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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맨 뒷줄 짝 없는 아이

서서히 다가오는 고립과 흑화의 시작

by 엘스 else

1화의 엄마로부터 정신적 지배와 갈등

3화의 선생님의 무관심

5화의 또래 집단의 배척


등등


이 모든 것이 사실상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계속해서 문제가 터지고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 필자의 유년, 학창 시절의 인간관계는 하루하루가 지옥과 살얼음판 그 자체였다.


그러자 필자도 사춘기 시절을 겪으면서 일종의 흑화 했다고 말하는 것이 쉬운 설명일까 싶다.


더 이상 자신이 공격받지 않기 위해 방어기제가 발동되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을 갈구하던 본래 기질은 사라지고 거의 혐오 수준으로 타인을 공격적이고 냉소적으로 대했으며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거친 언행과 행동을 구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바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5화의 회색치마 사건 때 저주와 가까운 편지를 받았어도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우선이었지 사이코도 아니고 바로 공격적인 행태를 취하진 않았다.


흑화의 기폭제는 '고립'이었다.


술 먹고 난동 피우던 취객을 지나가던 행인이 안아주자 울면서 진정하게 된 이야기를 뉴스나 인터넷에서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으실 것이다.


그렇게 경찰관이 말리고 제지해도 멈추지 않았던 주정이 누군가의 따스한 포옹 하나로 문제 상황을 종결시킨 것이다. 난동 피운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이 사례에서 우리는 타인의 손길과 온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출처 - 연합뉴스 / 난동 부리는 취객 '포옹'으로 진정시킨 청년…네티즌 '감동'
뉴스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Hp5T39c2qbo


안타깝게도 필자에겐 어린 시절 부모와 어른, 또래 친구들마저 그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정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점점 '고립'되어 '상처 많은 괴물'이 되었다.




최초의 고립



그것은 마찬가지로 눈치채지 못하게 찾아왔다.


학창 시절 우리는 참 운동장에 지긋지긋하게 불려 나갔었다. 학년별 반별로 2명씩 짝을 지어 행과 열을 맞추어 최대한 가지런히 섰고 그런 우리에게 들려줄 귀중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은 낡은 스피커를 타고 운동장에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어릴 때는 어른의 말씀은 그저 지루한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았고 아이들은 선생님 몰래 감시를 피하면서 제각기 짝인 옆친구를 건들며 장난치거나 속닥거리면서 떠들기도 했다.


톡톡


그런데 누군가 뒤에서 필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 땡땡아, 나랑 자리 좀 바꿔주면 안 돼?

- 응? 바꿔달라고?


우리 반 줄은 아무렇게 서 있는 것이 아닌 개인 번호 순서대로 2명씩 서있는 거라 갑작스러운 그 아이의 제안은 당황스러웠다. 특히 우리 반이 홀수 명수라 어쩔 수 없이 맨 뒤에 혼자 서있게 된 아이의 제안이라 처음에는 달갑지 않았다.


( 나보고 혼자 뒤에 서라는 거야? )


그런데 공교롭게도 필자의 앞뒤로 그 아이와 친한 아이들이 서 있었고 아무래도 친구들과 같이 떠들면서 지루한 조회 시간을 보내고 싶었나 보다 싶었다.


- 응? 땡땡아~ 바꿔주라~


그래도 망설여지긴 했다.

어쨌든 선생님이 말씀하신 규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 땡땡이 옆에 누구랑 진짜 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 ...알겠어.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그 아이는 필자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믿는 성향에 정말 급한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하고 자리를 바꿔준 게 화근이었다. 필자가 자리를 바꿔주자마자 그 아이와 친구들은 맨 뒤로 밀려나게 된 필자를 보며 자기들끼리 속닥이고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그 또한 '조롱'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순진하다 못해 둔감해 빠진 바보였다.


한 번 자리를 바꿔주게 되니 다음 조회부터는 당연하다는 듯 개인 번호 순번 규칙은 무시하고 필자를 맨 뒷줄에 세우게 만들어 자기들끼리 뭉쳐 서있기 시작했다. 뭔가 항의하고 싶다가도 귀찮은 것도 있었고 여자 아이들 무리를 대상으로 갈등을 만드는 거 자체가 그다지 탐탁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요새는 출산율 저하로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한 반에 학생 수가 많아서 담임 선생님은 내가 맨 뒷줄에 그런 봉변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셨다. 그저 교장 선생님 눈에 튀지 않게 아이들이 줄지어 잘 서있는지만 감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필자는 반 아이들 사이에서 고립된 채로 방치되었다.




'고립'에 이은 '파편화'



선생님마저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관심과 방관이 이어지자 아이들은 더 대담해졌다. 이제는 조회 시간을 뛰어넘어 소풍 줄도 번호대로 서라는 선생님의 말을 무시한 채 자기네들 마음대로 친한 아이들끼리 짝지어 버리기 시작했다.


결국 소풍마저 맨 뒷줄 혼자 서게 되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우리 반이 홀수 명수라 필자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혼자 서야 했기에 필자는 희생? 한다는 개념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세상까지 얄궂게 필자를 괴롭혔다.


소풍 장소는 놀이동산이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때라 선생님들은 우리끼리 독자 행동하는 것은 아직 너무 어린 나이라고 판단해 패키지 단체 여행처럼 줄지어 선생님들의 통솔하에 몇 가지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도 원망스럽게 하필 모든 놀이기구의 탑승 인원 제한이 필자 앞에서 가로막히는 일이 계속 발생했다.


어쩔 수 없이 같은 반 아이들과 놀이기구를 같이 타지 못하고 항상 더 기다렸다가 뒤에 따라오는 다른 반들과 타고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내리자마자 급하게 출구로 빠져나가면 이미 다 타고 나와서 기다리는데 신물 났다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담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필자를 바라... 정확히는 째려보았다.


내가 늦게 타고 싶어서 늦게 탄 것도 아니고,

나도 같은 반 아이들끼리 타고 싶었는데,

왜 나를 따로 떨어뜨리고 싶어서 안달일까.



그들은 필자를 반에서 고립시키다 못해 곧 떨어져 나가려는 파편 부스러기로 만들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든다고 했는데...



정말 더 서러웠던 것은 급식을 먹을 때마저 그전까진 의도치 않다고 생각했건만 이제는 선생님까지 가세하여 필자를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왜 당시 담임 선생님이 그런 처사를 내렸는지 의문이다.


필자가 다녔던 학교는 급식실도 규칙을 만들어 배식을 받아 아무 데나 앉아 먹는 것이 아닌 반별로 각자 정해진 자리에서 앉아 먹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자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담임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며 필자를 같은 반 테이블이 아닌 비어있는 옆 테이블에 혼자 앉도록 자리를 배정하셨다.


슬펐지만 정말 테이블에 자리가 없어 그런 것이라 믿고 필자는 항상 급식 때마다 외로이 외딴섬 자리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배신감에 휩싸이는 일이 터진다.


나중에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같은 반 테이블로 자리를 만들어주셔 배정해 주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정해준 거니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필자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고 분노로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필자가 혼자 계속 앉아서 먹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은 듯해 보였고 끝끝내 필자는 학급생활 전반에 걸쳐 방관과 고립에 시달려 부정적 감정이 쌓이다 못해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리가 있었는데 왜 내 자리는 계속 바꿔주지 않는 거야?

나만 왜 같은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게 계속 막는 거냐고!!




어른의 행동을 아이들은 모방하다 못해 진화시킨다



아이들은 매우 영악하고 눈치가 빠르다.

어느새 분위기를 사르륵 살피더니 필자가 선생님마저도 보살펴주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알아채자 이제는 대담한 게 아닌 스스럼이 없어졌다.


인간관계에서 일종의 도의적 선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항상 이 선을 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러나 반 아이들은 이러한 필자의 선을 무시하고 침범하며, 인격 존중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른인 선생님이 그러했으니 필자에게는 무슨 짓을 하든 묵인될 것임을 약삭빠르게 이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필자를 대놓고 유령 취급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조회, 소풍 때 줄 서기처럼 자신들이 필요한 게 있으면 필자를 이용하거나 더 나아가 화풀이 대상으로까지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 심한 물리적, 정신적 폭력까진 가지 않았으나 반 아이들은 어른이 눈치챌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필자를 괴롭혔다.


- 야!!


쉬는 시간, 화장실을 갔다 자리로 들어가는 순간 뒤에서 신경질적인 부름이 들렸다.


- 야!! 내 말 안 들려??

- ...어? 나 부르는 거였어?

- 하 참, 주워!

- 뭐??


주어, 목적어가 전부 빠진 명령이 이어졌다.


- 주으라고.

- 그니까 뭘..


계속된 명령조에 필자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어 목석처럼 가만히 서있었다. 그 아이의 신경질에 주변 아이들도 얼어붙은 분위기와 이건 아닌 거 같다는 표정은 지어도 필자를 도와주진 않았다.


까닥


- 안 보여? 주으라고.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는 필자에게 아주 대단한 친절을 베푸신 그 아이는 고개 한 번을 아래로 까닥였다. 그 시선을 따라 바닥을 유심히 요리조리 보아하니 떨어진 딱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필자가 지나가다가 모르고 쳐서 떨어뜨렸던 것 같다.


( 고작 이거 때문에 이 생난리를 피우는 거였어?)


어이가 없어진 필자는 잠시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느라 그 아이의 같잖은 명령에도 당장에 그 딱풀을 줍지 않았다. 그러자 이제는 팔짱까지 껴 고자세로 필자를 찍어 누르려는 태도를 취하더니 그 아이는 한번 더 신경질을 냈다.


- 주워. 주우라 했다.


지금도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당시 상황을 회상하면서도 기가 차지만 어린 나이였던 그때도 그 아이가 무섭기는커녕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 아, 이거? 자, 여깄어.


별로 상대하고 싶지도 않고 그만한 가치도 없어 필자는 (하찮다는 의미의) 미소를 띠며 딱풀을 주워 그 아이 책상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상황을 종료시키기 위해 재빨리 자리로 돌아왔지만 지금 생각하면 필자가 잘못했다.


끝까지 주워주지 말 걸 그랬다.


필자는 귀찮아서 빨리 해줘버리고 말려고 했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위압적인 모습에 필자가 굴복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렇다. 그 아이는 자신의 말에 타인이 복종하는 경험을 필자를 통해 배울 기회를 줘버린 것이다.


미래에 필자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겐 가차 없게 반격하거나 무시해서 두 번 다시 괴롭히지 못하도록 하는 당돌한 성격으로 변했지만 신경질적으로 타인을 굴복시키기 위한 행동을 어릴 때부터 학습한 그 아이에게 누군가는 한 번쯤 필자처럼 당하여 부정적 경험을 얻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은영아(가명),

지금도 별것도 아닌 일에 온갖 신경질 내며 기분이 태도로 이어지고 있니?

아무리 어릴 때였지만 너 그때 참 같잖고 구렸어.




고립되다 못해 본격적인 사춘기가 들어가기 전부터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치사함, 영악함, 간사함에 치를 떨어 버렸고 내면에서 차곡차곡 쌓이던 혐오와 분노가 결국 바깥으로 새어 나와 필자를 흑화 하게 만들어버렸다.



조금이라도 건들기만 해 봐. 이제 너 죽고 나 죽자야.



다음 이야기에.



*표지, 삽입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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