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게 빛났던 몬트리올의 첫인상, 노트흐담 드 몽헤알
이곳 몬트리올 사람들도 놀라워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지난날. 집 앞에는 내 허리 높이만큼 눈이 쌓였다. 이 눈들이 없어지려면 꽤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몬트리올에 온 뒤 계속 집에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어제 눈보라를 헤치고 다운타운으로 나갔다. 몬트리올에 먼저 와서 생활을 해본 내 친구 D가 소개하여준 S를 만났다. S는 이곳에서 11살 때부터 자라 어느새 10년이 넘도록 몬트리올에 거주하고 있었다. 착한 동생 S는 이런저런 조언을 들려주면서 나에게 빈 OPUS(교통카드)를 주었다.
OPUS는 몬트리올의 버스와 메트로를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로 메트로 내에서 충전할 수 있다. 보통 이곳 사람들은 Monthly Pass를 구매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이미 이번 달이 절반이나 지났기 때문에 다음 달에 Monthly Pass를 구매하기로 했다. 일단 시험 삼아 3 Days Pass로 충전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메트로는 Villa-Maria. 어디를 가장 먼저 가볼까 고민하다가 역시 선택한 곳은 이 도시의 상징인 Notre-Dame de Montréal이다. 지난 프랑스에서의 노트흐담들은 나에게 그다지 좋은 기분을 선사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몬트리올의 역사가 시작된 '올드 몬트리올'을 처음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노트흐담으로 향했다.
이날은 정말로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이 거의 블리자드 수준이다. 오전에 집을 나서자 온통 동네 길가에는 자기 집 앞 눈을 치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빗자루와 쓸개를 가지고 나와 집 앞을 장악해버리고 자동차를 삼켜버린 눈을 쓸기에 바쁘다. 동네 아이들은 자기 머리 꼭대기까지 쌓인 눈에 신이 났는지 서로 부둥켜안고 눈 속에 파고 들어가 놀고 있다. 눈에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선글라스를 가지고 나올 걸 그랬다.
몬트리올의 버스와 메트로는 조금만 익숙해지면 타기 편하다. 정차 안내와 역 이름이 대부분 불어로 돼있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지하철을 타보니 내가 프랑스에 와있는지 캐나다에 와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역시 이곳은 퀘벡이 분명하다. Villa-Maria에서 2호선을 타고 쭉 Place-d'Armes에 내렸다. 메트로에서 나와 동쪽 언덕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드디어 대성당이 보인다.
눈이 계속해서 내 얼굴을 때린다. 제설차가 길을 정리하고 있지만 제설차가 지나간 길에는 다시 또 눈이 금방 쌓인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다. 심지어 스키를 타면서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역시 유쾌한 캐내디언들. 하지만 나에게 이런 눈보라는 역시 익숙하지 않다. 눈보라를 헤치고 성당 가까이 다가갔다. 가까이에 마주한 노트흐담의 외관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박하고 단조로왔다.
소박하고 단조로왔다는 것은 프랑스에서 만난 노트흐담들과 비교해서다. 후앙에서 본 노트흐담과 파리에서 본 노트흐담의 그 빼곡하게 하늘로 솟은 첨탑들과 적어도 1,000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어 기괴하리만큼 느껴졌던 외벽들과는 다르게 몬트리올의 노트흐담은 정말 심플했다. 겨우 눈에 띄는 것은 대부분의 노트흐담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이 모시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그 후광뿐. 같은 고딕 양식이라고는 하나 깔끔한 표면으로 정리되어 있는 몬트리올의 노트흐담은 모던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장료는 캐나다 달러로 $6. '이탈리아의 대부분의 성당은 무료입장이었는데, 여긴 입장료가 있으니 자주는 못 오겠군'하면서 성당 내부로 들어간 순간. '헉!'하고 입이 벌어졌다. 건물 외관의 심플하고 모던함에 놀랐던 내가 이번에는 성당 내부에 또 한 번 놀란 것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서양의 노트흐담에서는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가 날 에워쌓았다. 위압감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는 천사 석상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왜 넣어놨는지 아무리 이해해도 이해할 수 없는 악마 석상들.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고 느낀 수많은 미술 작품들과 가톨릭에서 섬기고 있는 성인(聖人)들. 그리고 아무리 고개를 높여도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까지. 나에게 불안함과 기괴함만을 주었던 지난 노트흐담들과는 분명 날랐다. 물론 이곳 역시 화려한 금빛 조형물과,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각 성인들을 모신 채플실이 있었지만, 거기에 압도당할 것 같은 느낌은 없었다. 아니, 내 시선에 잘 머무르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내가 이제 노트흐담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걸까? 바깥 날씨가 너무 엉망이어서 그저 실내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좋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이 성당 내부를 덮고 있는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코발트. 몬트리올 노트흐담의 내부는 정말로 정말로 은은하지만 영롱하게 빛나며 또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코발트 색-정확히는 코발트블루-으로 가득했다.
금빛 화려함이 코발트 색에 쌓여 그 기운이 조금 누그러진다. 어두운 실내의 분위기가 코발트 색을 받아 은은한 빛을 발한다. 화려함은 식히고 어두움은 밝게 빛내는 마법 같은 코발트가 이 노트흐담을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답게 만든다. 노트흐담에 이렇게 오래 스스로의 의지로 앉아 있어 본 적은 처음이다. 그냥 한 번 어서 빨리 둘러보고 나가고 싶었던,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암흑 같았던 유럽의 무서운 노트흐담이 아니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아주 오랫동안 계속 이곳에 앉아 저 푸르고 푸른 코발트를 느끼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코발트는 하늘색이자 바다색이다. 거짓과 절망 그리고 진실과 행복이 뒤섞여 하나의 혼돈과도 같은 이 세계를 덮고 있는 하늘과 바다의 색이다. 그 어떤 관념과 실상(實相)이라도 다 덮어버릴 것만 같은 하늘과 바다를 닮은 코발트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렇게 마치 얕은 바다를 유영하는 듯한 편안한 기분으로 한참을 앉았다. 이 노트흐담을 설계한 사람은 누군가! 저기 저곳에 코발트로 색을 칠하기로 한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당장이라도 그 사람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다. "아주~ 칭찬해~!"
얼마의 시간을 보낸 뒤 노트흐담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눈보라는 거세다. 밖으로 나와보니 흩날리는 눈과 함께 몬트리올의 노트흐담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성당에 빠지는 날이 오다니. 이 눈이 좀 사그라들면, 그렇게나 이 곳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여름과 가을이 오면, 반드시 이곳 Notre-Dame de Montréal을 다시 와야겠다. 아니, 곧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또 올지도 모르겠다. 내 평생 가장 아름다운 코발트를 보는데 고작 6달러가 아까우랴.
- in Montréal, on March 15,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