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③ : 구찌 (1921)
매출 만큼 브랜드 가치와 성장을 알리는 지표가 있을까요? 구찌 패밀리의 몰락 후, 톰 포드(95년~04년 담당)와 프리다 지아니니(06년~14년 담당)를 거쳐 현재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를 이끌고 있습니다. 섹슈얼한 구찌를 만든 톰 포드의 최고 매출은 2001년 3.4조원 (26억 유로)죠. 이후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구찌를 그려낸 프리다 지아니니는 2013년 4.7조 원 (36억 유로)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어떨까? 자그마치 2021년 "13조 원" (97억 유로)입니다.
톰 포드의 구찌는 포르노 시크, 프리다 지아니니는 서정적 구찌를 그렸습니다. 양상은 다르지만 둘의 공통점은, 그래도 럭셔리처럼 보였다는 것이죠. 반면, 미켈레의 구찌는 그렇지 않다. 럭셔리보단 스트릿하다. 즉, 언제 어디서도 입기 편합니다.
톰 포드와 프리다 지아니니의 구찌는 특별한 장소나 날에 힘 줘서 입는다면,
미켈레의 구찌는 평소에도 입기 편하다.
거기다 톰 포드와 프리다 지아니니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구찌인줄 모릅니다. 그러나 미켈레의 구찌는 누가봐도 구찌입니다. 구찌 로고 플레이를 상하의, 신발 가리지 않고 사용하죠. 그러나 조잡하진 않습니다. 한 마디로 힙하죠.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심벌들을 사용합니다. 특히 구찌 로고 플레이를 많이 사용하는데, 미켈레 이전의 구찌는 로고를 주로 가방에서만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미켈레는 가방 뿐만 아니라 상하의, 신발 등 RTW로 로고플레이를 확장했죠. 또한 호랑이, 뱀 등 동물은 물론이고 미키 마우스와 같은 캐릭터도 많이 사용합니다. 누가 봐도 구찌라는 것을 알려주는 미켈레의 맥시멀리즘이 MZ세대들의 인싸력(?)과 잘 융합된 것이죠.
"레트로(Retro)"란 50년 이전의 패션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지금부터 50년 전, 1970년대 패션은 플라워 패턴, 프릴, 플레어 핏의 바지들이 유행했고, 미켈레의 구찌는 이러한 레트로 요소를 가미했죠. 2016년 S/S 컬렉션에서 가장 잘 나타나기에 대표적인 3개 룩으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좌) 플라워 패턴의 투 피스. 또한 50년대 GRG 가방/로퍼로 맥시멀리즘과 함께 레트로풍을 재현
(중) 프릴 블라우스와 플라워 패턴의 스커트. 특히 스커트의 기장은 70년대 유행했던 롱 기장의 스커트
(우) 70년대 유행한 플레어 팬츠와 폭이 두꺼운 넥타이, 벨트로 레트로함을 더욱 강조. (플레어 팬츠 : 무릎 아래로 통이 나팔처럼 넓어지는 쉐입)
미켈레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방 라인들입니다. 디오니소스 백은 그리스 신화에서 와인의 신인 디오니소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죠. 디오니소스의 상징 중 하나는 호랑이인데, 실제로 가운데 금속 버클은 호랑이 모리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마몽트백의 더블G는 기존의 더블G와 방향이 다르죠. (과거 더블 G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몽트의 더블G는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구찌 역사의 상징을 그대로 쓰지 않고 본인만의 스타일로 현대적이게 풀어낸 것이죠.
새로운 가방 라인 뿐만 아니라, 구찌 패밀리 시절 구찌의 상징 홀스빗과 재키백 또한 활용했습니다. 로퍼에 사용되던 홀스빗(금속 말 재갈)을 가방에 달았고, 1961년 출시된 재키백을 리뉴얼한 뉴 재키백을 선보였죠. 새로운 상품의 런칭만큼, 과거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중요한데 미켈레는 그 균형을 잘 맞췄습니다. 이를 통해 MZ세대에 구찌의 헤리티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을 뿐 아니라, 구찌 패밀리 시절(20세기 후반) 솝지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어글리 슈즈는 양대 산맥이 있습니다.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와 구찌의 "라이톤". 시작은 트리플S가 좀 더 빨랐지만, 영향력은 라이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구찌 띠로고는 물론, 더티, 미키 마우스 등 여러 라인의 라이톤을 전개하죠. 어글리 슈즈가 부담스러운 고객들을 위해서는 깔끔한 흰색 스니커즈 "에이스" 모델도 준비되어있구요. 쉐입은 얌전하지만, 구찌 GRG로고와 뱀, 호랑이 문양 등 장식은 제법 화려하게 느껴집니다.
캐쥬얼 뿐만 아니라 포멀에서도 히트를 쳤습니다. 구찌만큼 블로퍼로 유명한 브랜드가 있을까요? (블로퍼 : 앞축은 로퍼처럼 되어있고, 뒷축은 슬리퍼처럼 구겨 신을 수 있는 디자인) 1950년 구찌 패밀리의 홀스핏 로퍼를 블로퍼로 재탄생시키며, 편리함은 물론 구찌의 헤리티지를 현대화로 변모시켰답니다.
아무리 잘 만든 제품도, 컨셉에 맞게 알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톰 포드도 섹시한 제품들만큼 섹시한 광고 캠페인에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미켈레 또한 이를 놓치지 않았죠. MZ가 좋아할만한 제품은 물론, 그들의 취향을 저격한 여러 대외 활동들을 전개했습니다.
미켈레의 구찌는 콜라보레이션이 잦습니다. 디즈니와 콜라보를 하기도 했고, 22년에는 아디다스와도 콜라보를 하고 있죠. 그 중 가장 센세이션한 것은 구찌 100주년 기념 구찌x발렌시아가 콜라보레이션 "더 해커 프로젝트"입니다. 케링 그룹 내 매출 1위인 구찌(전체 매출의 57%)와 2위인 발렌시아가(19%)의 콜라보레이션이죠. 발렌시아가의 트리플S에 구찌 패턴이 들어가거나, 구찌 디오니소스 백에 발렌시아가 로고가 들어가는 등 케링 그룹이기에, 그리고 미켈레이기에 가능한 파격적 콜라보였습니다.
22년 2월 구찌는 이태원 구찌 가옥에 오스테리아 레스토랑을 오픈했습니다. 브랜드를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오감으로 느끼고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유사한 사례로 압구정의 하우스 오브 디올 카페나 에스파스 루이비통 미술과 등이 있죠. 하이엔드 명품샵이 몰려있는 압구정이 아닌 이태원이라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몇 달 전부터 예약해야 겨우 갈 수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구찌는 22년 상반기 DDP에서 "구찌 아키타이프, 절대적 선형"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15년부터 20년까지 미켈레의 각 시즌별 이야기를 각 공간에 하나씩 풀아냈죠. 특히 18년도 공간에서는 벽면 뺴곡히 가득찬 미켈레의 마몽트와 디오니소스백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이러한 전시를 통해 미켈레는 본인만의 구찌를 대중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선보였답니다.
그 외에도 MZ세대가 익숙한 디지털 판매를 확대하는 등 시대에 발맞춘 행보를 미켈레의 구찌는 보여줍니다. "명품의 스트릿화, 명품의 대중화"를 이루어낸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인물이 사실 미켈레만 있진 않습니다. 구찌-미켈레가 있다면, 발렌시아가는 뎀나 바질리아가 있고, 버버리에는 지방시의 前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시가 있죠. 우선 지금은 이탈리아의 구찌부터 살펴보았으니 추후 프랑스의 발렌시아가와 영국의 버버리를 통해 명품의 스트릿화를 더 넓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