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③ : 구찌(1921)
2022년은 구찌가 창립 101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프라다는 110주년(1912~2022)을 맞이했음에도, 미우치아 프라다의 색깔이 지속적으로 나타나지만, 구찌는 더 짧은 기간동안 그 색을 많이 바꾸게 됩니다. 구찌 패밀리의 시작으로 "톰 포드->프리다 지아니니->알레산드로 미켈레"까지 총 3명의 디자이너를 거치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하우스의 색깔이 확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분량이 많은만큼 구찌 패밀리와 톰포드 / 프리다 지아니니와 알레산드로 미켈레로 나누어 전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형제는 구찌의 명성을 더욱 드높인 후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 뉴욕에 첫 매장을 오픈했죠. (공교롭게도 같은 해 창립자 구찌오 구찌가 사망합니다.) 이후 미국 남부, 서부는 물론 도쿄를 필두로 일본, 중국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1961년에는 구찌의 상징적인 로고 "Double G"로고도 탄생하는데요, 이는 구찌 2편에도 미켈레와 함께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족 경영의 장점은 힘들 때 누구보다 똘똘 뭉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단점은 가족의 불화가 브랜드 가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대까지는 (비교적) 잘 운영되던 가족 경영 체제가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요. 3대인 파올로 구찌가 인정을 받지 못하며 여러 문제가 발생했는데요. 본인이 아닌 같은 3대이자 사촌인 마우라치오 구찌가 많은 지분을 승계받자, 본인의 아버지 알도 구찌와 다툼 후 친부를 직접 탈세 혐의로 고소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뱀부백과 캔버스백의 창시자인 알도 구찌는 80세에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죠..)
거기다 파올로 구찌는 그의 이름을 딴 세컨드 라인 "파올로 구찌"를 런칭했는데, 너무 저렴한 가격에 라이센스를 남발해, 충성 고객을 대거 이탈하게 만들어버리죠. (당시 구찌를 이끌던 3대 마우리치오 구찌는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고자 투자그룹 인베스트코프에 지분 50%를 매각합니다. 물론, 그만큼 구찌 패밀리의 영향력은 약해졌죠.)
엎친데 덮친 격으로, 3대 마우리치오 구찌는 아내 파트리치아와 가정 불화로 이혼을 겪게 되며, 가족 브랜드는 더욱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우리치오 구찌는 톰 포드를 영입했고 1995년 톰 포드의 첫 구찌 쇼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같은 해, 그는 이혼한 전처 파트리치아에 의해 암살됩니다.
3대에 이르러 몰락하던 구찌를 심폐소생한 인물은 톰 포드입니다. 신인 디자이너였던 그는 1990년에 구찌 여성복 디자이너로 첫 발을 디뎠고, 5년만에 1994년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합니다. 1995년 구찌 데뷔 쇼를 보였을 때 뉴스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샤넬에 칼 라거펠트가 있다면, 구찌에는 톰 포드가 있다." 클래식하지만 다소 올드했던 구찌를 화려하고 관능적으로 바꾸며 톰포드는 구찌에서 입지를 다지며 2002년도에는 부사장의 자리에 이릅니다.
톰 포드 성공의 뒷 배경에는 두 분야의 조력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영 분야의 "도미니코 드 솔레"와 광고 분의 "카린 로이펠트"와 "마리오 테스티노"입니다. 도미니코 드 솔레는 훌륭한 경영 수완을 바탕으로 톰 포드가 브랜드와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도미니코각 경영과 물류, 원자재 공급 등을 도맡으며 그 둘은 최고의 한쌍이라 불리며, 타임 매거진 1면을 장식하기도 했죠.
또한 카린 로이펠트(훗날 보그 편집장)과 마리오 테스티노(패션 사진작가)와 함께 톰 포드가 지향하는 관능적인 구찌를 광고 캠페인으로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구찌의 탈바꿈한 모습을 크게 각인시킵니다.
이후 톰 포드는 2004년 구찌의 모회사 케링 그룹과 마찰로 인해, 도미니코 드 솔레오 함께 퇴임합니다. 이후 그는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 "Tom Ford"를 뉴욕에서 런칭하죠. 역시나 그의 브랜드라, 아주 관능적인 아이템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톰 포드의 구찌는 성 상품화가 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톰 포드 다음으로 구찌를 맡은 프리다 지아니니 또한 톰 포드의 섹슈얼한 구찌에 반대하며, 서정적이고 얌전한(?) 구찌를 그려갔죠. 호불호는 크게 갈릴지언정 최소한 두 가지만큼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톰 포드의 구찌는 파격적이었다는 점, 또한 그 파격성이 구찌를 다시 정상으로 세웠다는 점이죠. 다음 편은 톰 포드 이후의 디자이너 2명, 프리다 지아니니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구찌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