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부족해서 당근을 넣었어

by Eloquence

대식가이며,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가.

별거 아닌 음식이라도 위안을 얻기도 하고, 공허함을 채우려고 할 때도 있다.

(후자는 최근에 한의원을 다니면서 알게 된 점이다. 이 부분은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나를 위해 만든 요리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간단해 보이는 음식이 알고 보면 손이 많이 가거나 난이도가 높은 게 많던데,

이건 얼마나 많은 수고가 녹아 있을까.


'(요리가 익숙지 않은 사람일 때) 서툰 손길로 하느라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저 사람에겐 이 간단한 요리도 간단한 게 아니었을 텐데.'


'무슨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이것을 요리했을까.'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요리하는 내내 설레었을까.'


'내가 잘 먹고, 든든히 배를 채웠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 있겠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보고, 기억하는 그 관심이 여기에 들어 있겠구나.'


이 생각들은 내 미각과 시각에 콩깍지를 씌워주고, 고마움과 감동을 배로 느끼게 한다.

연인의 요리 앞에서는 콩깍지가 여러 겹으로 씌워져서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는 연애 초반부터 자주는 아니었지만, 내게 요리를 해줬다.

요즘에는 요리에 재미를 붙였는지, 종종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다.

점점 어려운 요리에 도전하며, 늘 성공한다.


어느 날, 능숙하게 요리하고 있는 그를 보면서 옛 생각이 났다.

그는 원래 요리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매우 실력자이지만, 실전은 실력자가 아니었다.

김밥을 어떻게 말 줄 몰라서 허둥지둥했고,

파스타 소스를 데울 생각조차 못 해서 잘 삶은 면 위에 차가운 파스타 소스를 들이부었다.

그것 그대로 내 생일상 위에 올려놓고 퇴근하는 나를 기다렸다.

그랬던 사람이 이제는 캘리포니아롤을 예쁘게 할 정도로 나보다 더 김밥을 잘 만다.

이젠 절대로 차가운 파스타 소스를 주지 않는다.


능숙하게 웍을 돌리는 그를 보면서 고마움이 밀려왔다.

실수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준 그가 참 고마웠고, 예뻤다.

집밥 구색으로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눈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둔 뒤, 음식을 먹었다.

역시나 맛있었다. 맛과 그의 정성에 행복했다.

행복감에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색이 부족해서 당근을 넣었어."


그의 말에 음식을 다시 보니, 정말 주황빛의 당근이 돋보였다. 마치 포인트 색처럼.

저 당근이 없었다면, 저 음식이 밋밋해 보였을 것 같았다.

당근이 가진 고유의 색이 그토록 예뻐 보인 건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는 늘 요리로 작품을 만들었다.

계란 후라이 하나도 내가 먹을 건 노른자가 노오랗고 동그란 걸 주고,

밥 위에 레토르트 소스를 붓든, 볶음밥을 하든 상관없이 늘 밥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군만두도 강강술래를 하듯 동그랗게 펼쳐놓고, 전도 가지런히 놓았다.

김치도 반찬 그릇에 내가 덜을 때와 그가 덜을 때 차이가 크다.

자신의 것은 아무렇게나 하면서 꼭 내가 먹을 것과 같이 먹을 것은 예쁘게 하려고 노력한다.

난 그동안 상차림을 받은 게 아니라 작품을 받은 거였다.


그의 손이 붓이 되고, 식재료는 물감이 되었으며 그릇은 캔버스였다.

피사체는 나에게 예쁘고, 맛있는 요리를 건네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다.

그의 요리는 작품이며, 나만을 위한 한정판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큰 감동을 불러오는지 알기에

사람들은 늘 집밥을 그리워하고, 집밥하면 요리한 사람의 사랑이 떠오르는 거 아닐까.

나만을 위한 한정판 작품은 어디가서 쉽게 구할 수 없으니.



+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이제 내게 집밥은 남편의 요리 또는 내가 남편에게 해주는 요리가 되겠구나.

그래도 원조 집밥인 어머니의 상차림은 지울 수 없겠지.



그의 손이 붓이 되고, 식재료는 물감이 되었으며 그릇은 캔버스였다.
피사체는 나에게 예쁘고, 맛있는 요리를 건네고 싶은 그의 마음이었다.
그의 요리는 작품이며, 나만을 위한 한정판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큰 감동을 불러오는지 알기에
사람들은 늘 집밥을 그리워하고, 집밥하면 요리한 사람의 사랑이 떠오르는 거 아닐까. 나만을 위한 한정판 작품은 어디가서 쉽게 구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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