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아까 선생님이 자기소개할 때 너무 떨려서 정말 해주고 싶었던 얘기를 못했어.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해볼게.”
교생실습 첫 종례시간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전달사항을 모두 전한 뒤. 내게도 학생들에게 전달사항이 있다면 이야기 하라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교생이긴 하지만 교사로서 첫 종례를 하게 된 순간. 나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학생들 앞에서 자기소개할 때 이야기하지 못한 말을 전하기로 했다.
“혹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담임 선생님이었던 분들 이름 전부 기억하는 학생 있나요? (생각보다 많아서 당황스러웠다.) 어우. 생각보다 많네요. 제가 교생실습 나오기 전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담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해 보려고 했는데. 몇 분 빼고는 기억이 잘 안 났어요. 아마 여러분들도 그럴 겁니다. 4주라는 시간이 되게 빨라요. 그래서 몇 달 지나면 제 이름조차 기억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상담교육 전공이라 선생님이 되어도 담임을 맡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여러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임을 맡는 학생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여러분들을 잊지 못할 거예요. 한성고등학교 2학년 7반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두 번째 자기소개가 끝나자 학생들이 있는 힘껏 박수를 쳐주었다. 교실과 복도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 시간이 너무나도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육학과 심리학 전공자라면 누구나 들어본 적 있는 실험 한 가지가 있다. 학생들의 성취도에 관한 실험이다. 반 담당교사(담임교사)에게 이 아이들이 잠재적 학업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이라고 임의로 몇 명 뽑아 알려주면. 학기가 끝났을 때. 학년이 끝났을 때. 그 학생들은 실제로 학업성취도에서 향상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아무 학생이나 골라서 알려준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다른 학급에서도 실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실험 당시 담임교사가 저 학생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선을 두지 않았을까.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이 관심을 주고, 칭찬해주고, 사소한 성취해도 더 많이 격려해주지 않았을까.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학생 때 전교 1~2등과 전교 꼴찌를 모두 해본 사람으로서, 교사의 관심과 정서적 지지가 학생이 학교생활을 잘 해내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교사들로부터 관심받고 사랑받는 학생들은 지지와 격려의 힘으로 더 수월하게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지만. 선생님들로부터 외면받는 학생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멈춰있을 뿐이다. 성적이 됐든. 교우관계가 됐든. 학교에서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정말 외로운 일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분. 대학교는 1교시를 9시에 시작합니다.”
그러자 학생들 전부 9시 수업인데 지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면서 자신만만해했다.
“대학교는 16주 수업 중 3번까지는 결석해도 F를 받지 않아요. 공대나 자연대 같은 이과 쪽은 중간, 기말 성적만 좋으면 결석 3번 하고도 A+받는 학생들도 많고요.”
대학생은 본인이 시간표를 짠다든지. 그래서 시간표에 쉬는 요일(공강일)을 만들 수 있다든지. 일주일 동안 수업 듣는 시간이 보통 20시간이 안 된다든지. 이런 당연한 이야기들을 학생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나는 그런 얘기들마저 흥미로워하며 들어주는 학생들에게 마냥 고마웠다.
교생실습 1주차. 사실 우리 반 학생들 절반이 8시 5분이 돼서야 비로소 교실에 도착했다. 아침조회 시작 시간이 8시인데 8시 5분에 올라오라던 담임선생님 말씀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아침 8시에 올라가 보면 도착해있는 학생들이 7명이 채 되지 않는다.
“얘들아. 너희 지금까지 학교 11년 다니면서 선생님들이 지각하는 거 본 적 있어?”
먼저(?) 도착해있는 반 아이들에게 묻자,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선생님들도 사실 지각 엄청 많이 한다. 너희들한테 들킬 일이 없어서 그런 거야. 선생님들 출근 시간은 7시 40분이거든. 너희들처럼 8시 출근이었으면 아침조회 가끔씩 못 들어오는 선생님도 분명히 있을 거야.”
그렇게 비밀 얘기를 하듯 어른들의 세상을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어쩌면 내 얘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학교로 출근하기 위해 나는 1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 잔 사려면 새벽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나는 거실에는 아이패드로 알람 3개를 맞춰놓고 침실에는 공기계를 포함한 핸드폰 2개로 알람을 3개씩 맞춰놓았다. 그래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매일 7시 30분에 학교 정문에 도착할 때면. 오늘도 출근을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감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9시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이 너무 힘들어서 결국 D+ 받은 적이 있다는 얘기와 함께 요즘 출근을 해냄으로써 느끼는 성취감을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매일 책임감 있게 제시간에 출석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그런 일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격려해주고 싶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생 때 선생님으로부터 지지 받거나 칭찬받아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은 살아가는 일조차 너무 힘들어 보였다. 기댈 곳이 없었다. 의지할 사람 단 한 명 없던 고등학생 시절 때문일까. 공부 잘하는 친구들, 반장, 부반장인 친구들, 학교생활 알아서 잘 하고 있는 친구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게 더 많은 시선이 갔다. 학생 상담 시간에 “너 고등학교 입학하고 선생님한테 칭찬 몇 번이나 받아봤어?”라고 물어보면. 아직 한 번도 칭찬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대답이 3명 중 1명꼴로 돌아왔다. “애썼다. 너 정말 학교에서 애쓰고 있구나.” 이것이 교생 선생님으로서 인생 후배이자 학생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였다. 이야기를 나눠야 할 학생은 너무 많았고 내게 주어진 교생실습 기간은 고작 4주였으니까.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이 내가 교생실습을 하는 동안 스스로 작은 성취를 해내고 많은 지지와 칭찬을 받길 바랐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조회시간마다 우리 반 학생들이 출석을 해낸 것을 칭찬했다. 비가 심하게 와도, 버스나 지하철이 멈춰도, 차가 많이 밀려도 기꺼이 오전 9시 전에 출근을 해내는 어른들. 3년 내내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오전 8시 전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있는 고등학생들. 그들 모두 초능력에 가까운 성실함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니까.
교생 2주차. 담임 선생님이 코로나에 걸렸다. 그러자 부장 선생님은 “많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네.”라고 하실 뿐이었다. 갑자기 양 옆반 선생님들이 담임 선생님 업무를 알려주신다. 나는 그렇게 졸지에 진짜 담임이 되었다.
“8시 59초도 8시야. 우린 할 수 있어!”
나는 건물 1층으로 들어오고 있는 우리 반 학생에 교실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8시 40초.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친구를 마지막으로 2학년 7반 학생들 전부 제시간에 출석하는 것을 성공해냈다.
“얘들아. 오늘도 우리가 다 같이 해냈다. 서로한테 박수 한 번씩 쳐주자.”
너의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작은 성공을 해낸 거라고. 나는 출석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나중에 내가 없어도 매일 아침 학교에 오면서 출석을 해냈다고. 성취감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빠르게 4주가 지났다. 나는 교생실습을 함께 나간 선생님들 중 유일하게 100점을 받았다.
공부하다 힘든 날에는 학생 19명의 이름을 외워본다. 잊지 않겠다는 혼자 만의 약속을. 나는 아직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스무 살이 되면 꼭 술을 사달라던 아이들에게, 진짜 선생님이 되어 꼭 사주겠다고 대답했는데. 나는 그 꿈을 꼭 이루고 싶다.
“빨리 합격해서 아이들 만나러 가야지.”
이렇게 혼잣말을 하면서.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