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매일 아침 커피를 한 잔씩 챙겨먹는다. 카페인을 줄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잠이 깨질 않는다는 이유로, 집중이 잘 안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커피를 챙긴다. 출근길에 들러서 마시기도 하고, 집에서 내려먹기도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하루에 두세잔을 마시게 된다.
산미가 있는 커피, 혹은 구수한 향이 있는 커피. 별도의 옵션이 없는 아메리카노나 오늘의 커피를 받을 때는 고민할 여지가 없지만, 캡슐을 구매하거나 드립커피를 고를 때는 맛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어떤 커피는 시고, 쓰고, 고소하고, 달고 이런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다만 그 차이는 립스틱 색이 핑크 섞인 빨강이냐, 코랄섞인 빨강이냐, 푸른빛 도는 빨강이냐 정도의 차이와 같다. 어차피 다 빨간색인 것처럼 커피는 커피다. 매우 맛있어서 먹는 것은 아니다.
내게 가장 오래된 커피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짝꿍이 챙겨온 보온병에 달달하면서도 뜨끈한 커피가 있었다. 믹스커피를 대량으로 타서 선생님께 드리라고 챙겨주신 것인데, 나름 열한살짜리 애들끼리 그게 신기해서 한번 맛보겠다고 시도를 했었다. 그것마저도 왠지 들키면 안될 것 같아서 보온병을 들고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주지 않았으니 이걸 먹는 게 들키면 된통 혼날 것 같은 직감때문이었다. 화장실 한 칸에 문을 닫고 들어가서 보온병 뚜껑을 컵 삼아 서로 한 잔씩 했다. 바로 올라오는 쓴 맛에 그대로 뱉어버렸다. 몇 번을 입을 헹궜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른의 맛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는 커피 중에서도 꽤나 단 맛인데도, 싫었다.
조금 더 커서 친구집에 놀러갔을때, 그 때 그 믹스커피에 에이스 크래커를 찍어먹으면 맛있다고 알려준 탓에 부모님 몰래 먹어보기로 했다. 나름 어머니들이 하는 양식에 따라서 테이블에 세명이 우아하게 둘러앉아 찻잔에 커피를 담고 가운데 예쁜 접시에 쿠키를 뉘어놓고 찍어먹었다. 스프에 빵 찍어 먹는 느낌으로 잔뜩 적셔서 쿠키를 먹었다. 역시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소스처럼 사용해야했다. 이건 우리가 먹기엔 쓴 편이라 퍽퍽한 에이스를 부드럽게 만드는 용도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1층에는 자판기가 있었다. 거기에도 딱 믹스커피를 팔았는데,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너무나 졸리면 종종 내려가서 뽑아먹곤 했다. 그 때쯤에는 딱히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진 않았다. 이상하게 그걸 뽑아다 마시면 졸음이 달아나는 것 같아서 매번 밤 9시 쯤에 친구와 함께 내려가 뽑아오곤 했다. 이 것도 나름 스릴 있었다. 들키지 않게 들고와서 살금살금 먹는 것도 재밌었다. 그 친구와의 약속을 했는데, 수능 끝난 이후에ー우리 생각에 어른이 된 시점에ー 스타벅스를 가기로 약속했었다. 술 마시는 것과 비할바는 아니었으나, 어른이 되면 조금 더 자유롭게 마실 수 있는 것으로 커피를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정확히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먹게되기 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쓴 맛을 못 견뎌하는 나는 꼭 날을 새야하는 날에만 아메리카노를 가져가 먹곤 했는데 너무 써서 따뜻한 물을 섞어 마시기도 했다. 텁텁한 느낌이 싫어서 먹고 양치를 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았다. 다만, 날을 새며 영상편집 작업을 하거나 발표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카페인 덩어리인 커피와 뗄 수 없는 사이가 되버렸다.
요즘은 라떼를 마시지 않는다. 우유가 섞여있으면 소화를 못시킨다는 걸 최근에 깨닫기 시작했고 그 오묘하게 맛이 섞여있는게 싫어서 주로 콜드브루 위주로 먹는다. 맛이 단순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걸 선호한다. 그리고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오전을 허망하게 졸다가 놓쳐버린다. 많이 변했고,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커피와 익숙해지는 과정이 나이듦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마 또 다른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줄이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날도 올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 혹은 버거운 생활을 위해 마셔야만 하는 게 되버린 건 조금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