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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4. 2022

자취의 역사

 종종 얼굴이 나오지 않는 누군가가 서울의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영상을 본다. 해당 채널 유튜버는 이 아파트는 2017년에 얼마였고 2021년에 얼마였는지. 최근 실거래 가격은 얼마였는지 설명해 주면서 돌아다니는데. 서울 아파트 시세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가늠해 볼 수 있어 도움이 됐다.

 “이 아파트는 21년 10월에 거래된 14층 실거래 가격 26억 대비 최근 22년 3월에 거래된 15층의 가격은 20억 원으로. 층수에 상관없이 6억 원. 23% 정도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17년 8월에 거래된 9층의 실거래 가격 10억 원 대비 최근 7층의 가격은 19억 원으로 90% 상승했습니다.”

 전부 이런 식이다. 2017년에는 6~10억 원이면 서울에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는데. 그때도 아파트가 너무나도 비싸게 느껴졌는데. 2021년 즈음 확인했을 때는 가격이 전부 2배 혹은 그 이상으로 올라있었다. 2022년이 끝나갈 무렵에야 20% 정도 떨어진 아파트 가격. 그러면 2017년에 아파트 산 사람 입장에서는 수익률 +80% 전후인 셈인데. +100에서 +80 된 거 가지고 아파트 가격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양천구, 마포구, 동작구, 동대문구 아파트 전부 이런 식이다. 나는 카드값이 150만 원 나온 것이 걱정되었다.     


 나는 19살에 서울로 올라온 뒤 10년 동안 서울에서 안 내려가려고 버티고 있다. 부모님은 강원도에서 1억 원 대 빌라에 살고 있는데. (요즘에는 빌라 사는 사람들을 '빌라거지'라고 조롱한다던데. 그렇게 되면 나는 '빌라거지자식'인 셈이다.) 앞으로 계속 서울에서 살아가려는 생각이 과연 현명한 생각인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지방 사람이 서울에 살면 누워만 있어도 월급이 반 토막 나는 것 같다던 고향 친구 말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 그래도 나는 잘 해왔고 앞으로도 해낼 거라고 다짐해 본다. 내 자취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1년. 중앙대학교 기숙사, 6개월 당 180만 원.

 2012년. 강원학사(지자체 운영 지역학사), 월 15만 원.

 2013~2014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월 0원.

 2016~2017년. 내발산동 공공기숙사 월 12만 원.

 2018~2019년. 백암재단 장학관, 월 0원.

 2020~2021년. 신대방삼거리역 3평 반지하 원룸, 월 29만 원.

 2022년. 투룸 아파트 행복주택, 월 22만 원.     


 대충 어림잡아 계산해 보니 서울에서 10년 거주하면서 든 주거비용은 1780만 원 정도가 나왔다. 일 년에 178만 원. 평균값으로 계산하면 월 15만 원 정도 되는 돈으로 서울에서 10년 동안 살아남은 셈이다. (거기다 2020년에는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청년 월세 지원’ 사업에 당첨되어 200만 원도 받았다.)

 누군가는 이런 내 자취의 역사를 보고 구질구질하다거나 지질하다고 했다. 유튜브로 행복주택 영상을 찍었을 때는 ‘기생충 같다’는 내용의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꿈과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매일 하루를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내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서울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지방 출신 청년들이 주인공인 짧은 소설집도 출판해 보일 테다.     


 나의 청년 임대주택 도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 독한 이야기들뿐이다. 반지하에 살면서 2년 동안 지원한 임대주택만 20곳이 넘고, 운이 좋게도 그중 3곳의 행복주택과 1곳의 역세권청년주택에 당첨이 됐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에서 동생이 어떻게 그렇게 운이 좋냐고 했는데. 나는 대화를 더 이어가기 귀찮은 마음에 공대생 코스프레를 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20곳 넘게 지원해서 한 곳도 당첨되지 않을 확률은 생각보다 낮아 동생아. 경쟁률이 20:1인 행복주택을 가정했을 때. 그리고 당첨자는 추첨으로 가려지므로 당첨 확률은 대략 5%라고 할 수 있잖아? 즉 95%의 확률로 청년주택에 당첨이 되지 않는 거겠지? 그렇다면 행복주택만 20번 지원했을 때 단 한 번도 당첨이 되지 못할 확률은 몇 %일까?”

 동생이 소름 끼친다면서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면서 거실과 TV는 내 차지가 됐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따라가서 설명해준다.

 “36%야 멍청아. 그러니까 20곳 정도 지원했을 때 64%의 확률로 하나 이상은 당첨될 거라고. 그러니까 운 좋다고 구경만 하지 말고 너도 제발 행복주택 좀 신청해 보는 게 어때?”

 (참고로 여동생은 서울에서 월세 70만 원짜리 원룸에 살고 부모님으로부터 매달 용돈도 150만 원씩 받고 있다. 물론 월세도 부모님이 내주고 있다.)     

 종종 행복주택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그거 가난한 애들만 신청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때는 무례한 줄도 모르고 실실 웃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열받는다.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얘기다. 대학생 계층으로 신청하면 부모님 소득도 함께 보기 때문에 잘 사는 집 대학생은 자격이 안 되는 게 맞다. 하지만 청년 계층으로 신청하면 부모님 말고 ‘해당 세대’ 월평균 소득만 따지기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자취방에 전입신고만 해놨으면 해당 세대 소득이 0으로 잡힌다. 부모님이 건물 10채 가진 건물주라도 행복주택 당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내가 대학교 졸업 전에 행복주택 접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였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서울 양천구 변두리에 위치해있다. 아파트 맞은편에 지어진 지 2년 된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여러 종류의 버스를 탈 수 있다. 정류장이 버스공영차고지(기점) 근처라서 자리가 늘 넉넉하다. 서울 3대 베이글 맛집 중 한 곳인 코끼리 베이글과도 가깝다. 버스로 15분 거리에 코스트코도 있다. 집에서 연세대학교 정문까지 50분 넘게 걸리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언제든 앉아서 환승할 필요 없이 학교로 쭉- 갈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거나, 꾸벅- 졸거나 포켓몬고를 켜고 버스가 잠시 정차할 때마다 포켓스탑을 돌리고. 성산대교를 건널 때 오른쪽에 보이는 63빌딩을 보는 일상이 마냥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와 냉장고를 열면 마시다 만 위스키가 여럿 남아 있다. 공항 면세점에서 구매한 잭 다니엘과 코스트코에서 3만 원대에 산 조니워커 블랙라벨까지. 13평 남짓한 공간은 내가 마음껏 취미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소중한 세상이다.


 세면대와 분리된 별도의 공간, 샤워부스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몸을 적신다. 물이 따뜻해서 좋았다.

 ‘적어도 이제 손 씻으려다 물벼락 맞을 일은 없겠구나.’

 행복주택으로 이사 온 첫날. 처음으로 행복을 피부로 느낀 순간이다. 행복주택 올 때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냉장고였다. 냉장 칸이 냉동 칸 위에 있는 냉장고를 갖고 싶었다. 반지하든 옥탑방이든 내가 살던 모든 원룸은 내 룸메이트보다 키가 작은 소형 냉장고가 있었다. 나는 출출할 때마다 쭈그려 앉거나 자세를 낮춰 냉장고 안쪽을 확인했다. 배고플 때마다 허리 숙이는 일상. 전자레인지에 데운 햇반에 도시락용 김 한 봉지. 가끔은 계란후라이를 곁들여 먹는 날이 많았다. 식사라기보다는 ‘때운다’는 표현이 적절한 한 끼를 입안에 욱여넣었다. 3년 만에 반지하에서 탈출하는 만큼. 투룸 아파트에서는 그렇께 살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냉장실이 냉동실 위에 있는 냉장고는 최소 10만 원 이상 비싸다. 그럼에도 충분히 가치 있는 지출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원룸에 있던 냉장고보다 2배는 커진 냉장고를 보면서.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여름방학 마지막 날이다. 방금 전까지는 데이팅 앱으로 남녀 주인공이 만나 원나잇하는 영화를 보았다. 섹스 칼럼 쓰는 서른셋 남자와, 연애에 지친 스물아홉 여자.

 "너 서른이 왜 서른인 줄 알아?“

 여자의 질문에 남자가 왜?라고 묻자, 여자는 대답한다.

 "서! 얼른!“

 여자의 고개는 이미 남자의 허리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댓글 창에 스물과 마흔에 관한 웃기는 농담들이 줄지어 달려 있었다.

 ‘역시 나는 행복해.’

 위스키에 진저 비어를 섞은 하이볼의 달콤씁쓸함과 푹신한 베이글의 짭쪼름한 맛이 나의 쓸쓸함을 달래주었다.


 거실에 딸린 ‘ㄱ’자형 부엌을 보면서 언젠가 분명 ‘ㄷ’자형 부엌을 갖춘 화장실 2개, 방 3개 아파트로 이사 가는 꿈을 꾸었다. 안타깝게도 3~4년 뒤에 10억은커녕 1~2억 되는 돈조차 모을 수 없지만. 임용시험 합격을 하고 2024년부터 월 300만 원이 되지 않는 교사 월급으로 알뜰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현재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성공이자 가장 큰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 전후로도 계속 행복주택을 신청하고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지금도 그러고 있다. 신혼부부 행복주택은 미혼에 당첨돼도 당첨 후 입주 전까지만 결혼하면 입주 가능하니까. 서울 아파트 전셋값만 5억이 넘는 세상에서 보증금 2~3억 정도에 머물 수 있는 집이 생기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 모든 과정을 해내고싶다.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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