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벗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
몇 해 전 세종대로 사거리에서는 ‘3.1 만세 운동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태극기, 성조기와 함께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한국의 개신교 집회에서 이스라엘의 국기를 흔들었지만, 정작 이스라엘의 유대교는 예수를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성서의 주무대가 되는 곳이다. 구약성서에서 팔레스타인은 블레셋으로 표기되는데,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관계의 나라로 그려진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힘이 센 장사는 삼손이었다. 그가 가진 힘의 비밀을 알기 위해 유혹했던 데릴라가 블레셋 여인이었다. 또 소년 다윗이 물리친 거인 장수 골리앗도 블레셋 출신이었다.
이 지역은 유대교와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이슬람까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구약성서 시대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이들의 질긴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군사적 요충지로 늘 전운이 감돈다. 주변의 어느 세력도 이 지역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생각이 없다.
구약성서와 디아스포라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서 이삭은 유태인의 조상이 되었고,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 팔레스타인 지역을 성지로 여긴다.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에 두기 위해 항상 견제해왔다.
성서가 쓰인 시대에는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바빌로니아가 두 왕국을 멸망시키고 일부를 포로와 노예로 끌고 갔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살던 이들은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 대왕에 의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로마시대에 이르러 식민지배를 받던 유태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이후 약 2천 년간 나라 없는 민족으로 떠돌며 살게 되었다.
유태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종교 규범과 생활관습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분산’, '씨를 뿌린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디아스포라’라고 불렀다. 원래 바빌로니아와 로마시대에 본토를 떠나 살던 유태인들에게 통용되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딱히 민족을 가리지 않고 사용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던 유태인들은 언젠가 다시 자신들의 고향땅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가 유태인들의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던 운동이 ‘시오니즘’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써 그들의 꿈을 실현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
다시 돌아온 유태인들과 그 사이 이 곳에 터 잡은 아랍인들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둘 사이의 대치로 납치와 살인이 벌어지기도 하고, 로켓과 공습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에 관한 뉴스는 인터넷과 CNN을 통해 우리 안방까지 꾸준히 중계되어 온다.
2000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 탱크를 향해 돌은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사진이 유명세를 탔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고 했다. 2015년 개정된 이스라엘 형법에 따르면 투석행위는 최대 20년까지 징역이 가능한 중범죄가 되었다. 최근에는 총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진 팔레스타인 청년을 조준 사살한 이스라엘 군인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국제적 논란을 일으켰다. 이 군인은 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이 지속되면서 전쟁터로 내몰리는 청년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영화감독인 하니 아부 아사드는 이러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작품 <천국을 향하여>(2005)는 몸에 폭탄 띠를 두르고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잠입해 자살 폭탄 테러를 하라는 명령을 받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순교자 혹은 테러범이 되어야만 하는 청년들의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잘 보여주었다.
<오마르>(2013)에서는 팔레스타인에서 빵을 만들어 파는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는 경비병의 총격을 무릅쓰고 분리장벽을 넘나들며 친구와 연인을 만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군부대를 습격하고, 군인을 죽이게 되었다. 수감된 그는 각종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이중 스파이가 되어 출소한다.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믿지 못하게 된 주인공은 결국 비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시작은 서로를 바로 아는 것부터
오랜 세월 적대적으로 상대를 대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는 정착될 수 있을까? 그들이 대립해온 전쟁의 역사를 보자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노력조차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명저를 남긴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랬다. 바렌보임은 유태인이고,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이었다. 출신이 달랐던 이들은 음악이라는 평화의 무기를 함께 들었다.
199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괴테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예술축제가 열린 적이 있다. 당시 세계 각국의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두고 ‘바이마르 워크숍’을 개최했다. 젊은 음악가들은 함께 연주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이때 이스라엘과 아랍의 청소년들이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가 구성되었다. 이를 계기로 바렌보임 사이드 재단이 2005년에 설립되었고, 음악을 통하여 평화와 대화, 화해를 촉진시키고자 노력해왔다.
바렌보임은 괴테가 쓴 '서동시집'을 오케스트라 이름으로 선택한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유럽의 각국들은 국수적인 민족주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 시절, 동방의 역사와 문학에 우호적이던 괴테는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에 대한 화답으로 시집을 발행한다. 타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괴테의 ‘서동시집’에 담긴 의미이다. 유태인과 아랍인의 화합을 위해 만든 오케스트라에 '서동시집'이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면서 단원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화하고 접촉하면서 서로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바렌보임과 오케스트라는 팔레스타인의 라말라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원제목은 '지식이 시작이다(Knowledge is the Beginning)'이다. 모든 것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데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난 2011년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방문했다. 광복절을 맞아 바렌보임과 임진각에서 평화콘서트를 열었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울려 퍼졌다. 4악장의 합창 부분은 인류의 화해와 형제애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먼 곳에서 벌어지는 해외토픽 같지만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남북한의 문제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만큼이나 골이 깊다. 남북한의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라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우리나라 통일의 토대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문화가 남북의 청소년들을 이어 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이방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굿모닝 예루살렘>은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1년간 살게 된 저자의 경험을 그린 책이다. 아이를 돌보고, 이웃을 만나는 평범한 생활 가운데, 분리장벽과 정착촌을 목격한다. 분쟁의 원인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사소한 일상을 통해 그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대치되는 상황 앞에서 평화를 전하는 자와 증오심을 고착시키는 자가 있음을 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을까? 더 정의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역할도 필요하다. 진정한 평화는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 오는 법이다. 하루아침에 성취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