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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4. 2022

양육비 계산기

 “우리 이거 한 번 해볼까?”

 늦은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둘 다 피곤해져 소파에 기대 흐느적거리고 있을 즈음이었다. 대학 동기가 공유해 준 ‘요람에서 대학까지: 2019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를 룸메이트에게 보여주었다. 임신 후부터 태어난 성인이 될 때까지 부담해야 할 금액을 계산해 주는 사이트였다. 소화될 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있었으니까. 둘은 그러기로 했다.     


 질문0. 가구 월소득 입력하기.  230 원과 룸메이트 370 . 내가 용고시를 합격해서 교사 1 차가 되었을 때를 가정해서. 600 원을 입력했다.

 “히익. 230만 원?”

 룸메이트가 장난스럽게 기겁하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교육대학원에 군대 가있던 기간까지 합해서 12호봉(12 맞는지 확실하지는 않음)으로 시작하니까 이 정도인 거야.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좀 작은 목소리로 ‘12호봉’을 강조하면서. 느릿느릿 대답했다.     


 출산 전 필수 검진 50만 원. 기형아 검사의 경우, 니프티 검사가 비용 60만 원에 정확도 95%였고 양수검사는 비용 80만 원에 정확도 검사 99.9%였다. 그리고 기형아 기본 검사는 5만 원에 정확도는 적혀있지 않았다.

 ‘당연히 기본 검사, 니프티 검사 말고 양수검사로 고르겠지.’ 생각과 달리 룸메이트는 니프티를 선택했다.

 “아니야. 이왕 하는 거 정확도 제일 높은 걸로 해야지.”

 나는 니프티 검사 선택을 취소하고 선택을 양수검사로 바꿨다.     


 유모차와 카시트, 아기 띠 등 육아 필수템. 선택지는 3종류였는데 고급형이 390만 원. 실속형은 50만 원이었다. 제일 싼 게 50만 원?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룸메이트가 140만 원짜리 절충형을 터치하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놓였다. 육아용품을 선택하자, 아기가 있는 집에서 많이 쓰는 가전제품들 목록이 추가되었다. ‘복수 선택 가능.’ 나는 아기용 세탁기와 젖병 소독기를 터치했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갑자기 룸메이트가 내 팔을 붙잡는다. ‘동작 그만.’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룸메이트가 내게 묻는다.

 “공기청정기 선택 안 해?”

 나는 공기청정기가 무슨 40만 원이나 하냐고, 이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는데. 룸메이트가 내게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너도 집에 공기청정기 있잖아요. 근데 애기는?”

 나는 변명의 여지없이 공기청정기를 추가하였다.

 다음은 출산준비물. 분명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는데. 젖병솔, 겉싸개, 역류방지쿠선, 태열크림, 수유브라, 공갈젖꼭지 등. 생전 처음 보는 제품 투성이였다. 내가 기본(필수품)만 고르고 넘어가려고 하자 이번에도 룸메이트가 내 손목을 붙잡는다.

 “아기 관찰 모니터는 꼭 필요해.”

 나는 말없이 1번+2번+3번을 선택했다. 가격은 127만 8천 원.     

 다음은 태아보험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부터 20년(240개월) 간 매월 보험료를 지불하면 되는 식이었다. 선택지는 3가지. 가입 안 함, 30세 만기(월 5만 원), 100세 만기(월 10만 원). 룸메이트가 100세 만기를 터치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니. 가입 안 함도 아니고 30세 만기 있잖아. 나이 서른이면 지 인생 본인이 책임져야지. 30살이면 당연히 돈 벌고 있을 거 아니야.”

 말하면서 순간 내 나이가 서른이고 아직 백수라는 사실이 생각이 나 민망해졌다. 다행히 그 사실이 룸메이트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100세까지 해줬거든? 우리 엄마는 지금도 내 보험금 내주고 있어요. 나도 우리 애한테 다 해주고 싶어.”

 내가 다시 반박하려는 순간 룸메이트가 다시 이야기했다.

 “이렇게 의견 충돌이 가득한데. 애 낳으면 안 되겠네.”

 결국 태아보험은 100세 만기가 선택되었다.     


 두둥. 다음 차례는 산후조리원이었다. 산후조리 기간 2주를 기준으로 최고급이 1천만 원. 중간급이 350만 원. 산후조리원 없이 산후조리 도우미를 쓰는 것이 100만 원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200만 원짜리 기본급 가느니 차라리 집에서 산후조리 도우미 두 분 쓰는 게 어때?”

 “뭐라는 거야. 산후조리원 안 가는 게 이상한 거야. 나 산후조리 받는 돈이 아까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손을 떠는 시늉을 하면서 최고급을 선택했다. 룸메이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하면서 350만 원 하는 중간급을 고를 걸 그랬나? 몇 달 전 출산한 대학 동기가 산후조리원 서비스가 별로였는지. 산후조리원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고 후기를 들려준 것이 생각이 났다. 산후조리원이라는 것 자체가 전 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어본 것 같은데. 예식장도 그렇고 산후조리원도 그렇고. 종종 헉. 소리 나는 가격을 볼 때면 장사꾼들이 새 출발 하는 신혼부부들 뜯어먹을 생각밖에 안 하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이러니까 출산율이 압도적인 세계 꼴지지.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댓글 창에 ‘2098년. 건국 150년 만에 대한민국 서버를 종료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비아냥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이런 얘길 책에 담으면 내 첫 에세이집이 별점 테러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졌다. 그래도 나는 이 문장들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2주 보살핌에 1천만 원은 너무 심하다. 산후조리원이 이렇게 돈을 버는구나.”

 룸메이트의 말에 조금은 속이 후련해진다.     


 산후조리원 선택을 끝내자, 이번에는 태교여행을 선택하는 항목이 나타났다. 미주 및 유럽은 500만 원. 동남아시아는 200만 원. 룸메이트가 태교여행은 하와이나 괌으로 많이 간다면서 500만 원짜리를 선택했다.

 “아니야. 하와이는 신혼여행지 어때. 괌은 여기. 동남아시아 쪽이야.”

 룸메이트가 괌은 미국령인데 뭔 소리냐고 물었다.

 “아니 알지. 미국령인거. 네가 고른 선택지는 미국령이 아니라 미주잖아. 괌은 미국령이지만 위치는 동남아시아에 있어.”

 나는 룸메이트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선택을 동남아시아로 바꾼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 다음 버튼을 누르는 순간. 룸메이트가 뭐라고 반박하려는데 갑자기 좋은 방법이 생각이 났다.

 “괌 가는 대신 300만 원어치 쇼핑하면 되지.”

 그러자 룸메이트는 아무 말 없이 다음 질문을 읽기 시작했다.     


 다음은 출산. 자연분만은 20만 원. 제왕절개는 100만 원이었다. 무조건 제왕절개를 할 거라는 룸메이트의 말에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한 번 제왕절개하면 그 뒤로는 자연분만이 불가능하대.”

 그러자 룸메이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애는 하나만 나을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엄마도 나 낳을 때 제왕절개했는데 아직까지 배에 흉터가 심하시대.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자연분만을 꼭 해야 할 이유를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뭔가 애는 당연히 자연분만해야 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애를 낳는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룸메이트는 제왕절개를 선택한 뒤 다음으로 넘어갔다. 다음은 병원. 1인실과 다인실 중 양자택일의 시간. 본능적으로 빠르고 또 빠르게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아니 당연히 1인실이지. 다인실 시끄러워서 공주님 잠 못 자면 어떡해.”

 룸메이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합산 결과 임신에서 출생까지만 2100만 원이었다. 그리고 출생에서 첫돌까지 비용이 1400만 원이 나온 것을 보면서 나는, 출생까지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까지가 8300만 원. 나는 깜짝 놀라 룸메이트에게 묻는다.

 “우리 영어유치원 뺀 거 맞지?”

 “당연히 추가했지. 우리 애 뒤처지면 어떡할 건데?”

 “아니 무슨 유치원이 한 달에 150만 원이야? 차라리 아이 돌보미를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으로 하는 게 낫겠다. 아니면 내가 육아 휴직하고 영어 가르칠게.”

 “나 아는 언니 돌보미 함부로 썼다가 금반지 전부 도난당했대. 그리고 외국인 채용했다가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그리고 너 육아휴직 얼마나 쓸 수 있는데.”

 “애 1명에 3년씩. 분할로 쓸 수도 있어. 2명 낳으면 최대 6년이야. 교사 월급이랑 영어유치원 비용 얼마 차이도 안 나는데. 차라리 내가 집에서 책 쓰면서 아기들 영어 잘 가르칠게.”

 나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3년씩이나 쓸 수 있는 점을 어필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룸메이트가 내게 묻는다.

 “너 영어 잘해? 취업 준비할 때 오픽 2번 연속 IM3만 나왔잖아.”

 참고로 룸메이트는 오픽 첫 시험에서 IH를 받았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 있다고 했다.

 “그럼 지금 영어로 얘기해 봐.”

 “Um.. 아이 럽 우유.”

 룸메이트는 허탈한 듯 웃으면서 영어유치원은 꼭 보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5억 5천만 원이었다. 총합계는 6억 7천만 원을 가리키고 있었다. 7억 원에 가까운 전체 지출액을 보여주면서 양육비 계산기는 묻는다.

 “그럼에도 낳으시겠습니까.”

 두 사람 다 ‘낳겠다’는 선택을 했다.

 서울 아파트 값이 비현실적이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양육비 7억원이 감당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족에게는 아이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니까.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면 애 3명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 그치?”

 내 말에 룸메이트는 영관이는 잘 할 수 있다고 대답해줬다.


 결혼을 하고. 그후 몇 년이 지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7~8년 정도는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그 7년 동안 방 3개 화장실 2개 딸린 신축 아파트 행복주택에 살면서 in서울 아파트 신혼부부 특공에 계속 도전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꼭 당첨될 거다. 나는 다만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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