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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내가 '잘못'이라고 한다

'교훈' 대신 배운 '불신'

by 엘스 else

필자의 힘든 인간관계는 비단 또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어른과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엔 단연코 자주 얼굴을 맞대는 어른인 선생님들과의 갈등도 은연중에 자주 일어났다.


가정 내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도 순탄치 않았던 필자에게는 이미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져있었기에 선생님과의 관계가 유달리 더 어려웠었다.


요즘과 달리 교권이 매우 강했던 시절이었기에 아마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비슷한 일을 많이 겪었을지도 모르겠다.




교실 내에서는 선생님이 곧 법이었다



선생님이 '문제'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피해를 호소해도 '아무런 없던 일'이 되었다.

선생님이 '문제아'로 낙인찍어 버리면 아무리 항변해도 '말대꾸까지 하는 문제아'가 될 뿐이었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문장 구성력이 좋지 않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나이이거니와 교육 환경적으로도 한 선생님당 관리해야 하는 학생 수가 많았기에 문제가 생겨 도움을 요청해도 별 거 아니라는 듯 지나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선생님, 아파요! 저 아파요!



초등학교 2학년 방과 후 청소시간에 반 친구들 몇몇이랑 교실문을 동대문 놀이 삼아 문이 닫히기 전에 휙 하고 지나가는 나름 스릴만점인 놀이를 즐겼다. 그러다 술래인 아이가 욕심에 빠르게 교실문을 닫으려 했고 하필 그 순간이 필자가 지나던 길이라 몸 중심 한가운데가 교실문이랑 정면 충돌해 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고 필자도 같이 놀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실문과 내가 충돌하면서 생식기 부분이 세게 치였고 그 때문에 고통이 어마무시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울먹이며 때마침 교실로 들어온 담임 선생님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 왜 이렇게 시끄럽니? 땡땡이는 왜 또 주저앉아있고?

- 선생님...! 저 아파요..! 문에 세게 맞았어요!

- 왜?

- 문 앞으로 지나가려는데..

- 놀던 거였어요, 선생님! 다 같이 놀던 거였어요! 그런데 땡땡이가 혼자 부딪혔어요!

- 그래도 몸 가운데가 세게 문이랑 부딪혔잖아...!

- 아아.. 둘 다 됐고 다들 청소 끝났으면 교실에서 이러지 말고 빨리 집에 돌아가렴. 부모님 걱정하신다.


딱히 필자도 친구를 혼내어달라는 의미 보단 어려도 생식기가 몸에서 소중한 부위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기에 선생님께 어른으로서 보듬어주고 봐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술래였던 아이는 아무래도 자신이 선생님께 혼날까 두려웠었는지 그냥 우리 다 같이 놀고 있었던 거라고 다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선생님은 양쪽에서 각자의 사정을 설명하는 소리가 겹쳐 들려오자 이내 피곤하셨는지 청소 끝났으면 교실에서 더 이상 놀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대충 마무리를 지어버렸다. 그러자 술래였던 아이와 같이 놀이하던 친구들은 쌩하니 가방을 싸들고 교실 밖을 하나 둘 빠져나갔다.


심드렁한 선생님의 반응에 필자도 별 수 없이 아픈 생식기를 억지로 손바닥 몇 번 문지른 뒤 고통을 참고서 집으로 돌아갔고, 아니나 다를까 바지를 벗어보니 교실문에 찧었던 사타구니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 옛날 교실문은 나무 겹판으로 만들어져 있어 혹여 삐져나온 나무 가시 같은 것이 생식기 피부에 박히거나 하지 않아 운이 좋았다 싶었다.


그 어린아이에게 괜찮은지 한 번이라도 물어봐주고 살펴봐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만이 조금 아쉬웠다..




제발 자리 바꿔주세요..



그렇다고 고학년이 되어서도 상황이 딱히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말주변이 아무리 좋아져도 여전히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려웠다.


어느 날 선생님 눈에 필자가 너무 주변 아이들과 조잘거리며 수업분위기를 해친다고 판단하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강제로 유배 보내듯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것이 하필 한 분단이 거의 전체 남자아이들밖에 없고 특히 내가 앉은자리는 벽이랑 붙어있는 안쪽 자리라 바깥 남자아이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지나다니기에도 불편한 자리였다.


생각하는 의자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반성하게 만들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자리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자마자 얼마 안 가 문제가 터졌다.


- 땡땡아, 도대체 왜 우는 거니?


나는 돌연 수업도중 눈물 한 바가지 쏟고 말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물론 주변 아이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자리.. 제 자리 좀 바꿔주세요...

- 도대체 자리가 왜. 주변 애들이 널 괴롭히는 것도 아니잖니?


그 사실은 맞다.

자리가 구석지고 주변이 다 남자아이들이라 날 놀이상대에 껴주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긴 했다.


- 제가 여기서 나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저 혼자 여자라 여기 있기 힘들어요..

- 뭐가 못 나간다는 거니? 그리고 너 말고도 다른 남자아이도 여자애들만 있는 분단에 있는데 왜 너만 여기 있기 힘들다는 거야??


이 사실 또한 맞는 이야기다.

고로 선생님 말대로 나는 정말 이기적이 짝이 없는 아이였다.


더 이상 고통을 호소에도 논리로 누르는 선생님에게 내 말은 닿지 않았고, 반 분위기도 삽시간에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자리에 대한 불안감과 더불어 또래 친구들에게 미움을 살 거 같은 불안감까지 더해지자 필자는 눈물은 멈추지 못했지만 입은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아마 짐작하길 과거 희철이와 민수와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은연중에 심리적 압박처럼 온 거 같았다. (*2화 참고)


언제나 버림받는 어른아이 2화 - 내가 좋다면서 나를 순식간에 버린 아이
https://brunch.co.kr/@else/43


갑자기 날 유령처럼 무시하고 남자아이들과 놀기 시작한 희철이와 내 말을 듣지도 않는 민수와의 경험에서 날 괴롭히진 않지만 그 둘과 똑같이 유령처럼 대화에 껴주지 않고 심지어 자리마저 안쪽에 갇혀 있는 자리라 마치 공황이나 폐쇄공포증처럼 발작하듯이 울음이 터진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성인인 지금이야 당장 불편해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선생님께 정확하게 이 체벌이 어떤 점에서 필자에게 힘들며, 잘못한 것은 있으니 차라리 다른 체벌로 변경해 달라고 논리 정연하게 말씀드렸을 것이다. 혹은 선생님도 요새라면 오은영 박사님과 같이 아동정신건강 쪽을 참고하시거나 선생님 한 명당 관리하는 학생 수가 적은 환경이면 더 세밀하게 내 이상행동에 대해 관찰이나 대화를 해봤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꼭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에게 육체적 체벌 대신 자리 바꾸기로 교훈을 주시려던 선생님이 딱히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필자 또한 맥락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여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당혹스럽게 하였지만 의도된 행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 자신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 어린아이인 필자는 그저 생떼를 부리며 자리를 바꿔달라는 잘못된 아이가 되어버렸고 그렇게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부정적으로 낙인찍혀버렸다.



그리고 선생님도 훈육을 위해서 그러셨는지 단호하게 내 요구는 기각시키고 결국 필자의 자리는 결단코 바꿔주지 않으셨다.


선생님, 지금은 과거 선생님의 단호함을 이해해요.

아마도 단체 생활을 가르치시고 지도하시기 위함이셨겠죠.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단호한 지도는 저에게 '훈육'보다는 호소를 외면하는 어른에 대한 '불신'과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으로 바뀌어 부정적 감정을 증폭시켜 버렸어요..



그리고 이런 불신과 불안감이 최고조를 이루게 된 사건이 터지고 만다.



어머님의 고생과 노력을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좋겠구나



때는 중고등학생 즈음으로 기억한다.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학생들의 각종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학교에는 고민 상담 센터가 개설되어 있었다.


마침 담임 선생님께서 상담 센터를 운영하신다는 소식에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라면 좀 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싶어 찾아갔던 적이 있다. 이미 그즈음에도 엄마의 모습과 행태가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엄마는 치맛바람... 이라기보다는 어디서든 자기가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학교 행사나 학부모회에도 참여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안면을 튼 사람이었기에 괜히 말했다가 오히려 필자만 더 난처해질까 봐 매일 같이 괴로워하다 못해 수십 번을 고민하였다.


엄마는 자기 체면이 조금이라도 깎이면 집에서 배로 필자에게 화풀이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집안팎으로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에 엄마를 붙잡고 울어도 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다 해보았으나 오히려 점입가경이 되어갈 뿐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는 필자에게 공부는 공부대로 압박은 넣고 있어서 심리적 불안감이 심했고 도저히 학급 생활에서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당연히 또래 친구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알아봤자 똑같은 10대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으며, 오히려 우리 집의 상황이 소문이나 놀림거리로 소비될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평상시 담임 선생님은 온화한 말씨와 품새를 가지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그 답답하다 못해 타들어가는 마음에 정말 정말 정말 용기를 내어 상담 센터 문을 두드렸던 필자였던 것이다.


- 땡땡아, 무슨 일로 왔니?? 무슨 고민 있니??


다행히 생각한 대로 따뜻한 말 한마디에 나는 입을 쉽게 뗄 수 있었다.


- 저.. 엄마가 좀 이상해서요..

- 어머니가 이상하다니 무슨 말이니?

- 집에 잘 안 계시고 항상 밤늦게 들어오시는데 물어봐도 일하신다고 하는데 무슨 일인지 알 수도 없고..

- 음.. 땡땡이에겐 아마 공부가 중요한 시기니까 걱정시키지 않으시고 싶으셨을지 모르겠구나.

- 정말 일하신다면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아빠와 자주 다투시는 거 보면 정말 일하시는지 의문점도 들고 무엇보다 집이 항상 엉망이에요..

- 밖에서 일하시는 거면 아무래도 집안일은 잘 신경 쓰시지 못할 거야. 그럴 땐 땡땡이가 조금 더 도와드리면 되지 않을까?

- 제가 치우거나 도와드려도 한계가 있을 때가 있어서... 엄마에게 말해보아도 항상 바쁘다고만 하고 최근엔 뭐든 주제가 다 부동산 얘기나 다른 이야기로 계속 빠지셔서 소통도 어려운 거 같아요..

- 아아, 어머니께서 부동산 쪽 관련해서 일이 있으신가 보구나. 이사만 하더라도 꽤 까다롭고 힘들거든. 아마 그래서 여러 가지로 신경 쓰시기 어려우셔서 그러실 거란다.

- 어...


뭔가 이야기가 어떤 말을 해도 도돌이표가 되어 결국 '엄마를 이해해줘야 한다'로 흘러가는 느낌에 필자는 처음의 희망과 달리 점점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집이 엉망이라는 이야기가 단순히 어질러져있는 수준이 아니라 쓰레기가 천장까지 가득 차있어 섞은 내가 나고 날파리까지 날아다니는 처참한 집안 환경에 대해 자세히 묘사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빠와 다투는 것도 일반적인 다툼이 아닌 항상 아빠와 마주치기를 피해서 새벽 늦게 들어와 몰래 내 방에 들어가 있다가 피해 다니는 기묘한 행동 등도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부동산 일을 한다 해도 도둑처럼 새벽에 소리소문 없이 들어왔다가 가족들을 피해 다시 나가고 그러진 않진 않을 거 아닌가.


그 정도 사고는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필자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었지만 선생님은 도저히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하지 못하는 거 같았다. 아무래도 청소년 때는 보통 사춘기로 인해 일어나는 흔한 부모님과의 갈등 정도로 생각하셨거나 아니면 상담센터라는 건 학교에서 운영하라고 해서 하는 표면적인 기관이고 전문적인 심리나 도움센터는 아니라서 대충 대꾸만 해주신 걸 지도 모르겠다.


담임 선생님의 따뜻해 보였던 모습과 달리 대화 흐름이 꽤 냉담하게 흘러가자 필자는 당황스러움에 말문이 막혔지만 어떻게든 그래도 좀 더 상황의 심각성을 피력해보고자 했다.


- 그.. 선생님 말씀도 저도 이해는 되는데... 말씀하신 거랑 좀 많이 다른 상황이 많았어서요.. 그래서 좀 제가 힘든 거 같아요..

- 그렇구나.. 땡땡이 어머니는 원래 일하시던 분은 아니셨던 거니?

- 어.. 네.. 전업주부세요.

- 그럼 아무래도 집에만 있던 어머니가 갑작스러운 사회활동으로 그 변화를 땡땡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부분도 이해한단다.

- 아니.. 그게 아니라..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계속 돈이나 부동산 얘기만 하시고 나머지들은 전부 다 뒷전이라 여러모로..

- 어른들에게는 경제적인 게 중요하거든. 땡땡이를 먹여주시고 공부시켜주시고 하는 것도 다 부모님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이뤄지는 거란다.

-.....

- 지금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땡땡이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고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이해될 거란다. 땡땡이는 학생 때라 학업에 중요한 시기이니 공부에 좀 더 신경 쓰면서 가족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야.

-.... 네.


말을 더 이어갈 가치가 없어지자 그대로 대화를 거짓의 긍정으로 마무리 지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저 철없는 청소년으로 보이는 필자에게 엄마의 노고를 좀 더 이해하고 학습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말을 고민의 해답으로 내놓았고 그렇게 내 생애 첫 상담은 어이없게 끝나버렸다.


처음 우려하던 대로 엄마는 학교에 얼굴을 잘 비추던 인사 중 한 명이었기에 외부에서 가면을 쓰고 사람 좋은 얼굴로 다니던 엄마의 모습을 봤던 선생님에겐 역시나 그녀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필자만 이상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결국 나의 절규와 호소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훗날 파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필자의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이해'는 땅바닥 아니 지하로 꺼져버렸다.



한 가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이 글은 무조건 선생님이란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쓴 글은 아니다.


좋은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불행하게도 필자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신 분들에 대해 적다 보니 부정적 에피소드 위주로 작성된 것뿐이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하자면 좋은 선생님들은 아쉽게도 필자와 엮일 일이 많이 생기지 않아 좋은 영향을 못 받았을 뿐인 아쉬운 감정 정도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부모님보다도 오래 마주하던 어른인 몇몇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행동에 질릴 대로 질려버려 또다시 부정적인 선입견이 겹겹이 쌓여버린 필자는 성인이 된 후에도 질풍노도 사춘기의 삐딱한 시선과 태도를 고쳐나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된다.


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네? 선생이나 어른이라도 당신들 말이 다 옳아?



다음 이야기에.



*표지, 삽입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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