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소중한 이에게 뜨개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지.
그러다 보면, '나'도 뜨개질 같은 사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미 가까운 사람이 되어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 본다.
나는 뜨개질 같은 사람인가.
나에게 뜨개질 같은 사람이 있을까.
이미 있는데, 익숙함에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해당 카페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보통 공간이 주는 기운이 더 크며, 돋보인다.
그러나 그곳은 공간보다 손님들이 주는 기운이 더 크고 돋보였다.
성수동에 있는 다른 카페들처럼 벽돌외관이 독특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개방감이 느껴지는 탁 트인 내부와 높은 층고의 공간이 펼쳐졌다.
실과 소파의자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유니크했다.
1층과 2층은 트여 있는 데다 2층은 복층 형식이었다.
3층에는 1, 2층에 비해 평범한 공간과 야외좌석이 있었다.
대형 카페인데도 이상하게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어디서 비롯된 걸까 생각하며 내부를 살펴보았다.
보기만 해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실들 덕분이었다.
왼쪽에는 높은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이 있었고, 알록달록한 실들이 가득 있었다.
색깔별로 콘사와 볼실이 가지런히 배치된 모습은 전시회를 방불케 했다.
뜨개질 박물관을 관람하는 기분도 들었다.
오른쪽과 가운데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의자가 눈에 띄었다.
의자들의 색이 벽면에 있는 실들과 같은 색이었다.
벽면에 전시한 실들만 보아도 작품 같은데, 실과 같은 색감의 의자들까지 있으니
실과 가구의 콜라보레이션 전시회를 관람하는 듯했다.
뜻밖의 예술 작품 향유에 땅속까지 가라앉았던 기분이 쑤욱 올라갔다.
왼쪽 벽면 말고도 곳곳에 다양한 색감의 실이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
성수동의 뜨개질 소품샵에서 보았던 파스텔톤 색감의 실은 보자마자 반가웠다.
역시나 여리여리하고 화사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원래 알던 원색의 실부터 처음 보는 색감의 실도 있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복슬복슬한 실, 거친 실, 단단하고 빳빳한 실까지 질감도 다양했다.
질감에 따라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곳곳에는 완성품이 있었고, 코바늘과 선물하기 좋은 뜨개질 세트제품도 있었다. 볼실과 코바늘, 세트 제품은 모두 구입 가능했다.
카페에서 뜨개질도 하고, 음료와 디저트도 즐기고, 뜨개질 도구 쇼핑까지 할 수 있다니,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쇼핑몰이나 다름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토록 뜨개실의 세계를 다양하고 세밀하게 본 적이 없어서 구경만 하는데도 시간이 훌쩍 갔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실 한 뭉치도 있었다.
뜨개질하러 왔다고 하면 색은 랜덤으로 실 한 뭉치를 준다고 한다.
나는 뜨개질하러 왔냐는 질문에 NO라고 답했는데도 실 한 뭉치를 챙겨주셨다.
사장님과 직원도 실처럼 다정했다.
뜨개질하러 방문한 게 아닌데 이상하게도 실 한 뭉치의 존재가 참 좋았다.
(괜히 뜨개질을 좋아하는 미운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 테이블 위에도 실 한 뭉치가 올려졌다.
음료와 디저트 옆에 낯선 물건이 있는 게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호지차라떼, 에그타르트 그리고 동글동글한 챠콜색 실 한 뭉치.
모두 따스하고 포근한 결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분명히 호지차라떼를 아이스로 시켰는데 몸에 들어온 온기는 따스했다.
에그타르트는 더욱 고소하면서 부드러웠다.
그 카페의 손님들 손에는 모두 바늘과 실이 들려 있었다.
내 손에만 노트북이었다. 괜스레 받은 챠콜색 실 한 뭉치를 만지작댔다.
혼자 와서 조용히 뜨개질하는 사람, 일행과 함께 와서 담소를 나누며 뜨개질하는 사람,
삼삼오오 와서 조용히 뜨개질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스웨터 샘플을 보면서 미팅하는 그룹까지
모두 실과 함께였다. 처음 보는 이색적인 광경에 노트북을 봐야 할 눈이 종종 한눈을 팔았다.
매장에는 그 광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뜨개질에 집중하기에도 좋고, 내 곁에 예술적 감동을 쓰러 온 나도 듣기 좋았다.
다양한 실들에 둘러싸인 채, 뜨개질하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보았다.
실을 닮은 기운이었다.
실처럼 부드럽고, 따스하고, 포근한... 폭닥폭닥한 그런 기운 말이다.
무엇보다 평온해 보였다.
각자 가진 기운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뜨개질하며 느낀 감정들이었다.
트렌드를 보면 사람들의 취향뿐만 아니라 고충을 알 수 있다.
뜨개질이 오랫동안 트렌드로 자리 잡을 만큼, 젊은 사람들이 왜 뜨개질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고 싶은 마음.
가족이나 친구, 연인의 품이 실의 촉감을 닮았으면 하는 마음.
뜨개질을 할 때 느끼는 평온함과 안정감을 가까운 사람에게서 찾고 싶은 마음.
따스한 현실에서 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들은 바람이었으며, 그 바람을 뜨개질이 채워주고 있던 게 아닐까.
같은 맥락으로 붉은 벽돌집과 공장 등 옛 건물의 틀이 남아있는 성수동을 느낌 좋은 동네라고 칭하는 것도,
레트로가 트렌드가 되고,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공간을 더 많이 찾는 것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온기와 푸근함을 닮아서이지 않을까.
무관심과 차가움의 현실 속에서 옛 향수를 찾고 싶은 게 아닐까.
무언가로 공허함을 위로하는 건 괜찮지만, 물건에 너무 기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있지 않은 존재보다 인간에게,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었으면 한다.
그럼, 서로 기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겠지.
그렇다면, '나'부터 소중한 이에게 뜨개질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지.
그러다 보면, '나'도 뜨개질 같은 사람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미 가까운 사람이 되어줄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 본다.
나는 뜨개질 같은 사람인가.
나에게 뜨개질 같은 사람이 있을까.
이미 있는데, 익숙함에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