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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뚤어진 '우정'과 첫 '거짓말'

곁에 있는 친구의 중요성

by 엘스 else

요새 어린아이들은 점점 더 영악해지는 거 같아요.

우리 어렸을 때는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위와 같은 묘사를 필자는 일부분은 동감할 때도 있지만 전체 동의는 하지 않는다.



정말 우리가 어릴 때 동네에 못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을까요?



물론 요즘은 미디어와 기술의 발달로 유해한 매체에 대한 접근이 쉬워진 것도 있어 잘못된 방법을 아이들이 쉽게 습득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절에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못된 아이들은 있긴 마련이고, 다만 시대에 따라 그 방식이 진화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유년 시절 필자도 분명 순수해야 할 나이의 또래 아이들이 성악설을 증명하듯 과격하고 도를 넘는 못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시대가 살기 좋았다며 흔히 '노스텔지어'에 젖어드는 감상처럼 추억 보정이 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 또 다른 시야가 보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이번 화부터는 인생에 있어 가장 민감한 주제인 또래아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2화에서 유치원 시절 때 희철이와 민수 같은 또래 친구들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한 내용을 잠시 털어놓은 적이 있으나, 사실 이 둘은 이성 친구들이었고 어린 시절 또래 집단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같은 성별의 친구들 관계이기에 이번에는 이 안에서 겪었던 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때는 아마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기억한다.

한동안 필자는 유치원을 나가지 않고 보습학원 비슷한 곳을 다닌 적이 있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난 쟤가 맘에 안 들어. 너네도 그렇지 않아?



그곳에서 만난 활기찬 성격의 '수진(가명)이'는 그 보습학원에서 인기 있는 아이였다.

같은 단지에 사는 이웃 친구들도 많이 있었는지 다른 아이들은 대체로 혼자 있어서 선생님이 공부를 봐주러 올뿐인데 수진이는 항상 친구들이 찾아와 수진이 주변에 앉으려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인기 있는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다.


특히나 필자는 사랑과 관심에 고파있는 아이라 부모가 없는 장소에서 은연중 자신이 소외되지 않고 안심하며 지낼 수 있는 곳을 늘 찾아다녔기에 수진이는 탐나는 아이였다.


그 아이 주변에 있다면 수진이에게 묻어가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게 있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운명처럼 머지않은 날 수진이와 그녀의 친구들 주변에 자리 하나가 났고 그 아이들과 가까이서 지내고 싶은 마음에 냉큼 그곳에 앉아 절대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여느 아이들처럼 군것질이나 어디 재미난 데 놀러 간 이야기라든지 평범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쉬운 주제에 다른 아이가 놀이동산에 가봤다고 하자 '나도 거기 가봤는데!' 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껴보려고 노력했다.


- 야, 얘들아. 쟤 너네들 아는 애야?


조금씩 그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는 생각에 들뜸도 잠시 갑작스러운 수진이의 한 마디에 대화 주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다.


- 아니. 쟤가 누군데?

- 나도 쟤 모르는데 여기서 처음 본 애거든? 근데 날 싫어하는 거 같아. 나만 보면 표정도 이상하구.


수진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어느 깡마른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우리가 앉아 있었던 자리보다 멀리 동 떨어져 있던 탓에 그 아이한테까지는 이곳 대화가 들릴리는 만무했겠지만 어찌 됐든 한 공간에서 갑자기 다른 아이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시작되자 내 일이 아님에도 수진이와 주변 아이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 수진이를 싫어한다구? 이상한 애네.

- 그러니깐.


다른 아이들도 인기 친구인 수진이의 눈치를 보기 시작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나둘 사실의 진위 따위는 상관없이 수진이를 싫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아이에 대해 안 좋게 말하기 시작했다.


- 아, 나 본 거 같아! 엄마랑 시장 갔다가 걔가 시장 집에서 나오는 거 본 적 있어.


그러다 누군가가 그 아이가 우리 동네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시장 뒤편 빌라촌에 산다는 사실을 말하게 되었고 수진이와 다른 친구들은 마치 '그럼 그렇지'와 같은 표정으로 바뀌어 콧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 엄마가 시장 쪽에 사는 애들이랑 놀지 말라 했는데.

- 수진아, 우리가 있으니까 걱정 마!

- 응, 쟤가 또 나 괴롭히면 도와줘.


아직도 그 아이가 수진이를 진짜로 싫어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미 그 아이는 수진이를 싫어하는 아이로 인식이 퍼져 되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인기 많은 수진이와 그 주변 아이들에게 친구로 끼고 싶었던 어리석은 필자 때문에 일은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저 '친구'하고 싶어서



친구들끼리 싫어하는 아이를 같이 배척하는 것이 '우정'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수진이에게 보탬(?)이 되어 친구로 인정받고 싶었던 필자는 인생의 첫 죄악을 저지르고 만다.


- 쟤가 누구 안 좋게 말하는 거 여기서 지나가면서 들었던 거 같아.


이 한마디를 하자 수진이를 비롯하여 모든 아이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 땡땡아, 진짜야?

- 어.. 어. 그런데 그게 수진이인지는 모르겠어.


그렇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주 어린 나이임에도 그저 인기 많은 아이와 친구하고 싶다는 욕심에 뒷담화에 가담한 것도 모자라 없는 말까지 지어내어 생애 첫 거짓말을 해버린 필자였다.


사리분별이란 게 없는 너무 어린 나이 때의 일이라 동기도 터무니없이 단순하고 정말 악의가 없었다 뿐이지만 말이 단순히 거짓말이지 사실 누군가를 '음모'에 빠뜨린 아주 못된 행동이다.


그렇다.

첫 번째 문단의 [정말 우리가 어릴 때 동네에 못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을까요?]라는 문장은 '수진이'를 가리키기보다는 '필자'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처음부터 수진이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냥 한 아이가 자길 싫어한다는 말을 했어도, 다른 아이들이 수진이의 말을 믿고 동조하여 그 아이를 욕했어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무심결에 그래버렸다는 남 탓을 하는 핑계는 성인이 된 지금에서까지 대는 건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어린아이 때였어도 없는 사실을 말하는 순간 어린 필자의 심장은 터져나갈 거 같았고 이것이 '거짓말'을 입 밖에 내뱉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며 필자가 무언가 잘못했음을 명백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필자는 그 한순간이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우정을 가지려 했던 '못된 아이'였다.






하아.. 내가 왜 그랬지..



수진이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그 깡마른 여자 아이가 수진이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집요하게 필자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일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깨달은 필자는 이 상황을 빨리 없던 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했지만 어린아이답게 대책 없이 우물쭈물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 나도 그냥 걔가 투덜거리는 거 같았지만 수진이 얘기인지는 몰라..!

- 안 그래도 쟤가 나만 보면 표정 맨날 이상해지더니.


어떻게든 내 거짓말을 수정하여 '그 아이가 수진이를 이야기한 건 아니다'라는 걸로 돌려보려 했지만 수진이는 이미 아까부터도 그 여자 아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필자의 말 또한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증거로 채택해 버렸다.


그나마 거기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마침 대화의 중심이 된 여자 아이가 수진이 주변을 지나가게 되자 수진이는 돌발 행동을 하였다.


- 야, 너 내 얘기했다며?


필자는 그 순간 너무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화장실 가는 척해버렸다.

비겁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기에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아닌지 나중에 자리에 돌아와 보니 수진이의 돌발 물음에 (당연하겠지만) 그 여자 아이는 자기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던 거 같고 수진이나 그 친구들은 미심쩍어하는 거 같았지만 일단은 넘어간 거 같았다. 필자도 마지막엔 그 여자 아이가 말하던 게 수진이 얘기인지는 정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에 대한 나머지 추궁도 멈추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아직 유치원생 정도 나이 때에 벌어진 일이었으니 생각보다 당시 필자는 충격이 대단했다.




필자는 수진이 사건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특히 '거짓말'을 하게 된다면 죄책감과 함께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며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나 자신에게나 악영향만 끼칠 뿐이라는 것을 몸소 배우게 되었다.



수진이가 그 깡마른 여자 아이를 신경 쓰고 있다면 그냥 수진이 문제로 뒀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을 인기 많은 수진이와 친구하고 싶다고 혹은 친구가 됐다면 수진이와 같은 마음으로 동조해야 될 것이라는 잘못된 '우정'과 '욕망'이 일순간 나의 문제로 바뀌어 내 인생에 끌고 들어오게 되었고 나 자신까지 파괴하기 이르렀다.


그리고 거짓말을 친 자신도 자신이지만 수진이 같은 아이를 옆에 둔다면 오히려 피곤해진다는 것을 새삼 어린 나이에 깨닫게 된 어린 필자는 이런 생각을 했더란다.



차라리 친구를 안 만드는 게 나을지도



다음 이야기에.



*표지, 삽입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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