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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를 꿈꾸다 Feb 28. 2017

시대와 함께 공명하는 일본군 '위안부'

<낮은 목소리>로 <눈길>을 걷다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에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이 있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이 소녀상은 지난 연말부터 여러 고초를 겪고 있다. 지난 12월 28일,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1년이 되는 날, 소녀상이 기습적으로 세워졌다. 부산 동구청은 즉각 강제 철거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비난 여론이 일자 이틀 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최근 외교부가 부산시와 시의회, 동구청에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부산시의회가 추진하는 <부산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지원 조례안> 제정에도 소녀상과 관련된 항목은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소녀상 문제가 첨예하게 이슈가 되는 상황에 조용히 개봉을 앞둔 영화 한 편이 있다. 3.1절 개봉하는 <눈길>(2015)이다. 2015년에 KBS를 통해 특집극으로 방송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극장판으로 재편집되어 관객을 찾아간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여러 편 만들어졌다. 그 영화들은 우리 사회와 공명하며 이 문제 속에 담긴 시대적 의미들을 되새기게 했다.


출처 : 영화 <낮은 목소리>


세상으로 나온 할머니들


변영주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큐멘터리 영화 3편을 연작으로 만들었다.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1995), <낮은 목소리 2>(1996), <낮은 목소리 3 – 숨결>(1999)이 그것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점과 함께 1990년대의 여성과 전쟁과 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2>(1995)는 이전까지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런 모진 일을 겪었지만 감히 말 한마디 꺼낼 수 없던 시대에 대한 담대한 증언이다. 할머니들은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셨고, 영화를 통해 그것을 명백히 하고 싶어 하셨다.


이듬해 나온 <낮은 목소리 2>(1996)는 전작보다 분위기가 경쾌해졌다. 할머니들은 카메라에 대해 익숙해졌고, 영화 제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전작으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그것이 주는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교외로 이주한 할머니들의 일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농사를 짓고, 닭은 키우고, 요리를 한다. 세상과 할머니들과의 심리적 거리가 훨씬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낮은 목소리 3 - 숨결>(1999)은 두 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후의 후일담을 담는 형식이다. 그 사이 할머니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증가했고, 할머니들의 사회 참여도 적극적으로 변하였다. <낮은 목소리> 연작은 할머니들의 성장 드라마였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불쌍한 할머니가 아니라 누구보다 용감한 할머니로의 변신했다. 할머니들과 함께 그들을 받아들인 세상도 변한 것이다.


<낮은 목소리>는 원래 기생관광에 대한 다큐를 제작하다가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어느 날 변영주 감독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요정에서 일하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고, 어머니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매매춘을 시작했다는 사연이 있었다.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문화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은 오랜 시간 자리 잡은 그릇된 성문화의 견고함 때문일 것이다.


출처 : 영화 <그리고 싶은 것>


나의 상처로 누군가를 보듬다


2007년, 한국, 중국, 일본의 작가들이 모여 출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를 그림책으로 완성해 동시 출판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그림책을 맡은 권윤덕 작가는 다른 작가들과는 구별된 주제에 접근한다.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이야기를 그려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화 <그리고 싶은 것>(2012)은 권윤덕 작가가 그림책 <꽃할머니>를 그리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에 둔다. 그녀의 그림으로 인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그녀의 그림책은 무기한 연기되기에 이른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권 작가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림책이 완성되어 사람들과 조우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갖고 영화를 따라가게 된다.


<낮은 목소리> 이후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등장했다. 할머니들은 이제 연세가 있으셔서 이전처럼 카메라 앞에서 활발하게 움직이시기 어려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이 영화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는 할머니의 이야기에 우리 이야기도 얹었다는 점이다.


권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로 확장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본인 역시 그러한 고통을 겪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폭행의 피해자로서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이해하는 작가는 자신이 겪은 아픔으로 이 깊은 공백을 메워보고자 했다. 그녀의 진솔한 고백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에게 위로와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살아간 시절은 다르지만, 영화 속의 두 여인은 어린 나이에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겪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폭력의 가해자와 희생자는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사건을 숨겨야 할 이야기로 여기며 살아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 한쪽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자신이 겪은 수치보다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일로 책임을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야만과 폭력의 문화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와 표현이 필요하다. 그러한 이들을 편견 없이 만나 격려하고 응원해야 한다.


출처 : 영화 <소리굽쇠>


그들은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할머니들이 점점 나이 들어가시면서 일본군 '위안부'를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들은 사실상 제작이 어려워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워나간 것들이 극영화이다. <소리굽쇠>(2014)와 <마지막 위안부>(2014)는 의미 있는 주제를 담아냈음에도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사라져 갔다. 같은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딛고 <귀향>(2015)은 관객 350만을 모으며 기대 이상의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귀향>이 극장에 상영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는 않는 작은 영화라 흥행에 대한 염려도 많았다. 투자 사정이 좋지 않아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기부금으로 제작비를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네티즌들의 호응이 좋아 75,000명 이상이 여기에 참여하였고, 순제작비의 50% 이상인 12억 원을 투자받을 수 있었다. 영화 마지막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직접 그림과 함께 이 영화를 후원했던 관객들의 명단이 자막을 채운다.


조정래 감독은 2002년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14년이 흘러서야 비로소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는 영문도 모른 채 종군위안부로 끌려온 14살 소녀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시점으로 모진 세월을 견뎌온 할머니의 이야기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여 진행된다. 그 시절의 소녀와 현재의 할머니는 동일인물로 두 시대의 모습을 병행하여 보여주었다.  


<귀향>이 개봉할 무렵, 의미 있는 영화가 한 편 더 개봉했다. 시인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다룬 이준익 감독의 <동주>(2015)가 그것이다. <귀향>과 <동주>는 태평양전쟁의 막바지로 일제의 수탈이 최고조로 달한 1943년을 배경으로 한다. 청년으로 대표되는 남성들은 징용으로, 소녀로 대표되는 여성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원치 않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두 부류 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 한 채 타지에서 숨을 거뒀다.


<귀향> 개봉에 즈음하여 일본군 '위안부' 협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문제에 관하여 숨기려 하고, 외면하고자 하는 이들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그 슬픔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억과의 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잊는 순간 한 맺힌 역사가 반복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출처 : 영화 <귀향>


‘평화의 소녀상’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갔던 피해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 속에서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소녀상을 철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한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녀상을 치움으로써 자신들의 과오도 함께 지워버리고자 한다. 그들이 유도하려는 망각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남은 자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오랜 세월을 지나다 보면 자랑스러운 역사도 있고, 부끄러운 역사도 있기 마련이다. 오욕의 과거는 숨기고 싶기도 하고, 왜곡하여 달리 알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교훈을 후세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슬픔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뛰어넘는 발전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곁에는 ‘소녀상 지킴이’들이 있다. 대학생들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2015.12.38) 이틀 후부터 비닐천막을 세우고 24시간 철야로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은 강제 철거된 후 재설치되었다. ‘부산 대학생 겨레하나’는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소녀상을 지키는 1인 시위를 하고, 월 1회의 지킴이 모임을 갖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기 수요집회를 열고 있다. 부산 수영구에 있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 부산의 유일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으로 2004년 김문숙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문을 열었다. 위안소·위안부 관련 사진, 책, 신문기사, 영상물, 재판 기록 등 1천여 점의 귀중한 자료를 전시·보관하고 있다. 월세와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하여 폐관 위기를 여러 번 겪었고, 그때마다 네티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용기 있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고 공개 증언했다. 이후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 되었다.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고, 소녀상은 지킴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을 하고, 법적 배상까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할머니들 가슴에 한 맺힌 응어리들도 풀릴 것이다. 그러한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출처 : 영화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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