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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날 사랑해서'라는 말을 믿었다

'천륜'이란 이름의 가스라이팅

by 엘스 else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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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떻게 엄마인데, 아빠인데 자식이 그럴 수 있나.
엄마, 아빠는 다 자식을 위해 그런 것이다.



첫마디부터 과격할 지도 모르겠다.


엿이나 바꿔 드세요



첫 문단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선 축하의 말씀을 보낸다.

당신은 좋은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난 영광을 누리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끔찍한 부모 밑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위와 같은 말은 엿도 못 바꿔 먹을 만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문장을 듣는 거 자체가 심적 고문이자 더 과격히 말하자면 인격 살인 행위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격 살인'이라니 말이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악의가 없더라도 '효'가 주요 덕목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부모를 실망시키고 혹은 저버리는 행동은 '불효'로 몰고 가 잘못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식을 비난받게 한다.


그런 비난의 비수를 맞은 자식은 어떻게든 불효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착한 아이로 생활하지만 끊임없이 효도가 모자라다며 부모에게 질타받고, 이러한 고민을 주변에 털어놓아도 결국 '천륜'이란 이름하에 '그래도 부모를 끊어낼 순 없지 않으냐'며 의도치 않게 예비 패륜아로 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견디다 못해 자신의 인격이 곪아 무너지게 되어 자기 자신, 즉 '자아'가 사라지는 지경까지 도달하기에 '인격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필자가 '인격 살인'을 당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저 엄마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시작은 아주 간단했다.

으레 모든 아이가 그렇듯 과거 어린아이였던 필자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다.

그것도 '엄마의 사랑'이 아주 절실하게 말이다.


대개 아빠는 가계 생계를 위해 해가 뜨지도 않는 새벽 일찍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일상이 반복되었기에 이 어린아이에겐 매일 하루 온종일이 '엄마'라는 사람 자체가 '태양'이자 '세상' 전부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엄마는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겉으로 보기엔 엄마는 필자에게 애정도 주고 칭찬도 해주고 어린아이에게 챙겨줄 것은 거진 다 해주었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비틀어져 있었을 뿐이었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이 일례가 적당할까 싶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은 나를 언제나 자신의 무릎에 앉혀두고 말을 건네던 엄마이다. 얼핏 보면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를 품에 안고 사랑을 속삭여주는 엄마의 모습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준다.


땡땡이는 엄마의~?

- 꿈!

땡땡이는 엄마의~?

- 희망!

땡땡이는 엄마의~?

- 미래!


엄마는 이런 구호에 맞춰 반복적으로 내가 같은 대답을 하도록 시켰고 지금 되돌이켜보면 가장 기괴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을 받는 아이가 아닌 마치 미래를 위해 투자해놓은 상품처럼 엄마는 필자에게 훗날 내가 너를 키운 보람을 느끼도록 보답해야 한다는 일종의 세뇌를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 어떻게 이 쉬운 것도 못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참!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학습지의 영어 문장을 제대로 읽고 해석하지 못하자 엄마는 세뇌의 사랑 대신 슬슬 압박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엄마의 꿈이자 희망이자 미래인데 그녀의 기대에 맞게 학습 능력이 따라오질 못하니 곧바로 질타로 이어진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야 했던 어린아이인 필자는 엄마를 실망시켰다는 사실과 학습지 선생님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불타듯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나를 감싸주며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학습지 선생님이 변호해 주었지만 엄마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우진 않았다.


그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버림받는 거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



다른 애들보다 키가 크려면 이거 먹어!

부모님 둘다 작은 키의 유전으로 사실상 키가 클 수 있는 성장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어떻게든 자식을 키 크게 만들어 보겠다며 항상 물 대신 우유를 먹게 만들었다. 그때는 아무래도 키가 크면 좋긴 좋으니까 엄마가 나를 위한다는 생각에 비릿한 역겨움을 참으며 우유를 들이마셨다.


그러나 그 행위는 세월이 지나 되돌이켜 봤을 때 정말 필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외적으로 아이를 마치 가치 높은 상품으로 만들고자 한 것으로 밖에서 다른 아이들과 키를 비교당하는 날이면 하루 우유 3잔 먹을 것이 4잔으로 늘었었다.


그 당시 학교에서는 영양을 위해 어린이들에게 우유급식도 제공했는데 필자는 사람이면서도 소젖을 더 먹고 자랐으니 오히려 영양이 불균형을 이뤄 지금은 심한 유당불내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나는 '나'가 없었다



여러분, 땡땡이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전학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와 똑같은 보통의 날이었는데 갑자기 종례시간에 엄마가 불쑥 교실로 찾아와 선생님과 몇 마디 나누더니 선생님은 곧바로 나의 전학을 반 전체 모두에게 통보하였다. 그리고 그 통보 대상은 필자도 포함이었다. 앞에 나와서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당황을 넘어 넋이 나가 버렸다.


잠시 멍하니 있던 찰나, 반 친구들은 하나같이 언제 전학 가기로 한 거냐면서 왜 여태까지 한마디도 안 했냐고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필자도 전혀 몰랐던 상황이라 당연히 사전에 친구들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반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엄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놓아 이 어처구니없는 전학 사건에 대해 따져 물었다.


그러나 '맹모삼천지교'에 심취해 필자를 더 좋은 진학 환경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엄마는 자식의 동의나 양해를 구하는 과정은 일절 없이 그저 나의 인생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조종하려 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심한 내적 반발감으로 휩싸였다.



땡땡아, 학교 오늘 부로 자퇴하고 어디 공장을 나가든지 해서 돈을 벌자.

그리고 그 반발감이 최고조로 치닫는 사건이 멀지 않은 미래에 벌어진다. 해괴했던 전학사건도 뭔가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나를 위해 더 좋은 학교로 보내준답시고 했던 행동이니 악의는 아니었으리라 생각하며 한동안은 꿈틀거렸던 '자아'를 다시 억누르고 지내왔다.


우습게도 머리도 덜 자랐고 사회 경험도 부족했던 필자가 미래의 이 비극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을까. 엄마는 어느샌가 모르게 집안 가계 상황까지 파탄 내버렸고, 그렇게 학업과 진로를 위해 좋은 학교를 가야 한다며 비밀 전학까지 강행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필자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공부 대신 돈을 벌어오라고 지시하였다.




여기까지 와서야 필자는 외면하고 싶었지만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 자아'를 갈취하고, 이제는 '내 인생'마저 박살 내려하고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 글의 처음 문장을 되살펴보자.


그래도 어떻게 엄마인데 자식이 그럴 수 있나.
엄마는 다 자식을 위해 그런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위 같은 일련의 경험을 하면서 커왔던 필자에게 이 같은 말이 얼마나 거지 같은 말인지 와닿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구차해서 구구절절 이 글에 남기진 않았지만 더했으면 더한 일도 수두룩 빽빽했다. 그런데도 엄마의 '사랑'이 고파서 혹은 ‘배신’할 수 없어서 자식 된 도리로서 참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필자에게 결국 남겨진 것은 그나마 인생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학업 생활마저 가로막고 돈을 벌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자식의 인생을 제물로서 희생하라는 강요뿐이었다. 자신 때문에 벌어진 집안 상황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사과 없이 아주 당당했고 도리어 눈물로 호소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강조했다.


그 순간 엄마는 아니 그녀는 지독한 이기주의자, 요즘말로 '나르시스트'였다는 것을 깨달아 필자는 더 이상 그녀와의 대화에 일절 응하지 않고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그래야 나와 남은 가족이 살 수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년 인생 전부를 엄마라는 사람에게 인격 살인을 당한 채 자아 없이 질질 끌려다니며 인생의 결정권조차 없던 '어른아이'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인생에서 아주 큰 결정을 내린다.



나는 '엄마'를 버리고 '천륜'을 끊어버렸다




다음 이야기에.



*표지 이미지 - 글쓴이의 개인 계정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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