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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5. 2022

눈을 떠도 비행기는 취소되지 않을 거야

2018년 봄.

 시작은 이랬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후배의 생일임을 알게 된다. 최근 5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사이였지만 왠지 모르게 축하한다는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아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때문이었을 거다. 독일에 있는 대학원에 유학 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프로필이 남산타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왔나?’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친했던 사이도 아니었지만. 군대에 있을 때 그녀가 후배들 중 유일하게 면회를 와준 사람이라는 게 생각이 났다.


 그녀가 면회를 온 것은 물론 우연이었다. 1학년 때 나를 많이 챙겨주던 동기 누나가 면회를 와주기로 했는데. 누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후배인 그녀와 점심 약속을 잡아버린 것이었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나는 전날 저녁 군대 면회실 근처 공중전화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등병에게 면회 취소는 상당히 절망스럽다. 다급한 마음에 내게 와줄 수는 없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누나는 30분 뒤에 다시 전화 달라고 했고 나는 정확히 30분 뒤에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후배인 그녀와 함께 면회를 올 것이라고 했다. 의외의 대답에 조금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나는 아침부터 선임들이 말끔하게 닦아준 군화를 신고, 입대 이후 다섯 번도 채 안 입은 새 군복을 입고서 면회실로 향했는데. 누나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그녀가 보였다. 하얀색 바탕에 꽃이 가득 새겨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깨에서 허리를 지나 정강이 부분에 닿을 듯 말 듯 한 그 옷이 너무 얇아 보여서 왠지 춥진 않을까 하고 신경 쓰였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이렇게 면회를 오게 된 것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군대 면회 와보는 건 처음이라는 그녀 말에 하필 그 처음이 나라서 미안하다고 놀리듯 말했던 것 같다.

 누나가 사 온 무알콜 맥주와 치킨 한 마리를 셋이 나눠먹는 내내 그녀는 내 군 생활보다 PX에서 파는 물건들을 더 궁금해했다. 주말만 되면 PX는 면회 온 외부인들로 빼곡하다. 나 또한 식사를 마친 여자 둘을 PX로 안내했다. 누나가 클렌징 폼을 하나 집어 들면, 그녀도 그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샴푸랑 세탁 세제, 달팽이 크림 등. 나는 군대에서 절대 사지 않는 것들을 잔뜩 사가지고 돌아갔다.

 이렇듯. 그녀가 면회를 와준 것과,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 것에 큰 의미는 없었다. 많은 군필자들이 그러하듯 훈련소에 있을 때 편지 써준 사람과 이등병 때 면회 와준 사람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 고마운 마음이 이자처럼 불어났을 뿐. 그럼에도 그녀에게 연락하는 것이 고민스러웠던 것은 왜일까. 단지 생일 축하한다는 한 마디 하면 끝인데.     


 이미 축하해 주기로 결심이 선 상태였고, 더 이상의 고민은 사치였다. 나는 조심스레 “뜬금없지만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내가 원래 사람들 생일 잘 안 챙기는데 왠지 오늘은 축하해 주고 싶었어.”라고 카카오톡을 보냈다.

 답장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녀는 내게 잘 지내냐고 물었고, 나는 휴학을 했다고 대답했다. “부럽다.”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답장이 반말인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와 내가 동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다. 나 19살에 대학교 갔지.) 그녀의 나이가 헷갈릴 만큼 각자의 삶은 멀리도 흘러왔구나. 이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녀는 내게 ‘너무해.’라고 했다. 한국이냐고 묻는 나와 여전히 독일에 있다고 답하는 너. 5년 만에 연락해서 시시콜콜한 안부를 묻기에는 무언가 이상했고 나는 혹시 독일 놀러 가면 한 번 만나자고.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했다. 군대 전역 후 5년 동안 아시아는커녕 한국조차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훨씬 빠르지 않겠냐고 농담을 했다.

 그녀의 말에 오기가 생겨버렸다. 답장을 보자마자 항공권을 검색했는데. 12월 말에 프랑크 푸르트로 가서 2주 뒤에 한국 돌아오는 항공권이 61만 원이었다. 카자흐스탄의 수도에서 23시간 대기한 뒤 프랑크푸르트로 향하긴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항공권 하나 가지고 2개 국가를 여행한다고.

 항공권을 결제한 다음 그녀를 놀라게 해주려 했다. 그런데 여권번호가 필요했다. 고등학생 때 만든 것은 기간이 만료됐을 것이 뻔했다. 내일이 되면 일단 여권부터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경비가 얼마나 들지는 알 수 없었고 2019년 1월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항공권은 예약하기로 했다. 스물여섯 살의 삭막한 대학생활을 견뎌내는 데에 큰 힘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항공권을 확인한 나는 그녀에게 진짜로 간다고. 각오하라고 말했다. “거짓말! 진짜로?” 그녀는 놀라면서도 현재 Tübingen에 있다고 했다. 읽는 방법을 몰라 인터넷 검색창에 복사한 것을 붙여놓은 뒤에야 그것이 ‘튀빙겐’임을 알았는데. 이 사실을 굳이 그녀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작별 인사를 건넬 타이밍을 찾던 내게, 그녀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다. ‘요즘 행복하냐고.’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행복한 것 같다고 했다. 가끔은 시를 쓰고 일기 쓰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가끔은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의 문장을 필사하기도 하면서 느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이 요즘 행복하지 못하다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힘내라고 하자니 너무 무성의한 것 같고 그 말을 제외하고 나니 해줄 말이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오늘 너의 행복에 내가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덕분에 조금은 더 행복해졌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는 계속됐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그녀에게서 외로움 같은 것을 느꼈다.

 어느덧 새벽 2시였다. 독일의 시간을 검색한 나는 그녀가 있는 곳이 저녁시간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식사는 했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점심을 너무 늦게 먹어서 저녁은 안 먹었고 대신 방금 전에 티라미수를 만들었다고 했다. 4시간을 더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데. 이왕이면 정확히 12시에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로 먹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녀가 있는 곳은 독일이었고 독일 기준으로는 아직 그녀의 생일이 아니었다. 그제야 그녀가 정말 외국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몇 시간 전에 끓인 커피가 전부 식었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게 빨리 자라고 했다.


 다음날이 되었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발급받은 여권을 펼쳐놓고 독일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아무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유럽여행을 몇 번이나 꿈꾸고 계획했지만 항상 두려움과 걱정으로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곤 했다. 그런데 통장에서 61만 원이 빠져나가고 비행기가 예약 확정된 것을 보고, 삶이 이렇게 우연처럼 흘러간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유럽행 비행기를 예약한 것은 분명 내 선택에 의한 사건이었지만 나는 그녀와의 대화에서 비롯된 이 모든 것들이 꿈속에서 벌어진 사고처럼 느껴졌다. 자고 일어나면 모두 없던 일이 될 것만 같은.

 하지만 눈을 떠도 내 비행기는 취소되지 않았다. 우연한 선택으로 인해 삶이 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있는 그대로 만끽해 보기로 했다. 마치 모든 순간을 여행하듯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프로필 사진이 꽤 예뻤나 보네.”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 대학교 동기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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