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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스 else Jun 10. 2023

안녕하세요, 헬로, 곤니치와, 니하오!

다국적 기업 생태계에서 헤엄치는 IT 디자이너의 일기 - 1


첫 출근날.


드디어 브런치 일기장의 첫 페이지가 열리자 시곗바늘이 빠르게 휘감아 돌아가 순식간에 나는 10년 전으로 되돌아가 본다. 지금처럼 속세에 찌든(?) 모습이 아닌 대학교를 갓 졸업한 파릇파릇 병아리 신입이었던 내가 회사 건물로 들어선다. 꿈꿔왔던 회사에 입사했던 터라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기념비적인 나의 첫 출근날의 감상은 '압도적이다'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압도적이었을까.


회사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어서?

직속 상사와 선임분들 눈치가 보여서?

담당 업무가 내 능력 밖이라 부담스러워서?


아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는 공감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은 대다수 공감해 주었던 이것!


'압도적'으로 으리으리하고 삐까번쩍(?)한 회사 건물 규모와 사무실 내부 인테리어.


'아, 이것이 진정한 기업의 참 복지구나.' 하면서 내 건물도 아닌데 괜히 들떠서 으스댔던 걸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창피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순수했던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가능한 솔직 무구한 감상이었던 거 같다. 기업 입장에서도 직원들의 업무환경 개선과 사기 증진을 위해서도 투자했을 것이라 그 관점으로 본다면 과거 나의 이 모습에서 회사의 투자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거미줄 같은 사업 부서들과 그곳에 갇힌 나.


그러한 들뜬 감상은 사실 잠깐이었다. 사무실로 출근한 나는 으레 다른 선배 직장인 분들과 동일하게 업무의 파도에 곧 휩쓸리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에 숙지하기 어려웠던 것은 배정받은 업무를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감이 하나도 안 잡힌다는 것이었다. 


엉망진창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크게 2가지 정도가 파악되니 업무 진행에 있어 보다 도움이 되더라. 


1. 조직 관계성

기본적인 조직도는 국내외 총괄 사업부와 더불어 별도 해외 각국의 사업부가 배치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 국외 사업 규모가 커지면 사업 부서를 분리하여 해당 국가에 지부 혹은 법인으로 설립해서 그 휘하에 별도 사업부를 또 배치해 두는 형태이다. 최대한 비슷한 예를 들자면 국가의 중앙 부처와 지방 자치 단체와의 관계와 비슷했다.


따라서, 예를 들어 간단한 배너 제작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배너가 해외 국가에 배포되는 작업물이라면 보통은 국내 총괄 사업부와 이야기하며 진행하더라도 해당 사업의 핸들링 주체가 어느 법인에 더 무게가 있는가에 따라 해외 법인 부서와 더 긴밀하게 논의될 때도 있었다. 물론 사업 규모가 큰 것들은 해외 법인에도 별도 디자인 조직이 또 따로 존재하기에 디자인 제작물도 별도 제작될 때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사업 주체의 출발점은 국내 법인이고 디자인 파트의 총괄 또한 한국이기에 해외 법인에서는 국내 법인에서 제작 및 배포된 작업물들을 가이드 삼아 디자인 제작되었고, 제작 규모 또한 중요도 있는 프로젝트는 우선적으로 한국에서 제작되며 별도 디자인 조직에서는 배너와 같은 홍보 콘텐츠 위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익숙지 않았고 또 잘 몰랐던 터라 이슈가 생겨도 누구와 어떻게 조율해서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사내 여러 다양한 분들을 괴롭혀서(?) 겨우겨우 업무 진행을 해나갔다. 특히나 이곳은 사수-부사수 시스템이 딱히 없이 신입이라 하더라도 개개인을 하나의 프로라고 생각해 스스로 알아서 알아보고 해 나가야 하는 분위기 있어 초반 적응이 좀 더 더뎠던 거 같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일머리..!



2. 인력 관계성

몇 번을 부딪치고 헤매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국내 총괄 부서가 아무래도 최상단 부서이기 때문에 해외 마켓과 관련된 이슈라 하더라도 국내 사업 부서에 해외 법인과 연결된 해당건을 팔로우 업하는 분이 계실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담당자가 딱히 없다고 하면 팔로우 업을 요청해서 조정을 받거나 직접 컨택해도 된다고 답변받으면 해외 담당자에게 바로 메일을 작성하는 형식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직접 소통하더라도 중간에 팔로우 업 중간자분들을 꼭 요청하여 메일 참조로라도 넣어서 모든 단계를 문제없는지 같이 확인받는 것이 되도록 좋았다. 일하다 보면 가끔 국내 사업 쪽과 충돌이 일어나는 이슈가 뒤늦게 발견될 때도 있기 때문에 나중에 기껏 완성해 놓은 디자인 작업물을 모두 갈아엎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실제 경험담이다..


예전 드라마 '미생'에도 나왔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언뜻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여러 확인 단계가 뜻밖의 실수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순기능도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가며 처리하는 것이 특히나 경험과 요령이 부족한 이들에겐 유용하다. 사업의 공격적인 속도와 빠른 일 처리도 중요하지만 바빠도 돌다리 두드리며 가랬다고 항상 이중 확인이나 허들을 두어 안전성도 함께 높이자!





외국인보다 더 어려운 한국인.


앞선 글에서 서술했듯이 나는 운이 좋게도 한국 회사임에도 국외 법인과 해외 제휴 회사들과 일할 기회가 있어 외국인 동료분들과 협업해야 할 경우가 종종 있었다. 보통은 언어나 문화 차이가 있으니 외국인 분들과 협업하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나의 경우에는 사실 한국인 동료분들과의 협업이 더 어려웠었다. 


사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축약해서 설명해 보자면 외국인 분들과 협업할 때는 나 또한 상대방에게는 외국 사람이었기 때문에 문화 차이나 뉘앙스 차이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여 서로서로 더 신경 써서 커뮤니케이션하였기에 소통의 오류가 오히려 더 적었었다. 한국인 분들하고는 아무래도 모국어로 얘기하니 가끔 업무 내용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대명사(?)의 등장 빈도가 높아 맞게 이해한 것인지 왔다 갔다 스무고개 질문할 때도 많았다.


땡땡씨, 그 저기 그때 그거 다시 그렇게 하기로 했었던가요?


신입 때는 업무도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문장들이 나에게 더 혼란을 초래했던 일들이 많았기에 사실 피로감을 많이 느끼긴 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사회 초년생이라 무조건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인지 질문하는 게 내 능력이 별로라고 말하는 거 같은 자존심 반, 다른 사람들이 나를 형편없게 바라볼 거 같은 두려움 반 등 건강하지 못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더 힘들게 느껴졌던 걸로 기억한다. 


세월이 지나서 되돌이켜보면 사회 초년생 때의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을까 싶다. 지금의 나 또한 나보다 경력이 적은 친구분들을 보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들 때가 더 많은데 다른 선임분들도 그때의 나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내 성장 스토리와도 관련이 있기에 차후에 한 번 또 이야기할 날이 오지 않을까?





외국인들과의 업무 소통 방식은?


일단은 한국 회사이기 때문에 보통 회의나 메일 자료 등도 한국어 중심이라 외국 분들과 협업할 때도 사실 딱히 영어나 다른 외국어를 쓰는 것도 아니라서 업무 부담이 적긴 하다. 화상 회의에서는 가급적 통역자가 대동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좀 더 딥한 커뮤니케이션 부분은 기획자분들이 도맡는 부분이 있어 디자이너들은 확인 문의가 필요하거나 할 경우에는 한국인 기획자분들에게 문의를 넣어두는 경우가 사실 대다수다. 


특히 해외 제휴 회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디자이너가 직접 접촉하지는 않아 편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소통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나기 때문에 마치 짝사랑하는 소년소녀처럼 답신이 오길 바라며 기다림의 연속일 때도 많다. 이런 환경이라 그런지 기획자분들은 확실히 여러 언어 능력자들과 융통성 있는 부드러운 소통의 대가들이 많아 경이롭기까지 하다. 


필자가 직접 접촉하여 소통했을 경우를 말하자면 주로 사내 외국인 동료분들이었고 주 수단은 역시 텍스트를 활용할 수 있는 메일과 메신저이다. 협업자가 외국인이라면 상대방이 한국어를 할 줄 알아도 모든 텍스트 수단은 한국어나 영어 혹은 상대방의 모국어로 병행 표기하여 전달하는 것이 소통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최대한의 방식이었다. 요새는 기획도 피그마를 활용하시는 분들이 있어 메일 없이 그곳에서 논의를 거칠 때도 있다. 


고마워요, X글! X파고!


또 나의 경우에는 디자인 작업물이라는 시각적 자료도 항상 같이 전달되기 때문에 비교적 텍스트에서 잘못 전달될 수 있는 확률이 경감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또 아니기도 한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었는데 시각적 자료만 너무 믿은 탓이었다. 텍스트는 요점 정도만 쓰고 이미지로 주로 서로 소통하다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벌어진 것이다. 


다음 스토리에서는 업무가 미숙했던 시절 있었던 오해 에피소드 보따리 하나를 풀어볼까 한다.



*표지 이미지 출처 - Freepik Free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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