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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스 else Aug 07. 2023

오늘도 이세계로 출근합니다

다국적 기업 생태계에서 헤엄치는 IT 디자이너의 일기 - 10


현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는 주로 과거 재직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다루며 일기장에 정리하듯 회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 여러 이야기에서는 많이 축약했지만 좌충우돌인 일들이 많았고 수많은 고민과 어려움에 직면하고 또 해결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내왔다. 사람은 언제나 고민을 안고 살고 있고 선택의 기로에 있으니 이번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현재는 어떠한 고민을 안고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한 일면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바보 같은 우물 안 개구리?


오늘도 출근하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유독 특이하거나 별종인 걸까 하는 것이다. 다른 직종과 달리 내가 몸담고 있는 IT계열에서는 몸값 올리기와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을 위해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이직을 적극 추천 혹은 행동으로 옮기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같은 기간 이직을 세네 번 할 때 나는 한 회사에서만 10년을 있었다.


물론 좋은 기회나 자리가 보였을 때 아예 이직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기만이자 거짓말이겠다. 나 또한 여러 흔한 IT 업계 종사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처럼 척척 회사를 옮기며 빠르게 몸값도 올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직이라 함은 보통 현재보다 업그레이드된 상황을 원하기 때문에 여러 조건에서 아귀가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이직 시도를 많이 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경험해보고 싶은 프로젝트와 회사가 공고를 낼 때만 한두 번씩 넣어보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마저도 채용 과정 중 돌연 티오가 취소당하거나 최종 협의에서 어그러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프로젝트와 업무 환경이 한국에서는 꽤나 독특했던 만큼 내가 쌓아왔던 경력이 한국의 타 기업과는 소위 이른바 '핏'이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 지원을 할 때도 애매한 적이 많았다. 그 부분은 포트폴리오 부분에서도 한계가 느껴져 직무 자체를 전환해야 하나 싶은 고민도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데 부모님 같은 어른분들이나 보수적인 직종 업계에 계신 분들은 나의 본의 아니지만 한 곳에서의 이런 꾸준한 회사 생활을 근면성 높다고 좋게 이야기해 주시는 반면 아이러니하게 같은 업계 분들에게는 조금 바보(?) 취급받는다.


*초록색 - 필자


땡땡씨는 이직 안 해요?? 지금 경력 연차가 한창 몸값 올릴 때인데 그러다 좋은 시기 다 놓쳐요.


하하.. 그러게요.. 저도 도전은 해봤는데 잘은 되지 않았네요. 언젠가 인연 닿는 곳이 있겠죠.



직장인 익명 소통 공간인 X라인드에서도 이직 몇 번으로 연봉 1장을 넘겼다고 하거나 아니면 연봉이 아니더라도 커리어적으로 더 괜찮은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내용 등 그런 것들을 보면 다른 사람 인생과 내 인생을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은 울적해질 때도 있다.


내가 세상보다 뒤처지고 있는 건가..


그리고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좋아서' 혹은 '근무 환경이 괜찮아서'라고 말해도 사실은 그것은 핑계이고, 내가 현재 재직 중인 회사를 벗어나면 객관적으로는 실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좋지 않아서 이직을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는 자기 객관화도 해보았다.


그렇다 해도 어떻게 인맥으로 징검다리 건너듯 이직하는 사람들 보면 신기하긴 하다.. (인맥 없는 1인)






아니면 길들여진 노예?


그러나 이직을 한다 해도 결국은 '또 다른 회사'로 출근하겠다인데 요새는 평생직장이라는 것도 없는 시대인 만큼 회사에 목매다는 삶이 아닌 경제적 자유를 위해 주식, 부동산 같은 기본적인 재테크부터 아예 퇴사를 준비하여 자신의 업을 찾으려는 사람들까지 각양각색이다. 내 주변에도 직장을 다니는 지인들보다는 어느 순간 퇴사하고 사업을 하는 지인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을 만나면 항상 이런 질문을 건네온다.


*초록색 - 필자


땡땡이는 자기 거 해볼 생각은 없어?? 넌 기술도 있으니까 외주라도 하면서 자기 사업하면 되지 않아?


처음에는 나도 가진 게 그거니까 해봤지. 돈은 들어와서 좋긴 한데 본업에서도 늦게까지 작업할 때가 많은데 외주까지 같이 하니까 나는 완전 몸이 망가지더라고..


음.. 그럼 다른 아이템은? 몸을 덜 쓰는 블로그 운영이나 디지털 노마드 같은 거?


나도 주변에서 하도 많이들 하니까 정보도 찾아보고 생각은 해봤는데 이상하게 선뜻 잘 안되더라고..


야, 아직도 너 배가 덜 고프구나? 회사가 언제까지고 널 지켜주는 건 아니잖아. 지금 회사 다닐 때 조금씩이라도 기반을 마련해 놔야 나중에 회사에서 잘려도 먹고살지.  



회사가 나를 영원히 지켜주지 않는 건 맞는 말이기도 해 나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마치 짜 맞춘 듯이 직장을 나와 진짜 자신의 것을 일궈내는 것에 도전하는 콘텐츠들이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자 이직이고 나발이고 회사라는 것 자체에 종속되어 있는 내가 지금 다른 길이 있는 데도 월급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시스템에 길들여진 노예인 건가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회사 책상에 앉아있는 나는 갑자기 빈 깡통이 된 느낌이 되었다.


내가 그럼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회사가 내 삶과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곳이 아닌 거잖아?






퇴사라이팅이라고?


사실 회사에 매달리기 보다 사업이든 프리랜서든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좋은 것이고 어쩌면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것도 확고하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거나 현재 직장에서 '지금 이 삶은 뭔가 아니다'는 것을 직감한 이들에게는 바로 효과를 보는 방향성이겠지만 나와 같이 그동안 회사 조직 내에서 보람을 많이 얻어왔던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것을 찾으라고 해도 오히려 당황스러운 감정이 먼저 들 것이다.


실제로 몇몇 사내 동료들이 몰래 겸업 등을 통해 자신만의 커리어 영역 구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런 나의 초조함은 더 가속화된 거 같다. 그리고 이미 '이직'이라는 시장에서도 잘 안되고 있던 터라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퇴사준비' 시장에서만큼은 뒤쳐지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혼란의 소용돌이로 더 빨려 들어갔나 보다.


큰일 났다.. 나도 빨리 회사가 나를 버리기 전에 무언가를 해놔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멘붕)


지인의 충고는 당장 퇴사가 아닌 회사 다닐 때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조금씩이라도 준비해 놓으라는 것인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홀려서 마치 지금 당장 퇴사와 동시에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해 먹고살아야 할지 바로 준비해야 하는 기분으로 매일을 살았다. 그러자 최근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 지인이 갑자기 이전에 내가 들어왔던 것들과는 꽤나 상반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초록색 - 필자


퇴사 준비를 해야겠다고?? 야, 너 그거 퇴사라이팅 당한 건 아니고??(농담조)


퇴사라이팅? 요새 그런 말도 있어??


아, 그거 진짜로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이 농담으로 하는 말이야. 가끔 회사 일 힘들다고 푸념하면 옆에서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회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퇴사하고 자기 거 하시라고 그러면 우리 회사 사람들은 '아, 퇴사라이팅 하지 마세요~' 하고 웃고 넘어가거든. 퇴사도 자기가 진짜 원해서 해야 하는 거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뭐가 맞는 건지.. 그래서 최근에 너무 정신도 없고 머리가 아파..


그런 거면 더더욱 지금은 일단 중단해. 물론 우리 노후를 생각하면 준비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지금 정신상태를 갉아먹을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거 또한 난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오히려 네가 원하는 삶은 회사 안에 있을 수도 있는데 무조건 회사 밖에 있다고 그거 또한 단정 지어 생각하지 마.



이거 또한 맞는 말이기도 해 나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어쩐지 떠오르는 미생의 한 장면..





모두가 맞다.


사실 지인들이 나에게 건넨 양쪽 이야기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공무원도 아니고 회사가 정년까지 내 삶을 책임져 준다는 보장도 없기에 회사가 없어도 스스로 먹고살 수 있을 방법은 마련해 놓아야 하며, 반대로 그렇다 해서 지금 당장 회사가 나가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조급해 회사가 아닌 다른 삶을 찾아보겠다며 갈피를 잡지 못해 본업을 너무 소홀하게 해서도 안되었다.


삶에는 여러 방향이 있다. 결국 내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제 선택은요?


이런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혼란을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해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주변분들 의견과 함께 겸업과 같은 퇴사 준비를 실제로 해보니 생각 정리가 좀 더 되었고 이전과 달리 최근엔 현재의 삶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평정심'이라고 정리하는 것이 맞을까.


이렇게 직장 생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오늘과 달리 내일 갑자기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고 세상은 모를 일이다. 다시 본업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만 사실 지금도 이전만큼 집착처럼 하는 것은 아니어도 훗날 회사를 벗어나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궁리는 계속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도 이세계로 출근하기로 한다.
오늘의 나는 그곳에 오늘의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다시 회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복잡하고 정신없는 이 한국 같지도 외국 같지도 않은 세계를 당장에 나는 떠날 수 없나 보다. 미래에 이것을 후회할는지 어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것이 '현재의 내 선택'이다.


여기까지 필자의 신입 시절 회고부터 현재의 고민들까지 브런치 대나무숲에 털어보았는데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흥미를, 누군가에겐 공감을, 또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이 글들을 작성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완벽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기에 독자분들 중 이전 내가 겪었던 비슷한 상황에 현재 처해있다면 내 경험 이야기가 해결에 도움이 되거나 혹은 내 경험의 결괏값을 보고 나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향후 또 다른 이야기로 만나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마지막 문장에 온점을 찍어본다.



*표지 이미지 출처 - Freepik Free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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