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관 Oct 14. 2022

절약이 오히려 과소비가 되는 과정

 집에 물이 없어 동네 마트에 갔다. 아이시스 700원. 삼다수는 1,050원. 풀무원샘물 500원. 그리고 지리산 맑은샘물 480원. 지리산 맑은샘물은 안 보이고 그 자리에 DMZ맑은샘물이 있어 같은 거겠지 싶어 3병을 집어 들었다. 결제금액 2,070원.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풀무원샘물 골랐지.’ 풀무원샘물로 바꿔 사려다 귀찮아져서 그냥 구매해버렸다. 월세 22만 원. 관리비 9만 원. 보증금 대출 이자 25만 원. 건강보험 2만 원. 인터넷+핸드폰 요금 7만 원. 교통비 6만 원. 합계 71만 원. 서울에서 자취하는 데에 고정지출만 71만 원이다. 서울 사는 사람 치고 되게 적은 돈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이 30살 넘고 학교 다니는 백수로서 고정적인 소득이 없는 입장에서는 71만 원도 많이 부담스럽다.


 20,30 사이에 골프가 한창 유행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너도 나도 골프 장비를 맞출 즈음이었다. 그들이 인스타그램에 골프 치는 사진을 올리는 동안 나는 돈이 부족해   가까이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 여름이나 새해가 되면 카카오헤어샵에서 5  이상 시술에   있는 5  쿠폰을 뿌리곤 했는데. 나는 쿠폰 사용 마감일에 예약 가능한 마지막 날짜로 파마를 예약했다. 예약은 최대 3번까지 변경이 가능해서 시술일 당일에 2주씩 예약을 미루는 짓을 3번이나 반복할  있었다. 사용 마감일이 7월인 쿠폰을 써서 9  개강 전날 파마를 해내는 기적.


 3 반지하 원룸에 살던 28 때는 미용실 비용이 아까워 5 원대 바리깡을 구매한 적도 있. 나는 머리카락이 워낙 발기모(직모)라서 옆머리를 4mm 밀어도  달만 지나면 옆머리가 중력을 거스르고 양팔 벌리듯 옆으로 자란다. 그게 되게 신경 쓰였다. ‘바리깡으로 옆에만 밀어줘도 미용실  달에 1  .  달에 2번으로 줄일  있지 않을까.’ 커트 비용이 15,000원이니까 바리깡 5번만 사용하면 본전 뽑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전식 전문가용 헤어 클리퍼! 초정밀 티타늄 고정 날과 특수 세라믹 이동식 날의 이중구조! 나는 광고 문구에 현혹되어 그렇게 충동구매를 했다. 그리고 지금  바리깡은 고작 2~3 사용된  우리  창고 어딘가에 처박혀있다. 지금이라도 팔아? 생각난 김에 당근마켓에 검색해 보니 우리 동네에서는 2만원 정도에 같은 제품이 거래되고 있었다. 고민이 되지만 반지하에서 아파트 이사   챙겨    되는 가전제품이다. ‘언젠가  일이 있겠지하고  내버려 두기로 한다.


 행복주택에 이사 온 뒤로 7월 중순까지 에어컨 없이 버텼다. 에어컨을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면 기본 60만 원이 넘어가고, 온라인은 설명에 안 나와있던 이런저런 설치비로 바가지를 쓴다는 말이 너무 많았다. 겁에 질린 나는 2만 원대 선풍기 2대와 20만 원이 조금 넘는 제습기를 구매했다.

 ‘습기만 잡아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이 어리석음을 깨닫기까지는 2주도 안 걸렸다.


 군대 생활을 함께 한 선임 둘이 집들이 겸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나는 코스트코에서 3만 원 대에 구매한 조니워커 블랙라벨에 깔라만씨 원액 찔끔. 그리고 진저비어를 들이부어 만든 하이볼을 대접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꼭 이자카야에서 파는 것 같아. 네가 요즘 매일 술 마신다고 하는 이유 알 것 같아.”

 선임 둘은 배달시킨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꼭 집에서 해준 밥처럼 맛있다는 감탄을 연발했는데. 문득 선임 하나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음식 맛있다고 할 때 집에서 해준 건 밖에서 파는 것 같다고 하고, 밖에서 파는 건 집밥 먹는 것 같다고 칭찬하지? 이거 완전 돌려막기 아니냐?”

 그의 물음에 다른 선임 한 명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영관아. 이거 꼭 다음에 책 낼 때 꼭 써라. 되게 웃긴다.”라고 말해주었다.


 집들이를 위해 거실에는 선풍기를. 부엌 싱크대에는 꽝꽝 얼린 2L짜리 생수통을 올려놓았다. 그러면 싱크대의 얼린 생수통에 이슬이 맺힌다. ‘물이 녹는 만큼 공기는 차가워지겠지.’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살던 반지하 3평 원룸에서나 가능했던 방법이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남서향의 지상층 13평 아파트였고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살이 저녁 7시까지 거실의 암막 커튼을 뜨끈하게 달궈놓았다. 나는 제습기를 틀었다. 한 여름에 제습기 전원 버튼을 누르면 1~2시간 만에 물이 한 바가지씩 고인다. 나는 집들이하는 동안 몇 번이나 그것을 부엌 싱크대에 촤악- 쏟아부었다. 싱크대에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다. 문제는 제습기 뒷면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였다. 나 혼자 있을 때는 버틸만했는데. 남자 셋이 거실에 둘러앉아있으니까 거실 온도는 30도까지 올라갔다. 제습기를 끄자니 너무 습하고, 그렇다고 켜놓자니 거실이 더 더워진다. 결국 선임 둘은 집들이 온 지 4시간 만에 땀에 절은 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집들이 다음날. 나는 결국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다.

 “에어컨 없이 버텨보려고 했는데. 집 실내 온도가 31도까지 올라가네요.”

 그러자 40만 원이 내 통장으로 입금됐다. 1분 뒤 문자가 온다. ‘모자란 돈은 너가 알아서 해.’


 돈으로 시간을 사는 부자들이 부러워지는 순간. 부자들은 살까말까 고민할 필요 없이 매번 그냥 사버리면 되니까. 아끼기 위해 필사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까. 반면 가난한 사람은 최저가를 찾기 위해 에너지를 쓴다. 최저가를 찾아놓고도 구매할지 말지 고민하는 데에 또 시간을 쓴다. 가난한 청년은 돈 쓸 일이 생길 때마다 절약하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리지만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를 손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소비를 불러올 때도 은근 많았다. 에어컨 구매할 돈 아끼려고 선풍기 2대와 20만 원대 제습기를 구매해놓고 결국 에어컨까지 구매해버린 것처럼.

 마트에서 1만 원 쿠폰을 쓰기 위해 장바구니에 5만 원어치를 채운다든지, 택시비가 아까워 커다란 중고 모니터를 들고 버스 안에서 앉지 못한 채 1시간 동안 서서 집으로 돌아온다든지. 자기 딴에는 ‘절약을 위한 소비’라고 합리화하지만 결국 절약하고자 했던 마음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돈 낭비로 이어질 때도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고작 몇 천 원을 아끼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그것이 진짜 절약으로 이어지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 그때의 그 공허함. 그것은 백화점에서 본 50만원 짜리 패딩이 마음에 들어 고민 끝에 백화점으로 돌아갔다가 근처에 디자인이 얼추 비슷해보이는 10만원 대 패딩이 있어, 그것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온 날 밤 느낀 감정과 많이 닮아있었다.


 에어컨 구매 후 한 달 뒤. 집으로 돌아오니 나갈 때 안 보이던 관리비 고지서가 우편함에 꽂혀있었다. 이번 달 납부금액은 88,940원. 7월 관리비치고 나쁘지 않다. 전기 사용량 165kWh. 에어컨이 없던 6월에 비해 전기 사용량이 고작 63kWh 올라간 것을 보고 안도했다.

 ‘역시 인버터 에어컨 최고. 에어컨 조금 더 팡팡 틀어놔도 되겠구나.’

 같은 아파트 평균보다 29% 전기 사용량이 적은 것을 보고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이전 01화 A의 삶과 F의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