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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관 Oct 17. 2022

장학금 5091만원 받은 선배

 술자리에서 맥락 없이 등록금 얘기가 나왔다. 친구의 시험 합격을 축하해 주던 자리였다. 2011년 한 학기 등록금은 462만 원. 2022년 한 학기 등록금은 451만 원. 액수를 확인하자 동기가 말한다.

 “당했네. 우린 개호구였어.”

 중앙대학교 계약직 교직원 경력으로 지금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행정조교로 근로 중인 나는 한 마디 덧붙인다.

 “심지어 소득분위 8분위가 받는 장학금은 33만 원에서 175만 원으로 늘었다더라.”

 최저시급이 9,160원일 때보다 최저시급이 4,320원이던 때 등록금이 더 비쌌다니. 이건 좀 너무하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친구 한 명이 끼어들어 2010년대를 포장한다.

 “그래도 우리 때 대학생활이 요즘 대학생들보다 훨씬 낭만적이었잖아.”

 “그래. 너 빅딜(웹툰 ‘외모지상주의’에 나오는 크루 중 한 곳) 가라.”     


 대학생 때 내가 받은 장학금을 계산해 본다. 11-1학기 596만 원. 11-2학기 614만 원. / 12-1학기 729만 원. 12-2학기 575만 원. / 16-2학기 601만 원. / 17-1학기 250만 원. 17-2학기 298만 원. / 18-1학기 1045만 원. 18-2학기 183만 원. / 그리고 19-2학기 200만 원.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총 5091만 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학금을 5000만 원 넘게 받았으면서도 졸업하는 시점에 남은 학자금 대출금이 (생활비 대출 포함) 900만 원 남아있었다.      


 장학금액을 적고 나니 내용을 더 이어나가는 일이 두려워진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뒤에 포장되어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는 말처럼 내 성공을 떠들어대는 게 너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나도 힘든 세상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아등바등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 나 같이 권위없는 평범한 사람이 조언이랍시고 글 썼다가는 여기저기서 발길질이 날아올 것만 같다. 아니. 솔직히 이미 한 번 겪어봤다.

 소득분위 9분위에 졸업학점 3.14임에도 장학금 5091만 원 받은 비결과 유용한 정보들을 정리해 졸업한 학교 에브리타임에 올린 적이 있다. 좋아요를 60여 개 받고 스크랩 수는 150을 넘은 것을 보고 나도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댓글이었다. 긍정적인 댓글보다는 날카롭고 부정적인 댓글이 더 많았다. 몇 시간 지나 확인했을 때는 댓글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가난이 자랑인가. 장학금 받는 거 쪽팔린 줄 모르고 떠들고 있네.”

 “결국 꼼수네. 그렇게 가난한 것도 아니면서 존나 가난한 척하고.”

 “한 사람이 등록금 초과해서 저렇게 장학금 여러 개 독차지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음.”

 “다른 건 모르겠고 이한열 장학금을 저 분이 타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걍 운 겁나 좋은 사람이 나 이런 장학금 탔다는 썰 보는 것 같음.”

 “장학금 자랑질로밖에 안 보임..”     


 더 수위가 높은 댓글들은 학교 망신인 것 같아 차마 이 책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역시 명문 중앙대학교. 의혈중앙 후배님들 사랑합니다. 그 와중에 옹호하는 댓글도 몇 개 있어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차상위 계층인데 저도 군 전역하고 복학하면 외부 장학금 많이 알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 선배가 받은 거 대부분 외부 장학금이네. 저런 열등감 찌든 댓글 다는 놈들 때문에 학교에 정보 공유가 안 되는 거임.”

 “열폭해서 비꼬는 댓글 엄청 많네. 찾아보니까 전부 중복수혜 가능한 장학금이구만.”

 “코로나 때문에 개념 없어 보이는 애들 더 많아진 기분.”

 “아니 있는 제도를 이용한 건데 저 사람을 왜 욕함? 배알 꼴리면 제도를 욕해야지.”


 나는 후배들이 열정적으로 싸우는 현장을 룸메이트에게 보여주었다.

 “우와 심하네. 나는 에브리타임 왜 이렇게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말하는지 모르겠어. 오빠가 후배들에게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쓴 건데.”

 “그러게. 나도 이렇게까지 악에 받친 것처럼 악플 달 일인가 싶다. 다신 여기에 조언하는 글 쓰지 말아야지.”

 “그냥 이 글도 삭제해버려.”

 나는 결국 장학금 글을 내렸다.     


 인서울 상위권 대학 7곳의 국가장학금 '신청자'의 절반 가량이 9~10분위로서 부모님이 상위 20% 안에 드는 고소득자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상위구간(9·10분위) 학생들은 국가장학금을 지원받지 못함을 고려했을 때 잘 사는 집 학생들 중 상당수가 국가 장학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 가능하다. (보통 1학년 1학기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했다가 9~10분위가 뜨면, 그 친구들 대부분이 1학년 2학기부터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는다. 못 받을 거 아니까.) 이는 명문대학의 고소득자 자녀 비율이 50%를 훨씬 웃돌 것임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국가장학금 시즌 때마다 대학교 커뮤니티에서는 9~10분위 학생들과 그 외의 학생들이 서로를 헐뜯거나 조롱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억울할 수도 있지. 아니 분명 억울할 거야.’

 10분위 내에서의 하위 10%와 상위 10%의 격차는 1분위와 8~9분위의 격차만큼이나 크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고작 은수저인데 왜 금수저, 다이아수저들이랑 똑같이 10원도 못 받는 거지?”

 이런 느낌이랄까. 애매하게 잘 사는 집 대학생 입장에서는 박탈감이 클 거라고. 나는 그렇게 이해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9분위에 학점도 낮은 내가 40여 종류의 장학금을 신청해 그중 20여 번 장학금을 받은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면 ‘10분위’임에도 충분히 다양한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하는 친구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 방법이 궁금하다면 유튜브 채널 ‘땡관스러운 날’에 구독, 좋아요 누르고 유튜브 영상에 댓글 남겨주세요^_^)    

 

 가난한 대학생들은 돈도 시간도 부족하다. 특히 물질적 가난보다도 정신적인 빈곤은 삶을 빠르게 갉아먹는다. 문제는 갉아먹히고 있는 자신이 그 사실을 인지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정신을 반쯤 내려놓은 채 자극적인 쇼츠 영상을 보거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시간을 녹이는 일상. 스크롤을 슥-슥- 올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포장된 행복을 눈으로 소비하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여러분.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노력 수준이 낮고 능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행위들을 할 때. 노동을 하는 것보다도 행복도가 낮아진다고 하더라고요. SNS가 대표적인 그런 행위인데요. 그러니까 몸이 조금 귀찮더라도 학교나 회사에 책 한 권 챙겨가서 딱 10페이지만 읽어주시면 안 될까요? 물질적 가난에서 당장 벗어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정신적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는 당신의 작은 성취를 응원합니다.”  


 우연히라도 이 책을 펼쳐든 당신. 무조건 성공할 거다. 돈 많이 벌어라. 로또 1등에 확 당첨돼버려라. 20억이 부담스럽다면 로또 말고 연금복권 1등 돼버려라. 달마다 700만 원씩 통장에 입금돼버려라. 나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우습지만 커피 한 잔 값으로 한 주 동안 기대감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복권 사는 돈 5천 원은 충분히 제값을 다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1년에 한두 번씩 4등과 3등에 당첨되었던 것처럼. 복권도 꾸준히 하다보면 정말 기분 좋은 날이 1~2년에 한 번 쯤은 생기지 않을까.


 아무튼.

 건강보험료만 매달 100만 원 넘게 내고 있을 (건강보험료를 100만원 넘게 낼 만큼 많은 돈을 벌고 있을) 당신의 20년 후 멋진 미래를, 제가 미리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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