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타인과의 적극적인 대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다 모두에게 그저 만만한 호구가 될 뿐이었으니까
본래 사람을 좋아하는 기질도 있었고 환경적으로도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좋은 아이가 되려고 했던 필자였기에 이 성향은 본의 아니게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타인에게 자신이 휘둘리도록 만들 수 있는 좋은 양분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런 유약한 성향을 가지고 무시하고 악용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만 세상 이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전화 마지막 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억울한 일이 생길 일이 생기면 사실 관계를 따지는 습관이 이때쯤부터 생겨 본디 하하 호호 낙관주의적 성격이 예민하고 집착적인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변한 성격을 계기로 자신과의 내면 대화나 타인과의 적극적인 대면에 대한 우여곡절을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
근데 우리 안 친했잖아?
지난 화를 읽어보셨던 분들이라면 필자가 반 아이들에게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 아실 것이다. 필자는 당시 일을 부모님에게 알릴 법도 했건만 필자의 공부 성적 외에는 학급생활이나 교우관계엔 관심 없는 엄마와 밤낮으로 일하느라 집에 계시는 시간이 손에 꼽힐 아빠에게도 말할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부모님께 말해봤자 바뀔 게 없을 거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어른이었던 선생님조차 상황이 일어난 순간에도 방관했던 사람이라 더더욱 도움이 안 될 것이라 직감했기에 자신을 스스로 알아서 지켜야만 했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나 자신과 내면에서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우선 만만하게 보일 여력조차도 주지 말아야겠다는 것이 첫 번째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맨 처음 행했던 자기 방어 행동은 '쳐내기'였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날 서게 공격할 필요는 당연히 없었고, 조금이라도 필자를 이용하려고 하거나 불순한 의도를 내비치는 사람들에겐 가차 없이 냉담하게 선을 긋는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임을 나와의 대화에서 도출하여 목표로 잡았다.
지난 화에 있던 사건에서 그렇게 필자를 쥐 잡듯 했던 한 아이는 원래도 성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너무 우습게도 나이를 점점 먹어가니 다들 그 성질을 무시하면 무시했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이만큼은 성장하지 않은 채 해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그 성질을 유지한 듯하다.
어느샌가 아무도 자신을 제대로 상대하지 않게 되어서 그런지 어느 날 필자의 반에 방문하게 된 그 아이는 새로 사귄 친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는 필자에게 다가와 친한 말투로 속삭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탁!
그리고 반사적으로 엄청난 혐오감과 오물이 뒤집어쓴듯한 느낌에 필자는 그 아이 손을 쳐냈다.
- 내 머릴 왜 만져.
그리고 아주 단호하고 확고하게 내 의사 표현을 전달했다.
과거의 필자라면 할 수 없었던 인생 역사상 아주 혁신적인 행동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아이는 항상 만만하게 봐왔던 필자였기에 예전처럼 손쉽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 같지만 착각도 유분수이지 않나 싶다. 지렁이도 밝으면 꿈틀거린다고. 필자의 인격을 반죽이듯이 상처 입혔다고 평생 필자가 그 아이 행동과 말에 꼼짝 못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물론 이런 필자의 속내와 달리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무안을 당한 것에 당황하고 어이없어해 보였지만 과거와 달리 완전히 인격이 달라진 필자의 모습에 예전처럼 으름장을 놓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급히 자리를 떠버렸다.
이쯤 돼서 모 연예인의 '뜨더니 연락도 안 받고 변했다'라고 말하는 동창에게 건네는 일침 하나를 삽입한다.
그러게, 이 연예인과 동창 관계처럼 우리 안 친했잖아?
지난날 그렇게 불같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으면서 왜 그때는 안 하던 친한 척을 갑자기 했니?
나는 네가 편리할 때마다 이용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다.
필자는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신의 과오를 회피하듯 자리를 떠났고 두 번 다시 필자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 말을 해주지 않으면 상대는 몰라
그렇게 한 번 자신을 지키는 행동을 실행에 옮기고 나니 사사건건 신경이 예민해지는 건 있어도 사회적으로 고달픈 일은 적어져서 필자는 '쳐내기' 방식을 써서 사전에 불미스러운 일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어디까지나 필자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나 적당히 써봄직한 방법이었다.
인간관계란 매일같이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랑 지내다 보면 서운한 일이나 갈등이 있을 법도 한데 친밀한 관계일수록 모두 다 쳐내버리면 필자는 그럼 세상을 혼자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안 친한 사람들에게 썼던 '쳐내기'방식과는 다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적극적인 의사 표현은 친밀한 관계에서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된다고는 생각했다.
내가 서운한 것이 있을 때도 있겠지만 상대방도 서운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전부 꽁꽁 숨긴 채 대화 한 번 제대로 안 해보고 '너랑은 안 맞아' 한 뒤 그냥 서로 갈 길 가버린다면 이것 또한 '쳐내기' 방식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결이 다르기 때문에 지내다 보면 시간에 따라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기에 억지로 굳이 인연을 붙들고 있을 그런 집착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그래도 그동안 상대와 친밀한 감정을 많이 주고받은 사이였다면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로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깊게 나누는 것은 어떠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비단 친구, 동료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 애정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 주변의 인물들 중에서도 필자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필자가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심지어는 그런 표현도 없이 이른바 잠수로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생각보다 사람들이 어떠한 문제에 대해 직면하기보다 회피해 버리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한 두 번 그러려니 하기에는 너무 큰 충격을 준 일화가 있어 필자는 '회피'하는 것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갖게 된다.
독심술사도 아닌데 상대방이 자기 마음을 읽어주지 않는 것에 어떻게 대처하라는 건지 모르겠었기 때문이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평상시 잘 붙어 다니던 친구였던 예진이(가명)는 필자와 비슷하게 어머니로부터 공부와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았어서 그런지 공감대도 형성되고 여러모로 취향도 비슷하고 쉽게 친해졌었다. 그러나 예진이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간에 필자처럼 흑화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과거 흑화의 과정을 통해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속에 있는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밖으로 확 끄집어내는 행동으로 한 번 환기를 시켰던 필자는 예진이에게 안에서 곪는다고 표현에 대한 의지를 권유해도 필자보다도 더 억압되어 온 삶을 살아서 그런지 쉽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금 답답했지만 과거의 필자도 그러한 삶을 살았기에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 또한 아니어서 오히려 안타깝게 생각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예진이가 필자 앞에서 가끔 안 좋은 표정을 짓는 것을 느꼈다. 초반에는 그냥 혼자만의 느낌인가 했지만 점점 말수까지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단 둘이 되었을 때 필자는 용기 내어 서운한 게 있거나 맘에 담아둔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하였다.
- 좀 얘기 좀 해봐 봐.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 아니야...
- 아니긴.. 네가 계속 이러면 나는 이유도 모르고 답답만 하잖아. 네가 하는 얘기 들어줄게. 들어야 나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거나 아니면 네가 오해했다는 걸 풀거나 뭐라도 하지.
-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어쩌면 필자가 답답한 마음에 친구를 너무 몰아붙이는 거처럼 느껴졌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불편한 감정을 가진 채로 계속 있는 것이 서로를 더 힘들게 만들 것이라 생각했기에 최대한 예진이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예진이는 끝까지 묵묵부답이었다.
- 어? 너네 둘 여기서 뭐 해??
그런데 갑자기 다른 한 친구가 우리 둘만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우리 둘의 무거운 분위기를 보고 걱정되었는지 다른 친구가 분위기를 살피려 다가오자 갑자기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요지부동이었던 예진이는 갑자기 필자 혼자 내버려 둔 채 다른 친구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상당히 당황스러웠지만 필자는 다른 친구에게 얘기를 먼저 해서 마음을 좀 풀고 필자에게도 말해주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가 중재해 주거나 해줄 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했던 내가 역시나 바보였지만 말이다.
- 땡땡이, 너.. 진짜 못됐다!?
- 뭐???
갑자기 난데없이 예진이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들은 듯한 다른 친구가 내 앞에 나타나서 한다는 말은 앞뒤 서두 하나 없이 비난을 꽂아버리는 말이었다.
- 갑자기 와서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무슨 얘기인지 하나도 몰라. 도대체 뭐라고 얘기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나도 좀 알려주던가 해야지.
- 안돼, 예진이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면 이런 식으로 필자에게 쏘아 붙듯이 비난만 퍼붓고 가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너무 황당하게도 필자는 난데없이 이유도 모르고 그냥 또 나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도 했고 오해를 한 것이면 오해를 풀도록 이야기해 보자고도 했는데도 그것을 깡그리 무시해 놓고는 필자가 보는 앞에서 다른 아이를 데리고 나가 필자에 대한 험담만 하고서는 이렇게 끝내버리면 예진이에게 필자는 가해자고 자신은 피해자라는 구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처사였다.
더욱이 중재해 주거나 상황을 좀 도와줄 줄 알았던 다른 친구 또한 필자 쪽의 이야기는 전혀 들어보지 않은 채 예진이 이야기만 듣고선 곧장 달려와 필자를 맹비난을 해버리니 아예 어이가 가출을 해버렸다.
이런 식으로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에게마저 대화의 회피로 인해 '이상한 아이'로 전락해버리기도 했다.
내가 나쁜 아이라고? 그럼 너는?
평상시에도 예진이는 필자처럼 엄마의 눈칫밥을 많이 먹고살았기에 의견 내는 데에도 소심했고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는 거 같긴 했지만 필자도 비슷한 가정환경이 있었기에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구집이 계속 입을 닫은 친구에게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더 호소한 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굳이 필자가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 이 계기로 깨닫게 된다.
대화는 쌍방이 되어야 하지 절대 일방으로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고 회피하는 사람을 붙들려고 해 봤자 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대화는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끼리 해야 의견도 나누고 감정도 나누고 하는 것이다.
다른 친구가 전달한 말처럼 필자가 정말 예진이를 속상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필자가 잘못을 했든 뭘 했든 말을 좀 해달라는 간청을 무시한 예진이 또한 과연 계속 '피해자'로 입지를 굳히는 게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한발 더 나아가 그 친구의 이야기만 듣고 필자를 맹비난 한 다른 친구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처럼 더 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양쪽 다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데 본인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일에 '중립 기어'를 박지 않은 채 한쪽 편만 들어 냅다 상대편을 비난하는 행동으로 옮겼으니 말이다.
예진이도 필자에겐 말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무언가 예민한 문제였던 거 같은데 그것을 자신에게 털어놓은 것이라면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그 다른 친구에게도 묻는다.
넌 나에게 정말 못되고 나쁜 아이라고 했는데,
그럼 너는 정말 착하고 좋은 아이라서 나에게
앞뒤 사정 들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그렇게 이야기했니?
훗날 그 다른 친구에겐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지만 필자는 그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비통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식의 무반응을 보였는데 말 그대로 그런 일이 그 아이한테 생겼는데 나보고 어쩌라고였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필자를 사이코패스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상처 주고 본인은 마음 아픈 일이 절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래서 어쩌라고 밖에 아무 감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정리를 한 번 해보자
처음에는 그저 가만히 있으며 사람 좋게 웃으면 만만하게 보거나 의도와 다른 일이 벌어졌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의견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피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었다.
그렇게 하여 과거와 달리 그저 상대가 하는 대로 휘둘리지 않고 내 선에서 끊는 법도 실행해 보았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자신과의 대화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과 더 나아가 무조건 끊어내지 않고 한 번쯤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쳐내고 끊어내는 것은 나의 단호한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었지만 타인과의 대화는 상대가 응해주지 않으면 나만이 노력한다 해서 개선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예진이와의 경험으로 느꼈다.
그리하여 회피하려 한다면 굳이 붙잡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대화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고 흘러가게 둘 것이다.
최초에는 얼굴을 맞대어 대화해 보려고 내 나름의 노력은 하겠지만 다만 거기까지다.
요새 관계에 지쳐 '손절'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이거 또한 인간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봤던 사람들이 최후에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손절'을 하나의 유행이나 가볍게 실행에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싶다.
실제로 필자는 어린 나날에는 지독하게도 인간관계 때문에 고생했지만 훗날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깊고 깊은 대화로 갈등과 오해를 풀어내 오히려 사이가 돈독해진 경험도 해봤기 때문에 우리 모두 결이 다른 사람들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울려 살아가려면 언젠가 한 번쯤은 싫어도 부딪혀보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봐야 할 것임을 말하고 싶다.
또한 '회피'는 어떨 때는 최선의 선택이 될 때도 있지만 그것을 무기로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터넷 세상에는 악플보다 무플이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반응이 아픔을 준다는 것인데 '회피'도 하나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쉽게 상처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렇게 모조리 다 회피할 거면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혼자 살아라
다음 이야기에.
*표지, 삽입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