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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Feb 20. 2017

남대문 숭례문을 찍어보자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우고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정했다. 도성 건설 계획에 따라 종묘와 사직, 경복궁, 성곽이 세워졌다. 성곽의 동서남북에는 4개의 큰 문을 두었고, 인, 의, 예, 지의 한 글자씩 붙여주었다. 남쪽의 큰 문, 흔히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문은 숭례문(崇禮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입구에 “문화재 보호 화재예방”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의미가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등 온갖 고난을 겪은 숭례문은 2008년 방화로 문루 2층이 무너지는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이후 정밀 피해조사 2년, 복구공사 3년 등 총 5년에 걸쳐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화재 복구 과정에서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이 수리에 반영되었다. 헐려 나간 성문 좌우의 성곽도 재건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1호이다. 하지만 방화로 숭례문이 옛 모습을 잃게 되고, 복구 과정에서도 부실 공사 논란이 불거지자 숭례문의 위상은 더욱 흔들리게 되었다.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꿔야 한다는 국회 청원도 있었다. 숭례문은 조선총독부가 지정한 문화재였고,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이끈 왜군이 숭례문을 통해 입성했다는 이유로 고적 1호가 되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국보 1호라는 상징성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일련번호일 뿐 가치순으로 매겨진 것은 아니다. 숫자보다는 문화재에 담긴 의미를 기억하고, 그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여러 사건사고를 겪었고, 논란도 있었지만 숭례문 주변은 더욱 단장될 예정이다. 숭례문 앞 교통섬에는 광장이 들어서 각종 축제가 열리게 될 것이다. 기존에는 숭례문을 보기 위해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야 했는데 그러한 불편함은 사라질 전망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숭례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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