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네까짓 들게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거니?

본격적인 흑화와 반격의 서막

by 엘스 else

부정적 경험들이 압사하듯 어깨를 짓누르고 쌓이고,

날카로운 비수에 스쳐 마음에 생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

끊임없이 생채기가 덧나자 버티는 것도 한계치였다.



사회에서는 이 정도로 궁지에 몰려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면 최악의 경우에는 해당 소속을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가정과 학교라는 장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더욱이 요즘과 달리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 죽으라는 일종의 강한 정신과 태도를 요구하던 시절이었기에 쉽게 피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필자 또한 사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어렸지만 날 도와주지 않는 환경이라도 여기서 피한다 한들 결국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영원히 세상이 날 깔볼 것만 같은 느낌이라 더 악바리처럼 이를 악물게 되었다.





절대 지고 싶지 않아, 굴복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여전히 쉽지 않았다.


주변 환경과 인물들이 필자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먼저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건네도 관계 개선에 눈에 띈 변화는 딱히 없었다. 특히 청소년기로 갈수록 또래 무리들의 결속력이 더 강해지면서 선생님들의 개입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선생님도 지속적으로 방관의 모습을 보여서 개입을 하려고 했을지도 의문이긴 하다.) 더더욱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찌어찌 하루를 살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막다른 길에 다다른 필자에게 어느 한 사건으로 다년간 쌓여있던 부정적 마음이 화산처럼 폭발하여 본격적인 흑화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너 뭐 돼?



말 그대로 당시 필자 주변 아이들은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거 같았다.


부모로부터 같이 놀아도 될 아이들을 구분 짓는 법을 배운 아이들도 있었고, 어른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집안의 재력이나 동네의 생활 반경을 따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요새도 부모의 월급을 가지고 '이백충', '삼백충'이란 단어로 조롱하는 거 보면 그저 인간의 본성인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잘난 아이들인 것도 사실이긴 했다.


방학이 되면 가족끼리 미국처럼 비싼 물가의 나라로 해외여행 다녀오는 아이들도 꽤 있었고 부모님 직업도 화려한 아이들이 많았다. 과거 IMF 때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꽤 호화로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모습이긴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런 여유로운 집안 환경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는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과도하게 신경 쓰지 않지만 어릴 때는 아무래도 위축이 되었다.


그렇지만 본인의 집안이 유복하거나 부모님의 스펙이 좋다고 하여 그것이 본인의 영혼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데 미숙한 그 시절에는 마치 자아 자체를 그 배경에 투영시켜 또래 관계에서도 그걸 우위로 삼아버리니 굉장히 주변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거부감이 들었었다.


안 그래도 선생님의 방관 아닌 방관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필자였고 집안도 썩 그렇게 대단한 집구석이 아니었기에 이전화에서 언급했듯이 만만한 대상을 넘어 화풀이 대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풀이가 절정에 달하는 사건이 일어나 버리고 만다.




'무리'라는 힘의 논리에 '사회 질서'는 통하지 않는다



당시 일종의 주번 같은 역할로 한 주에 2명씩 교실 전반에 대한 환경을 체크하고 학급 규칙을 어긴 친구들이 있다면 학급 회의 시간에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이를 공표하고 벌금 같은 것을 매기는 제도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하필 필자가 맡았던 주에는 교내 행사가 생겨버려 그 주의 학급 회의를 하지 못하게 되어 다음 주 학급 회의 때 선생님께서 이름이 적힌 아이들이 있는지 공유하라고 했던 것이 발단이 되었다.


필자는 당연하지만 저번주에 있었던 체크 리스트까지 포함하여 발표하게 되었고 그 순간 반 전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 야!!! 왜 내 이름을 썼어!!!!!

- 나도! 왜 내가 어겼다고 말하는 거야! 너 진짜 어이없다!!

- 그니까! 아, 진짜 재수 없게!!


급기야 선생님까지 계신 학급회의인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있든 말든 몇몇의 아이들은 고성과 함께 내 앞자리까지 몰려들어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되리라 생각지도 못한 필자는 당황했지만 이전처럼 웃으며 넘어갈 위인이 안되었기에 그들에게 맞서 한마디를 맞대었다.


- 저번주에 발표 못해서 이번주에 하게 된 거고 저번주에 너네들이 어겨서 난 적은 거고 그걸 말한 거뿐이야!


되려 필자가 말대꾸(?)를 하니 아이들은 더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 그건 저번주잖아!! 이번주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내 이름 당장 안 지워!!?


너도 나도 저번주는 학급 회의가 건너뛴 것을 핑계 삼아 자신들이 학급 규칙을 어긴 것을 없던 일로 하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리고 그 체크 담당이 필자였기 때문에 더 가능했으리라 싶다.


반에서 인기도 많고 집안도 좋고 힘도 강한 아이가 체크 담당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자리로 몰려들어 집단 폭행을 가하듯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논리도 우습고 같잖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사회 규칙을 어겨 범칙금을 물게 되었는데 자신이 규칙을 어긴 바로 그 순간에 부과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겐 죄도 없고 범칙금을 낼 필요도 없다고 항변하는 꼴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도대체 이런 논리를 어디서 배워온 것인지 지금도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난장판이 된 이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선생님을 바라보았지만 선생님도 다소 난폭한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그들을 제대로 말릴 움직임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 다른 일은 저를 방관하셔도 눈앞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데도 끝까지 모르는 척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선생님!! )


그렇게 필자는 또다시 어른의 방관 속에서 또래 아이들의 집단 공격에 정신이 무너져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 그래!!! 없애면 되잖아!!! 없애면!!!!


필자는 견디다 못해 울분에 찬 소리를 지르며 학급 회의 때 발표한 종이를 모두의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 발가 버렸다.


그러자 아이들은 평상시 필자의 모습과 다른 괴랄한 모습에 잠시 놀란 듯했으나 어쨌든 그들의 소정의 목적인 벌금 없애기에는 성공하여 그저 필자를 미친년 보듯이 흘겨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날의 폭력적인 학급회의는 그렇게 필자만 또 병신이 된 채 끝나버렸다.


그러나 이전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필자도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횡포에는 참지 않고 의견과 감정을 분출해 내는 것을 직접 실행해 몸소 터득한 것이다.




그리고 이전부터 자신을 지키지 못한 것을 스스로에게 참회하듯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억울한 일이 생길 일이 생기면 끈질기게 사실 관계를 규명하고 필자의 결백을 명명백백하게 알리려는 데에 집착하는 버릇이 성격으로 굳혀지게 되어버린다.


내가 말했지? 이제 조금이라도 건들면 너 죽고 나 죽고라고.



다음 이야기에.



*표지, 삽입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