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에서 다시 소년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결혼식을 앞둔 한 쌍의 남녀가 예물로 반지를 교환하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예물 반지로 가장 인기 있는 보석은 단연 다이아몬드이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는 깨지지 않는 사랑과 함께 막대한 부(富)를 상징한다. 그러한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그곳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 나라가 되어 있을까?
세계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나라는 서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이다. 이 나라는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보크사이트와 철광석의 매장량도 풍부하다. 천연자원이라면 부러울 것이 없는 나라이지만 실상은 아프리카 최빈국 중 하나이다. 이 나라는 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시에라리온을 피로 물들인 다이아몬드
시에라리온이 가난에서 허덕이는 이유는 풍부한 천연자원의 혜택이 일반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전과 쿠데타를 반복적으로 겪는 동안, 정부와 반군은 더 많은 무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부의 원천이 되는 광산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를 캐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었고, 전쟁 중에 불법으로 채굴된 다이아몬드는 이웃 나라에 밀거래를 통해 팔려나갔다. 이렇게 시에라리온에서 팔려나간 다이아몬드는 무기가 되어 되돌아왔다.
이런 다이아몬드를 사람들은 ‘분쟁 다이아몬드’라고 불렀다. 1990년대 후반부터 NGO는 이 다이아몬드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즉 ‘피의 다이아몬드'라는 뜻이다. 출처와 유통과정에는 관심도 없이 보석에만 눈이 먼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강제노역을 하던 중 크고 희귀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이를 손에 넣기 위한 각축전이 주요한 내용이다. 영화를 통해 피로 얼룩진 다이아몬드를 밀수하여 유통되는 과정이 폭로된다.
이 영화는 시에라리온에서 내전에 휘말려 군대에 징집된 뒤 결국 자신의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게 되는 한 소년병의 비극적인 상황이 삽입되어 있다.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12살 아이가 반군에게 납치된 후, 살인마로 세뇌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전쟁 영화를 보여주며 영웅심을 높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마약을 흡입시키기도 한다.
어린이들이 전쟁터로 불려 다니는 이유
과거에는 무기가 크고 다루기 어려워서 어린이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무기가 작아지고 다루기도 쉬워져서 소년병의 참전이 쉬워졌다. 소년병들은 직접 전투에 투입되는 경우뿐 아니라, 연락책이나 첩보수집을 목표로 활용되기도 하고, 요리사나 짐꾼으로 쓰이기도 한다.
소년병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어른들의 탐욕 때문이다. 소년병들은 어른들에 비해 돈이나 음식을 덜 주어도 되기 때문에 병력 유지비가 덜 든다는 경제적 이점이 있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조종하거나 협박하기도 쉽다. 타인의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이해가 적어 누구보다도 잔인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반군들은 마을을 공격하여 어린이들을 납치해 오고, 소년병으로 육성하고 있다. 개중에는 전쟁통에 가족을 잃고, 숲을 헤매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의지할 곳이 없는 아이들이 안전을 보장받고, 소속감을 얻기 위해 기꺼이 위험을 선택해 버리는 것이다.
반군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아이들은 온갖 폭력적인 문화에 노출된다. 무기를 사용하고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운다. 적에게 난폭하고 폭력적일수록 인정을 받는다. 양심은 무감각해지고, 공포심도 동정심도 없는 인간병기가 되어버린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어른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그대로 전수받게 되는 것이다.
소년병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랩과 힙합을 좋아하던 이스마엘 베아는 12살의 어느 날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기 위해 친구들과 집을 나섰다. 그 길로 반군에게 끌려갔다가 3년간의 소년병 생활을 마치고,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으로 소년병 시절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훗날 전쟁피해 어린이를 돕는 유니세프 대사에 임명되기까지 했다.
이스마엘 베아는 소년병 출신들에게 성공적인 롤모델이다. 내전에 휩쓸려 강제 징집을 당했다가, 구출되어 재활을 하고,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은 소년소녀들을 위해 일한다는 그의 경력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러한 사례처럼 적용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소년병은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겪었다. 마을이 공격당하고, 부모와 친구가 살해당하는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였다. 끌려가서 학대를 당하기도 했고,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잔인한 폭력행위에 가담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저항을 하기도 하고, 혼란을 틈 타 탈출하거나 구출받기도 했다. 그동안 피해자와 가해자, 생존자를 극적으로 넘나들어버린 이들은 모호한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소년병들은 상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이용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고, 누군가에게는 불쌍한 희생자가 되었다가, 또 누군가에게는 구조된 생존자가 되었다. 소년병을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로 접근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는 일이기도 하다. 각자가 경험한 것들이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아들이는 법
전쟁터로 끌려갔던 소년병들이 탈출하거나 혹은 구출되어 돌아온다. 막상 전쟁터를 떠나왔다고 해도 어린이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사회의 보호 기능이 상실된 어린이들에게는 가정해체, 부상, 장애, 성폭력, 정신적 충격 등 많은 위험 앞에 놓이게 된다.
국제기구와 NGO들은 소년병과 피해 어린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재활훈련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과거의 끔찍한 시간을 잊고, 지역사회에 다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임시학교를 열어 계속 교육받을 수 있게 하고, 음악과 미술, 놀이를 동원한 심리치료를 병행한다. 영양실조 치료식, 의료서비스, 식수 등도 제공한다.
전쟁 중에 가족과 헤어진 어린이에게 가족을 되찾아 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를 찾지 못할 경우에는 가까운 친척을 찾거나, 양부모를 구해 준다. 가정의 회복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하는 것과 같다.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만이 폭력과 공격성을 누그러뜨리고, 평화와 생명에 대한 존중을 회복시켜 준다.
소년병의 문제는 한 나라의 구조적인 문제나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자원, 빈부격차, 사회 붕괴 등 사회적인 문제와 충돌은 언제고 아이들을 전쟁으로 내몰 원인이 된다. 어린이를 군대에 징집하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을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소년병 문제를 근절시킬 수 없다. 국제적 차원의 법대응보다는 일상적인 평화의 회복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