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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Dec 20. 2017

툭툭 스트릿


릿





    선착장에서 툭툭을 타고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 안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실내등 몇 개가 켜져 있었지만 로비 전체를 다 밝히기엔 부족했다. 로비 우측 게시판에는 앙코르 유적 투어를 홍보하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프런트 직원이 썸뻬아를 하며 나를 맞아줬다. 그가 예약자 명부와 여권을 대조하는 동안 나는 잠시 벽에 붙은 노을 사진을 감상했다. 붉게 물든 하늘과 야자수의 실루엣이 인상적인 사진이었다. 

   「혹시 앙코르 왓(Angkor Wat) 투어도 여기서 신청할 수 있나요?」 나는 게시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언제로 해드릴까요?」  

   「내일 아침에 할게요.」 

    나는 짐을 풀고 강변으로 나갔다. 장시간 보트를 타느라 피곤했지만 여행 중에도 가능하면 해 질 녘에 나와 강변을 걷고 싶었다. 살면서 처음이었다. 날마다 해 질 녘의 변화무쌍한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산책을 한 것은. 강변을 거닐면 내 마음은 늘 평온해졌다. 

    시엠립의 강은 딱히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수면은 개구리밥 같은 것들로 덮여 있었고, 듬성듬성 넓고 둥근 연잎과 수련이 떠 있었다. 띄엄띄엄 잘라서 보면 강이라기보다는 연못에 더 가까웠다. 마침 긴 낚싯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배에는 중년 남녀가 함께 있었는데, 시소를 타듯 양 끝에 앉아서 남자는 노를 젓고 여자는 배에 실은 짐들을 붙잡고 있었다. 배는 쇄빙선이 얼음을 부수듯 수상식물들을 가르며 나아갔다. 



    강변엔 산책로가 조성돼 있었다. 바닥엔 잔디가 깔렸고, 초록 잎이 가득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더위가 한풀 꺾인 시간이라 그런지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개와 함께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개들은 하나같이 혀를 길게 뺀 채 주인에 이끌려 억지로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툭툭, 툭툭 써(TukTuk Sir)!」 

    나의 평화로운 산책을 방해하는 소리였다. 툭툭 기사들은 길가나 나무 그늘 아래에 툭툭을 세워 두고 외국인이 지나갈 때마다 호객 행위를 했다. 어떤 기사는 모자로 얼굴을 덮고 누워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그 옆을 지나자 잠꼬대를 하듯 ‘툭툭’ 이라고 말했다. 달리던 툭툭도 속도를 줄이고 호객 행위를 했다. 안 탄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쫓아왔다. 

    툭툭 기사들의 호객 행위는 어딜 가나 있지만 아마 시엠립이 가장 심할 것이다. 일단 툭툭이 넘쳐나 없는 곳이 없었다. 그들에겐 손님을 태우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보였다. 한가롭게 누워 있다가 가끔 툭툭하고 소리치고는 반응이 없으면 금세 포기해 버리는 바탐방의 툭툭 기사들과는 달랐다. 그러다 툭툭을 타려고 하면 원래보다 두 배는 더 높은 요금을 요구했다(정찰제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금액이 있다). 원래 요금으로 가려면 반 정도를 깎아야 하는데 그러기란 쉽지 않았다. 급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보통은 흥정을 하다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감정만 상한 채 끝나곤 했다. 그래봤자 2달러~3달러 더 내는 건데 이상하게도 툭툭만큼은 흥정에 실패하면 분했다. 만약 남의 일이었다면 ‘그거 얼마 하지도 않는데 그냥 타지’라고 말했겠지만 막상 툭툭 기사들과 마주하면 1달러가 10달러처럼 느껴졌다. 참 희한한 일이다.  

    툭툭 기사들의 호객 행위는 펍 스트릿(Pub Street)에 들어섰을 때 절정에 달했다. 여행객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라 그런지 ‘툭툭, 툭툭 써, 툭툭, 툭툭, 툭툭 써’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무한 반복됐다. 어떤 기사는 식당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에게까지 가서 툭툭을 외쳤다. 한 젊은 남자는 ‘I don't want a Tuk Tuk’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지만 오히려 기사들에게 집중적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이럴 거면 이 거리의 이름을 펍 스트릿이 아니라 툭툭 스트릿으로 바꾸는 게 낫겠다.



    툭툭에 시달리느라 지친 나는 몬둘끼리행 배편도 알아볼 겸 일찍 산책을 마쳤다. 강변 근처엔 여행사들이 많았는데 가는 곳마다 몬둘끼리행 배는 없다고 했다. 시엠립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프놈펜이 전부였다. 쾌속선인데 그마저도 우기에는 운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가 하얘졌다. 한 여행사 직원은 갑자기 떠올랐다며 시엠립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그건 우기에도 운행한다고 했다.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바탐방이라고 대답했다. 힘이 쭉 빠졌다.   

    캄보디아에는 강이 많아서 배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몬둘끼리라는 지명 말고는 아무 정보도 없이 떠난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떠나온 걸. 여행 중에 경로가 바뀌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계획을 철저히 하든, 허술하게 하든 여행 중에 일어나는 돌발 상황을 미리 알고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는 낙담하기 보다는 잠시 달콤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고 경로를 수정하면 그만이다. 나는 가까운 책방에 들어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캄보디아를 구입했다.    

    책 속 지도엔 시계 방향으로 주요 여행지들을 붉은색으로 표시해 놨다. 시엠립, 프라삿 프레아 비히어(Prasat Preah Vihear), 라따나끼리(Ratanakiri), 몬둘끼리, 끄라쩨(Kratie), 프놈펜, 캄폿(Kampot), 켑(Kep), 시하눅빌(Sihanoukville), 그리고 바탐방까지. 새삼 캄보디아에는 시엠립이나 몬둘끼리 말고도 갈 만한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곳들을 모두 가보자고. 지도상 시엠립 옆은 프레아 비히어였다. 그럼 당연히 다음 목적지는 프레아 비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번엔 프레아 비히어행 버스가 없다는 것이다. 발품을 아무리 팔아도 시엠립에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프놈펜을 경유하던지 아니면 렌터카나, 택시를 타라고 했다. 지도를 보면 시엠립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한 데다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가 있는 곳이라 당연히 버스가 다닐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교통편을 검색하던 중 프레아 비히어를 다녀간 두 외국인 블로거의 글을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불길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프놈펜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고장이 나 중간에 택시를 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버스 요금을 환불받았고, 다른 사람은 환불도 못 받았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내가 호기롭게 프놈펜으로 가서 버스를 탄다면 왠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론리 플래닛에서는 캄퐁톰(Kampong Thom)을 경유할 것을 추천했다. 캄퐁톰은 시엠립과 프놈펜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프놈펜까지 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 그나마 합리적이었다. 결국 나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혹시나 하고 호스텔 직원들에게 프레아 비히어까지 가는 방법을 아느냐 물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타거나 프놈펜을 경유하라고 했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침대 위에 놓인 수건으로 접은 백조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편했지만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았다. 막상 떠나오니 괜히 외로웠고, 이제 막 바탐방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기도 했다. 평소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연락해 안부를 묻고 싶기도 했다. 누가 등을 떠밀어 떠난 여행도 아닌데 고작 몇 주 여행하면서 호들갑을 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이토록 양가감정이 드는 것이었단 말인가. 

    갑자기 제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나는 보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나뭇가지에 보트가 걸린 일이며, 커다란 톤레삽 호수를 본 일까지 말이다. 그리고는 다음 행선지를 묻는 그녀에게 아마 캄퐁톰을 경유해서 프레아 비히어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발품을 팔아 알아봤지만 그게 최선이었다고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게 최선이라고? 왜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않았어. 차라리 스텅트렝(Stung Treng)으로 가는 벤을 찾아봐.」

   「스텅트렝? 예전에 자기가 살았던 그곳?」

   「응. 맞아. 스텅트렝에 가려면 프레아 비히어를 지나야 하거든. 기사님께 프레아 비히어에서 내리겠다고 말해. 그게 제일 빠른 방법이야.」

    나는 론리 플래닛에도 나오지 않는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냐며 감탄했다. 스텅트렝에서 1년 정도 살았던 그녀에게 이 정도 정보는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엔 직원들이 몇 명 있었다. 

   「혹시, 여기서 스텅트렝으로 가는 벤이 있나요?」 

   「네, 그건 매일 있어요.」 한 직원이 대답했다. 

   「그럼 그중에 프레아 비히어를 지나는 것도 있나요?」

   「전부 다 지날 걸요?」

   「그럼 제가 그 벤을 타고 가다가 프레아 비히어에서 내려도 될까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는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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