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초록잎들을 보며 이토록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까.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을 닮은 나무들을 눈에 한가득 담은 적이 있을까.
나무에도 눈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만약 그때 본 거기에 있다면, 눈높이를 맞추어 소통을 한 셈이 되겠지.
나무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을 때, 그곳에 가야겠다.
(해당 카페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서울숲역 근처에 있는 어느 카페에 방문했다. 5층짜리 건물에 1,3,5층만 카페로 운영하고 있었다. 층마다 컨셉이 있어서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달랐다. 그 카페를 찾은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언젠가부터 한 카페이지만, 층별로 컨셉을 다르게 하여 꾸민 곳을 꽤 보게 되면서 그런 곳을 알게 되면 한 번은 꼭 방문해 본다. 더구나 다채로이 향유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카페에 도착하기 전부터 나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카페에 도착하여 설레는 맘으로 주문을 한 뒤, 1층과 1.5층, 2층을 구경했다. 비밀 이야기를 하기 좋은 아지트 같은 공간과 땅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3층과 5층을 구경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혼자서 뽈뽈거리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3층은 보자마자 청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여행지에서 만난 작은 카페 같았다. 바닷가에서 볼 법한 디자인의 창가 쪽 의자와 뷰가 한몫했다.
매우 큰 통창은 시원하게 뻗은 가지와 푸릇한 나뭇잎들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안내문의 글귀처럼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으면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듯 했다.
5층은 따스함과 청량함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안내문에는 포레스트 라운지, 개인의 한 공간, 누군가의 집, 편안한 무드의 공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서울숲 큰 나무들 그 위의 시선으로 통창을 통해 보는 전경'이었다.
5층 역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통창이 있었다. 안내문의 글귀대로 큰 나무들 위의 시선으로 보는 전경이 통창을 가득 채웠다. 키가 크고, 초록 잎이 무성한 나무들 위로 하늘이 함께 보였다. 그 광경이 매우 근사했다. 실제가 아닌, 그림으로 보일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창 앞에는 스피커가 놓여 있었다. 스피커+통창+나무들의 윗부분 전경의 조화를 한눈에 담으면서 카페 주인의 감각에 감탄했다. 그 세 가지 조합은 예술적이었으며, 인테리어 잡지 속 사진을 보는 듯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게 카페 내부와 전망을 보고 있는 건지, 전시회에서 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그러고 보니 나무들의 윗부분만 떼어놓고 본 적이 없었다. 키가 이리 큰 나무와는 눈높이가 맞춰진 적도 없었다. 키가 작거나 2~3그루의 나무와만 가능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저 초록 잎들을 보며 이토록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까.
뭉게뭉게 떠다니는 구름을 닮은 나무들을 눈에 한가득 담은 적이 있을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순간에 내 몸이 붕 떠서 저 나무들 위에 앉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티라미수가 유난히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며칠 후, 그곳을 다시 찾았다. 내가 본 광경과 느낀 기분을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사진만으론 공유가 안 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빗속을 뚫고 그 카페에 갔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의 반응을 살폈다. 다행히 그의 입에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비가 와서, 날이 흐려서 더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비가 오는 대로, 흐린 대로 그 자체로 매력이 있었다.
오히려 그날의 광경이 더 기억에 남는다.
비를 맞은 잎들은 수분을 머금어 색이 더 짙어졌다. 선명해진 색감이 흐린 하늘의 아쉬움을 달래줬다.
초록색을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초록색의 잎들에 매료되었다. 비의 자극과 바람의 기운에 잎들이 흔들렸다. 그 모습 마저도 참 예뻤다.
나무에도 눈이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만약 그때 본 나무 윗부분에 있다면, 눈높이를 맞추어 소통한 셈이 되겠지.
한 그루도 아니고 많은 나무와 소통을 했다니.
더구나 키가 큰 나무들과 눈높이를 또 어디서 맞출 수 있을까.
나무와의 소통 덕분인지, 소란스러운 마음이 정돈되었다.
그때 이후로 ‘나무와 소통’하면, 그 카페가 생각난다.
나무와 눈높이를 맞추고 싶을 때, 그곳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