸에 붙은 곤충들을 떼어 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멍하게 바라보던 나도 내 몸을 타고 올라오는 곤충들을 손으로 털어내느라 바빴다. 청년이 계속 장대로 나무를 밀어대기는 했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보다 못한 운전기사까지 장대를 들고 나서자 그제야 겨우 보트와 나뭇가지가 분리됐다.
보트가 완전히 강 중앙으로 오자 운전기사는 다시 시동을 걸었다. 청년은 재난으로부터 지구를 구한 슈퍼히어로라도 된 양 미소를 지으며 힘줄이 불끈 솟아오른 팔뚝으로 이마와 뺨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보트가 다시 출발하기는 했지만 수로는 점점 더 좁고 구불구불해졌다. 청년은 수로가 다시 넓어질 때까지 보트가 나무에 부딪히지 않도록 장대를 들고 분주히 돌아다녔다.
험난한 여정을 마친 보트는 잠시 수상 휴게소에 멈췄다. 청년이 먼저 내려 말뚝에 밧줄을 감았다. 운전기사와 청년은 힘이 빠진 듯 별도의 안내도 없이 먼저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했다. 이어서 여행객들도 하나둘 휴게소 안을 둘러보며 배를 채울 만한 것을 찾았다. 휴게소는 강 한가운데에 외따로 떠 있는 수상가옥이었는데, 강 위에 있다는 것 말고는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잡화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중간에 배가 고플 것에 대비해 치즈 맛 감자칩을 하나 집었다.
「쓰리 돌라(US$3)~!」 가게 주인이 말했다.
육지의 두 배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냥 돈을 지불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곳에서는 여기 아니면 살 데가 없나, 하고 나가는 척 흥정을 할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친 운전기사가 보트에 연료를 채우고 청년은 여행객들에게 곧 출발한다고 외쳤다. 보트는 다시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한동안 뜨문뜨문 수상가옥들이 나타났다. 수상가옥 하면 그냥 강 위에 떠 있는 집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각각 야자수 잎, 함석판, 대나무, 벽돌 등으로 만들어져 다양한 모습이었다. 어떤 집은 물 위에 어떻게 저런 집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근사했다. 또 수상가옥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식당과 잡화점, 우체국, 학교, 심지어 노래방까지 물 위에 있는 것 말고는 육지와 다를 게 없었다. 평생 수상마을에서만 살아서 육지를 밟아본 적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오전 내내 내리쬐던 해를 먹구름이 가리기 시작했다. 잿빛구름이 하늘을 완전히 가리자 강물은 그 어느 때보다 진한 황톳빛으로 변했다. 그 위로 작은 파동이 하나둘 생기더니 이내 굵은 빗방울이 수면을 덮었다. 강물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마다 깊이 파였다. 강 전체가 비와 강의 마찰음으로 빈틈없이 메워졌다. 해먹에 누워 코를 골던 청년은 일어나 지붕 옆에 있는 붉은 방수천을 풀어 배를 덮었다.
비는 한동안 계속 내렸다. 방수천이 비를 막아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배 안으로 들어오는 빗물까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젖은 천이 뱉어내는 물로 바닥은 금세 흥건해졌고, 의자 밑에 둔 배낭들은 독이 퍼지듯 색이 점점 탁해졌다. 이를 알아챈 사람들이 서둘러 방수 커버를 꺼내 배낭을 덮었지만 이미 늦었다. 승객들은 젖은 배낭을 무릎에 올려놓거나 배낭에 자신의 자리를 내어 주고 통로에 섰다. 천장에도 비가 새는지 군데군데 물방울이 떨어졌다. 내 어깨에도 축축한 얼룩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출발할 때 보트 안을 가득 채웠던 흥분과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모두 지쳤고 보트가 얼른 시엠립에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잠시 후 빗소리가 잦아들었고 그 자리를 다시 엔진 소리가 메웠다. 청년은 돌아다니며 방수천을 걷어 올렸다. 해가 먹구름 틈 사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물은 더 불어났고 주변 풍경은 출발할 때와 달리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맑고 시원한 바람이 보트 안으로 들어와 잠시 머물고 뒤에 오는 바람에 자리를 내줬다. 수로는 점점 넓어졌고 보트가 만드는 파동이 지평선을 조금씩 지워 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시야에서 지평선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내가 톤레삽 호수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마치 방금 내린 비로 세상이 온통 황토색 물로 잠기고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가 탄 보트만이 그 위를 부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보트 안에 있는 모두가 말없이 이 특별한 감정을 공유했다. 그토록 요란하던 모터 소리도 커다란 호수에 압도된 듯 잠잠하게 느껴졌다. 보트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갔지만 제자리에 있는 듯 끝없이 하늘과 호수만 이어졌다.
여행이 끝난 후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강 위에서의 경험을 얘기할 것이다. 강 위에서 읽은 책의 내용, 보트 에서 본 풍경,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캄보디아 사람들, 휴게소에서 먹은 음식들, 갑자기 들이닥친 장대비, 세상을 모두 지워버린 거대한 톤레삽 호수, 곤충을 떼어내느라 정신이 없던 한국인까지.
지평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수상 가옥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른 여행객들이 탄 보트들이 우리와 교차하며 지나갔다. 아홉 시간의 여정 끝에 마침내 시엠립에 도착한 것이다. 보트는 길게 늘어선 선착장 한쪽에 머리를 댔다. 청년이 보트를 말뚝에 고정하기도 전에 툭툭 기사들이 보트 안으로 들어와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그중 한 툭툭 기사 내게 다가와 가방을 빼앗듯이 어깨에 메고 나갔다. 시엠립은 캄보디아 최대의 관광도시여서 그런지 여행객들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거침이 없었다. 사람들이 불쾌한 기분을 느끼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이게 최선일 거라는 듯 웃는 그의 미소에 나는 체념하고 그를 따라 툭툭에 올랐다.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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