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평화를 꿈꾸다 Mar 16. 2017

전쟁터를 탈출했으나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 같은 삶

멀리 가고 싶어 함께 간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시리아 내전이 10년을 맞았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의 자료에 따르면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최소 38만 8652명에서 최대 59만 4000명으로 추정된다. 약 560만 명이 난민이 됐고, 670만 명은 실향민이 되어 국내를 떠돌고 있다. 유니세프는 내전의 피해를 본 어린이가 550만 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 인근 국가 난민 캠프에 120만 명의 어린이가 생활하고 있고 캠프에서 태어난 아이는 4만 명에 이른다. 


그간 언론을 통해 시리아 어린이에 대한 소식을 많이 들어왔다.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엎드린 채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쿠르디와 알레포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구조된 5살 꼬마 다크니시는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수단 출신의 만화가 할리드 알바이가 그린 카툰은 전쟁을 피해 집을 떠나면 쿠르디가 되고, 집에 머물러 있는다면 다크니시가 되어버린다는 아픈 의미를 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분쟁과 각종 대형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와 비례하여 난민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국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경우도 많아졌다. 이들을 향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체계적인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지만, 세계의 이목은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듯하다. 난민을 향한 반감들도 많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처 : 할리드 알바이 트위터


희망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마주치는 암초들


<인 디스 월드>(2002)는 파키스탄에서 영국 런던까지 희망을 찾아 떠난 두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로드무비다.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컨테이너 박스에서 질식사한 중국 난민 58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배경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오면서 주인공을 실제 아프간 난민 가운데 캐스팅했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차용한 극영화로, 배우들과 긴 여정을 실제로 함께 하면서 만들어냈다. 이들이 연기하는 난민의 행로는 무엇보다도 생생하다.


12세 고아 소년 자말은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캠프에서 태어났다.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런던으로 떠나려는 사촌 형 에나야트의 소식을 듣게 된다. 영어를 못 하는 사촌 형의 통역을 맡기로 하며 밀입국에 동행한다. 밀입국 브로커, 검문소의 관료, 인신매매 마피아 등 여정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에만 바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을 지나면서 목숨을 잃을 뻔한 숱한 위기를 넘기고 자말은 꿈에 그리던 런던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망명 신청은 결국 거부되고, 18세 이전에 영국을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자막으로 전한다.


<디판>(2015)은 유럽으로 찾아온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전이 한창인 스리랑카에서 반군 한 명이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망명을 결심한다. 브로커에게 죽은 사람의 신분증을 사고, 그의 가족이었던 아내와 딸의 역할을 할 사람도 황급히 마련한다. 얼마 후 이들은 프랑스로 입국한다.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는 가족으로 행세해야만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왔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머리에 야광 머리띠를 하고 2유로짜리 물건을 파는 디판은 어느덧 파리의 하층민으로 전락해 있다. 그가 사는 빈민가는 갱단에 의해 총격전과 칼부림이 난무하는 곳이다. 평화를 위해 왔건만 이곳에도 평화는 요원한 것 같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얄리니는 사촌이 사는 영국으로 도망가려 한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향하지만, 그곳에 도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난민의 문제는 유럽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브렉시트라 하여 최근 EU를 탈퇴하기로 한 영국의 결정에는 난민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동유럽 이주민과 시리아 난민 등이 서유럽으로 대규모로 이주해오면서 고용과 복지, 범죄 등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간 영국인들에게 쌓였던 반감이 국민투표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출처 : 영화 <디판>


잃어버린 아이들이 아니라 발견된 존재들


1987년의 수단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내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화롭던 마을이 공격당하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에티오피아와 케냐로 수천 km를 이동하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아이들은 병들어 죽고, 총에 맞아 죽고, 소년병으로 끌려간다. 몇몇 아이만이 천신만고 끝에 난민캠프에 도달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캠프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국 공항에서 여동생과 급작스럽게 헤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아이들은 직장을 구하고, 공부도 시작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다. 난민들 아이들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선하여 딱히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아이들은 등장하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다.


<뷰티풀 라이>(2014)는 ‘잃어버린 아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잃어버린 아이들’은 반군에 의해 강제로 소년병이 되거나, 이를 피해 국경을 넘은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실제 수단 출신의 ‘잃어버린 아이들’이 캐스팅되었다. 어린 시절 소년병으로 끌려간 경험이 있던 이들은 케냐 난민촌에서 정착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새 삶을 시작했다. 촬영도 아프리카 최대 난민촌이자 전쟁 난민 10만 명을 수용한 실제 카쿠마 난민촌에서 이뤄졌다. 극 중 등장하는 ‘잃어버린 아이들’도 수단 난민 출신의 부모들을 둔 자녀들이라 한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잃어버린 아이들’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미국으로 이주해 오면서 모두가 똑같은 1월 1일의 생일을 갖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아이들’은 자신들을 잃어버린 존재가 아닌 발견된 존재, 되찾아진 존재로 여기며 성장해간다. 모두가 어우러져 파티를 즐기는 장면은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아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먼길을 걸어 난민촌에 도착했다. 그리고 13년 후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일원으로 차근차근 정착해 간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가족애와 인간미는 난민들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그 머나먼 여정에 동참해줄 사람들이 더욱 필요하다.


출처 : 영화 <뷰티풀 라이>


브라질 올림픽에 출전한 난민들  


2016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특별한 팀이 등장했다. 난민으로 구성된 팀이 올림픽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남수단, 시리아, 콩코 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 출신인 10명의 선수로 구성되었다. 난민팀은 개회식 입장 때, 자국 국기가 아닌 올림픽 오륜기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가슴에 올림픽기를 달았고, 금메달을 받게 된다면 올림픽 찬가를 연주하기로 약속되었다.


리우패럴림픽대회(장애인올림픽)에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역대 처음으로 난민 팀도 참가했다. 올림픽 성화봉송주자로 뛴 바 있는 이브라힘 후세인은 난민팀 수영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유프라테스 강 근처 시리아 남동부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수영 코치인 아버지에게 수영을 배웠다. 시리아 내전동안 폭격 속에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가 오른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난민 선수들은 비극을 몸소 체험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들의 재능과 정신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난민팀은 존재 그 자체로 전쟁으로 소외되고 고통받고 있는 전 세계의 난민들에게 강력한 지지와 메시지를 보내준다. 어려움에 처한 난민들이 용기를 갖고 꿈에 도전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 아니스는 올림픽 기자 회견을 통해 "다음 올림픽에서는 난민 팀 없이, 우리나라 깃발 아래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앞으로 올림픽에서 더 많은 난민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난민이 없어서 난민팀 자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출처 :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한국에서 난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는 한국을 찾은 난민의 이야기다. 저자인 욤비 토나는 콩고 민주공화국 출신으로 비밀정보국에서 근무하던 중 국가 기밀 유출 죄로 비밀 감옥에 수감되었다. 갖은 옥고를 치르고 겨우 탈출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고향에서는 엘리트였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국내에서 공장을 전전하고, 악덕 사장을 만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콩고뿐 아니라 인근에 위치한 소말리아, 르완다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지닌 굴곡진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의 난민 신청 절차와 심사제도를 엿볼 수 있고, 우리나라가 난민이 살기에는 녹록지 않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욤비 토나는 2003년부터 난민 운동을 시작했고, 국내외 난민들을 위해 활동해 왔다. 현재 광주대 교수이며, 최근에는 UN NGLS(Non Governmental Liaison Service, 유엔 비정부연락사무소) 위원으로 위촉됐다.


유엔 난민기구(UNHCR)는 난민을 보호하고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49년에 창립되었다. 난민들을 고국으로 되돌아가게 하거나 다른 나라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난민보호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4년과 1981년, 두 번에 걸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UNHCR 한국대표부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해왔다. 난민지위 불허 판정을 받은 이들과 전 세계 난민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알리고, 이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한국사회에 호소하고 있다.


매년 6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난민협약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하고, 난민보호라는 국제 사회의 책임을 전 세계가 공유하고자 제정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난민과 강제 이주민들의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난민에 대한 지원이나 참여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난민에 대한 관심을 늘리고, 인권 감수성을 더욱 키워야 하겠다. 


욤비 토나는 각고의 노력 끝에 2008년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합법적 체류가 가능해지자 콩고에 있던 가족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의 가족 사연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었고, 대학에서 인권 관련 강의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의 자녀들은 ‘콩고 왕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중의 관심을 얻었지만,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출처 : 이후 <내 이름은 욤비>


이전 03화 위기에 처한 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