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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김에 Sep 30. 2020

살아가고 있다.

비워낸다.

내가 제일 잘하일중에 하나가 정리&버리기이다. 

미니멀은 아니지만 집을 꽉꽉 채우는 것은 싫어한다. 최근 2~3년 동안 입지 않았던 옷이나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은 버리는 게  철칙이라면 철칙이었다.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에 쌓아 두기만 하면 집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요즘 '정리'라는 키워드로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사실 그 프로를 보면서 제일 궁금한 건 요즘 인테리어 스타일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항상 정리라는 것을 통해 마음속 무언가를 비워내기도 하고 얻기도 하는 게스트들을 보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리를 못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힘들게 구했다, 하나밖에 없다, 쌓이기 시작하니까 손을 댈 수가 없다, 소중한 것이다, 추억이 깃들어 있다. 등등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결국엔 정리한다. 왜냐하면 집은 이미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집에 사는    물건들 속에 내가 얹혀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집은  내가 편히 쉬기 위해 있는 것이지 소중하고 중요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해 쌓아 두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온 작품들을 처음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뒀다가 나중엔 상자에 넣어 창고에 넣어 뒀었다. 그러나 그런 작품이 한 개 두 개 쌓이다 십여 개가 넘어가자 버리자 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보면 상처 받을까 몰래 버렸다. 그러나 사진을 찍어뒀다. 우리 아이가 이런 걸 만들었었지 하며 두고두고 볼 수 있으니 사진으로 라도 남기고 싶었다. (나도 아이들이 처음 글씨 쓴 종이나 처음 그린 그림 혹은 잘 그린 그림 등은 소중해서 버리기 힘든 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년생을 키우는 내겐 한번씩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는데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는 터라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작품도 비슷하거나 똑같았다. 어느 날 동생이 만들어 온 작품을 보더니 자기도 만들었었다며 자기건 어디 있냐고 첫째가 물었다. 급하게 찍어뒀던 사진을 찾아 보여주고 물건을 쌓아 둘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사진은 꼭 잘 가지고 있겠노라 약속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도 아이들이 있는 집이 나왔는데 소중히 간직하던 아이 그림을 사진으로 남기고 정리하는 걸 보았다. 그걸 보았을 때 '그렇지! 역시 내가 정리를 잘하고 있었구나.' 하며  뿌듯한 느낌과 함께 우쭐해졌다. 

정리라는 게 별거 아니지만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살면서 어디든 정리가 필요하다. 잘 비워내고 다시 잘 채우는 일은 그렇게 우리를 또 살아가게 한다.


[둘째가 그린 소중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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