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회색 치마를 안 입어 미움을 사버렸다

존중받지 못한 자의 비애

by 엘스 else

지난 4화에서는 동네 보습학원에서 만난 수진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이 주는 영향과 거짓말과 같은 잘못된 방법으로 관계를 만들려 하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일화를 풀어놓았다.


제대로 사회화를 거치지 않은 어린 필자에겐 반성도 하면서 교훈도 배울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같은 성별 집단 안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데 특히 사춘기에 가까워질수록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교를 통해 같은 취향을 맞추거나 혹은 질투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뜻 보면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성장통 중 하나이겠지만 1화에서부터 언급했듯이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자기 결정권이 없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필자였기에 이 독특한 환경이 교우 관계를 더 악화시키기에 최적이었다.


이번 이야기는 혹시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자녀나 지인, 친구를 곁에 두고 계신 분이라면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한 번 풀어내보자 한다.




하기 싫다.. 조별 활동..



유치원부터 대학교 시절 때까지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인간 사회에서 학예회, 레크리에이션 활동은 필수로 거쳐야 한다. 아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학 조별과제처럼 인간 사회의 능력 중 하나인 협동심을 기르기 위해서겠지만, 인터넷에 조별과제 빌런들에 대해 치를 떠는 내용들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만 봐도 협동과 협조가 쉬운 덕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성인들도 어려운 것이 협동과 협조인데 아직 미숙한 어린 학생 때는 얼마나 더 어려울까.


그러나 피할 길은 없었다. 이것 또한 학교에서 준비한 학습 과정 중 하나였기에 대학 조별과제처럼 하기 싫다고 자체종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하나 다행이었던 것은 당시 우연히 엄마들끼리 아는 사이인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어 학예회 조를 짜는 데는 어렵지 않았었다.


문제는 이다음, 인원 수의 문제였다.

우리 그룹은 3명.

'홀수'였다.


여기서 아! 하고 탄식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어떤 분들은 '그게 왜?'하고 감도 못 잡으실 분도 계실 거다. 인간관계에 꽤나 골치 썩어보신 분들이라면 친구 무리에서 홀수가 얼마나 지긋지긋한 숫자일지 와닿을 거다.


아무리 셋이 친해도 2명이 같이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 1명이 의도치 않게 겉도는 현상.

이것이 '홀수 무리의 법칙'이다.


그리고 어쩐지 항상 겉돌게 되는 아이가 필자였던 것이다.


분명 셋이 이야기 잘 나누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필자를 빼놓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잦았었다. 평상시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집중적으로 합을 맞춰야 하는 학예회 때가 되자 이러한 단점은 비수가 되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는 묻지 않는 거야?



학예회 내용을 구성할 때도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지만 어린아이 때 일이고 너무 자잘해서 사실상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단 하나의 순간만큼은 어른이 된 지금도 서러워서 가끔 생각이 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주체성도 길러주기 위해서 학예회 구성 자체를 하나부터 열 가지 학생들이 직접 준비하도록 하였는데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이 '의상'이었었다. 연예인들처럼 담당 코디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입을 의상을 스스로 정해서 구해야 했는데 그 일은 갑자기 순식간에 벌어졌다.


- 우리 의상 어떡하지?

- 그래도 역시 치마를 입는 게 나을 거 같은데..

- 너 무슨 치마 갖고 있어?

- 난 회색치마. 무릎 위에 오는 거.

- 진짜?? 나도! 그걸로 하면 되겠다!

- 와! 의상은 이걸로 결정!


안타깝게도 이것은 필자가 단 한마디도 끼지 못한 대화였다.

순식간에 난데없이 학예회 의상이 '회색 치마'로 결정되어 버렸던 것이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우리끼리 장을 봐서 학예회용 맞춤 의상을 구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친구들도 각자 갖고 있는 옷 중에 겹치는 것을 우선 이야기했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회색 치마를 갖고 있지 않았던 필자는 당황하여 친구들을 급히 붙잡았다.


그나마 내가 갖고 있는 옷들 중에서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겹치는 의상을 찾아내어야 했다.


- 아.. 그런데 얘들아.. 난 회색 치마가 없어서..

- 없어? 그럼 엄마한테 사달라 해.

- 그래, 맞아. 이미 우리 둘이 있으니까 땡땡이 너만 맞추면 되잖아.


물론 그렇기는 하다.

효율성을 따지자면 다수가 먼저 맞출 수 있는 옷에 소수가 따라서 맞추는 게 좋긴 하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필자 역시 이 학예회 그룹의 구성원이었는데 왜 나에게는 회색치마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예의상 질문 따위도 전혀 하지 않은 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의상을 결정한 그 진행 방식 자체에서 이상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다수결에 의한 의상 결정은 되돌이킬 수도 없어 필자는 학예회 당일날까지 어떻게든 회색 치마를 구해 왔어야 했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 미션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문제의 복병은 역시나지만 '엄마'였기 때문이다.






난 그저 돈을 벌지도 내 맘대로 쓰지도 못하는 아이라고



친구들은 너무나 쉽게 엄마한테 회색치마를 사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필자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숙제였다. 그들에게는 자녀의 요구에 친절하게 응답해 주는 엄마가 있었는지 몰라도 필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예회 몇 주 전부터 매일같이 생떼를 쓰며 회색치마를 사달라고 졸랐지만 엄마는 매번 알겠다고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였다.


하다못해 중고등학생이라도 됐다면 어디 전단지라도 돌려서 알바비로 시장에서 싸구려 회색치마라도 구했겠지만 알바를 할 수도 없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필자는 그저 하염없이 엄마가 회색치마를 제발 사 오길 간절히 바라며 매일같이 울면서 매달렸다.


그래도 학예회를 같이 하는 친구들이 엄마들끼리 아는 사이라서 그런지 엄마는 새 치마를 사다 주긴 하였다.

그렇지만 결과물은 실망을 넘어 어이를 상실했다.


- 이게 뭐야..! 왜 파란 긴 치마야?? 내가 짧은 회색 치마 사달라고 했잖아!

- 치마면 됐지! 뭘 또 색이 어떻고 길이가 어떻고 그래?! 시장에서 이거밖에 안 팔았어! 그냥 입어!

- 내가 분명히 애들이랑 의상 회색치마로 하기로 결정됐다고 했잖아..!

- 아니 애들 행사에 어떤 색이든 치마로 대충 맞추면 되지 이게 뭘 대수야! 내일 그냥 친구들한테 엄마가 이거 사줘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러던가!


정말 엄마랑은 말과 상식이 안 통했다.


어릴 때 필자는 바지를 주로 입어서 치마라곤 일절 없었기 때문에 당장 내일 학예회에 바지를 입고 갈 순 없었다. 결정권이 단 하나도 없는 필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파란 긴 치마를 입고 학예회 당일 학교에 등교했고 당연하겠지만 난리가 났다.


반 아이들은 같은 조 애들과 달리 혼자 튀는 파란 긴 치마를 입고 있는 필자를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같은 조 친구들도 깔 맞춘 회색 치마를 단정히 입고선 나란히 아니꼬운 시선으로 내려보았다.


- 미안해.. 얘들아.. 내가 엄마한테 분명히 회색치마 얘기했는데.. 이거 사 오셔서..


엄마가 그랬든 사정이 어쨌든 사춘기에 가까워지고 또래 집단이 중요해지는 시절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튀는 행동은 용서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번 일 같은 경우는 필자가 회색치마를 입고 오리라 기대했던 그들에게 있어선 거의 배신에 가까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필자의 사정은 친구들에게 닿지 못했다.


친구들은 그렇게 마치 변명 같은 속사정과 엄마가 광대처럼 입혀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필자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제대로 섞지 않은 채 학예회 공연을 번갯불 콩 구워내듯 끝내버렸다.


그리고 친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 나대는 아이로 오해를 사 그대로 그 친구들과는 사이가 멀어져..

아니, 책 제목과 같이 버림받았다.





왜 내가 그렇게까지 미움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 뒤로 사이가 소원해진 과거 친구들을 뒤로하고 필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려 지냈다. 과거 친구들은 학예회 사건으로 필자가 정말 얄미웠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해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자 그쯤에서는 필자도 태도를 굽힐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그들은 처음부터 의상 회의에 있어 필자의 의견을 들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치마를 못 구해온 건 정말 미안했지만 처음부터 필자는 회색치마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알렸고, 그럼에도 그들은 단 한 명의 소수 사람 의견이라고 묵살한 뒤 나에게 알아서 (엄마에게 사달라고 해서) 구해오라고 거의 명령처럼 행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선 문단에서 이야기했듯이 현재 성인일 때처럼 자유 의지로 돈을 운용할 수 있는 나이대였다면 준비해오지 않은 필자 자신이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의 도움이 없다면 문방구에서 연필 한 자루도 제대로 살 수 없던 나이의 필자가 엄마에게 부탁했지만 사주지 않아서 벌어진 일에 대해 도대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었다.


학예회 당일날도 회색치마를 못 구해온 것에 대해 사과하고 엄마의 비협조로 벌어진 일이라 내 의도가 아니었음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과거 친구들은 필자를 못되고 재수 없는 아이로 취급해 버렸다.



이 이상 그럼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해 달라고 노비처럼 행동했어야 했는가.


난생처음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강하게 밀려 들어왔다.


나는 그들의 노예가 아니다.

나는 엄마의 노예도 아니다.


나 또한 동등한 인격체로 의상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친구들에게 존중받고 싶었다.

엄마에게도 학예회라는 사회활동에 어린아이라도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걸 존중받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에게도 엄마에게도 존중받지 못한 필자는 스스로 나는 어떻게든 최선은 다했다며 다독이면서 평범하게 다시 학교 생활을 해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래서 새롭게 놀게 된 친구들이 학예회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또다시 이상한 아이로 낙인찍혀 버림받을까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다녔었다. 물론 아무리 사실만을 말한 거라 하더라도 그 행위는 역으로 잘못하면 과거 친구들을 험담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그들도 이미 나를 재수 없는 아이로 반 친구들 앞에서 몰아가지 않았는가.


그러자 과거 친구들은 그 꼴까지도 못 봐주겠다는 듯 어느 날 방과 후 필자에게 저주가 담긴 편지를 손에 억지로 쥐어주고는 필자가 무너지기를 기대하며 유유히 교실을 퇴장했다.


그 편지 내용을 전부 기억하지 않지만 (기억할 가치도 없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문구는 이러했다.


[ 땡땡이! 너 왜 아무 잘못 없는 우리에 대해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니면서 괴롭히는 거야!?? ]


그들은 성공했다.

필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비웃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교실을 벗어났다.


그렇다.

그들은 필자의 인격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좋게 좋게 하려고 하면 날 만만이로 보는구나?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원망의 말도 쏟아내고 그 친구들을 미워해봐도 현실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필자는 이제는 그 저주 편지로 인해 '죄 없는 친구들을 모함까지 하는 아이'라는 타이틀 마저 얻은 상태였다.


상황을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이 하나도 없는 필자에겐 절망밖에 없었고, 그저 하루라도 빨리 학년이 바뀌거나 학교를 졸업하여 그 친구들과 떨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회색 치마로 인해 엄마에게나 학교 친구들에게나 좋게 좋게 상대에게 비위를 맞춰가며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해 봤자 자신이 되려 병신이 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인생 교훈을 얻은 필자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로 사람을 좋아하던 본래의 기질과 달리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가 공격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하는 안 좋은 현상을 사춘기와 함께 겪기 시작한다.


인간들 진짜 혐오스러워



다음 이야기에.



*표지, 삽입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