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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5. 2022

스타벅스와 최저시급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배우 박은빈이 힘들 때마다 자신에게 건다는 주문을 따라 해본다. 조금 의욕이 생긴다. 방금 막 주문을 내뱉으면서 기말 대체 과제를 제출했다. 대학원생의 방학이 시작되는 순간.

 우연히 알고리즘에 뜬 영상을 보고, 박은빈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녀는 (유튜브 영상에 나온 정보가 맞다면) 2011년 3월 수능으로 서강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11학번이라니. (학교는 다르지만) 나랑 동기라니. 심리학 전공이라니. 공통점이 많으면 없던 관심도 생기는 법. 열심히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가 나와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해서 내가 지금 공부하는 분야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친한 척이라도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유퀴즈’에 박은빈 씨가 나온 것을 보고 의욕이 생기면서 열심히 살고 싶어져 펜을 들었다. 그런데 쓸 얘기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렇듯. 잘 살아내기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심심하기도 하고 소재로 쓸 얘기가 없나 싶어 졸업한 대학교 에브리타임 앱에 들어갔는데. 얘네들은 오늘도 댓글로 서로 싸우고 있다.

 “서로 입술 깨물기에도 바쁠 나이 아닌가? 연애는 안 하고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거 보면 참 안타까워.”

 15년 지기 친구인 여자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을 듣고 충격받은 어느 초여름이 생각이 났다. 신촌의 어느 대학교 근처 술집이었는데. 낭만적인 재즈 음악이 울려퍼지는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어린 친구들이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일 점심 마라탕 먹으러 가자.”

 “다음 주 시험 끝나면 강남으로 술 마시러 갈까?”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릴 때면 스무 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나의 오랜 친구 일완이는 1~2학년 때 대학교 기숙사에 있는 패밀리마트(현 CU)에서 알바를 했다. 최저시급이었지만 저녁 8시 이후부터는 야간수당이 붙어 평균 시급은 5천 원 넘었다. 일 끝나고 3분 안에 기숙사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학교 기숙사에 있는 편의점이라 난동을 부리는 진상 손님이 거의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제일 큰 장점은 유통기한이 몇 시간 안 남은 햄버거나 김밥, 도시락 같은 것들을 전부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일완이의 알바 끝나는 시간만 되면, 나와 또 다른 친구 K는 기숙사 편의점으로 쳐들어가곤 했다. 매일 밤 세 사람은 유통기한 끝나가는 음식으로 파티를 했는데. 우리는 그 파티를 ‘폐기 파티’라고 이름 지었다.

 ‘아임 리얼’이라는 음료수가 있었다. 100% 생과일주스라서 유통기한이 짧았고 가격은 비쌌다. 2,500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임리얼이 폐기로 나오는 날이면 일완이는 “이게 내 시급 절반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우리 셋 다 자조적으로 웃었다. 다른 알바생 중에는 아임리얼이 먹고 싶어서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것을 일부러 제일 깊숙한 곳에 진열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제일 안쪽에 있던 생과일주스가 팔려나가지 못하고 유통기한에 임박하게 되니까. 그러면 폐기 처리해서 자신이 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다고 했다.     


 네이버에 2011년 최저시급을 검색해 본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2011년 최저시급은 나오질 않았다. 어렵게 발견한 숫자 4,320. 잠시 잊고 있던 정겨운 숫자를 발견한 나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커피값과 밥값이 거의 비슷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생각난 순간.

 2012년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이 3,9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는 행위에 ‘허영심’이나 ‘허세’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따라붙었다. 학교에서 종종 밤을 새우고 다음날 먹던 순댓국이 4천 원이었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9년이 지난 2021년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가격은 4,100원인 게 마냥 신기해진다. 2012년에 비해 최저시급이 1.9배 오르는 동안 커피값은 고작 200원 인상되는 마법. (정용진 부회장님이 이 글 보고 스타벅스 커피값 올릴 일은 없겠지.) 2022년에도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등록금이 450만 원 정도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 그로부터 11년 전인 2011년.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등록금은 461만 원이었다. 11년 전의 등록금이 아이러니하게도 11만 원 더 비싼 것이다. 등록금은 너무 비쌌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고민이 되던 뭔가 이상한 시절.     


 일완이는 몇 주 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충청남도에서 일하고 있다. 폐기 파티의 또 다른 멤버 K는 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입사한 뒤, 최근에는 우주로 누리호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나는 중앙대를 9년 만에 졸업한 뒤, 지금은 선생님을 꿈꾸며 임용고시를 준비 중이다. 30대가 되면 친구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많다던데. 무직자인 나는 내 친구들의 존재가 마냥 기쁘고 내 젊은 날을 함께해 준 이들에게 고마울 따름. 친구 사이에도 유통기한이 있고 어릴 적 우정이 덧없다는 말도 있지만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노력으로 지켜낼 수 있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일완이와 K에게 이 글을 보여주자 K는 말한다.

 “나는 발사체 쪽이 아니라서 누리호보다는 달탐사 위성인 다누리 위성을 쏘아올렸다고 적는 게 맞을 것 같아.”

 역시. K가 5년 전에 3:3 미팅 술자리에서 물리학 설명을 10분 넘게 하는 바람에 분위기 싸해졌다는 친구들 이야기는 분명 사실일 것이다.     


 유통기한 지난 햄버거와 도시락으로 파티를 하던 그때가 문득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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