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른자 찬양론자의 노른자 간장절임
누군가를 위해 달걀을 삶거나 데치거나 부칠 때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은 바로 노른자의 상태다.
고작해야 무게 50g인 달걀 속에서 달랑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하는 노른자. 날달걀부터 시작해서 회색빛이 돌도록 하염없이 익힌 과완숙달걀에 이르기까지 달걀의 질감 변화는 워낙 스펙트럼이 넓지만, 그중에서도 노른자의 태세 전환은 무서울 정도다. 날달걀에서 촉촉한 반숙 상태까지는 어디에 얹어도 스며들고 퍼지면서 어우러진다. 이 시점 이후부터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니, 이렇게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를 굳이 퍽퍽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완숙 애호가에게는 미안하지만, 노른자의 녹진한 유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과조리한 노른자를 줄 바에는 차라리 탱글탱글해진 흰자만 전해달라. 과조리한 노른자의 장점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있으니까 그대로 들어내기 쉽다는 것뿐이다. 삶은 달걀을 줄 거라면 찬물에 넣어서 뚜껑을 닫고 팔팔 끓는 순간 불을 끄고 정확히 8분, 달걀 프라이를 할 거라면 차라리 센 불에 앞뒤로 부쳐서 가장자리에 자글자글한 흰자 레이스가 생길지언정 노른자의 목숨만은 살려줬으면 좋겠다.
노른자만, 혹은 흰자보다 노른자를 더 많이 넣어야 하는 요리들의 특징은 주로 노른자를 과조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유와 설탕, 달걀노른자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는 커스터드를 만들 때는 노른자와 설탕을 충분히 휘핑한 다음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노른자에 조금씩 부어가며 섞어야 한다. 만약 뜨거운 우유에 노른자를 조금씩 넣는다면? 국에 실 계란을 푸는 형상이 된다. 푸딩류를 낮은 온도의 오븐에서 중탕으로 익히는 것도 자칫 과조리되어 부풀고 질겨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정통 까르보나라를 만들 때도 미리 섞어둔 노른자와 치즈에 뜨거운 구안치알레와 파스타를 넣고 정신없이 섞어야 한다. 파스타를 볶은 팬에 노른자와 치즈 섞은 것을 부을 셈이라면 일단 불부터 끄자. 과한 열을 집중적으로 가하는 대신 데워진 노른자가 파스타를 전면적으로 코팅하면서 맛을 내도록 만들어야 한다. 후춧가루를 듬뿍 뿌린 이 까르보나라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 걸까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레시피 기는 하지만, 혈관이 막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끔 먹고 싶어 지는 요리다.
많은 소스의 모태인 마요네즈 또한 노른자에 기름으로 부피를 더하고 맛을 가미해 만든다. 달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과 자잘한 단백질 분자가 안정적으로 유화된 상태인 노른자에 겨자, 식초, 소금 등을 넣고 기름을 조금씩 부어가며 유화하는 것이 마요네즈를 만드는 과정이다. 언제나 ‘분리’라는 치명적인 실패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물기 없는 깨끗한 볼을 사용해서 쉬지 않고 저으며 처음에는 기름을 조금씩, 갈수록 많이 부은 다음 적당한 시점에 젓기를 멈춘다는 점을 기억하면 만들기 쉽다. 제대로 터득하고 나면 오히려 일부러 분리시키는 게 더 힘들 정도다.
이처럼 다양한 요리에 활용 가능한 ‘최고의 소스’로서의 노른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도전해봐야 할 궁극적인 레시피가 있으니, 바로 노른자 간장절임이다. 신선한 달걀을 조심스럽게 깨서 노른자만 요리조리 이쪽저쪽 껍질로 옮겨가며 분리해 그릇에 담아보자. 이것이 바로 자연이 만들어낸 완벽한 유화 소스다. 그렇다면 이미 완벽한 노른자에 굳이 다른 요소를 첨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야말로 ‘간’만 맞춰서 소스로 사용해보면 어떨까?
노른자 간장절임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한 요소는 날로 먹는 만큼, 가능한 동그란 구형을 유지하는 신선한 노른자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작은 그릇에 랩이나 비닐을 깔고, 노른자 1개당 진간장 1큰술과 미림 1작은술을 붓는다. 살짝 섞은 다음 날달걀을 깨서 노른자만 분리하여 간장 소스에 넣는다. 랩을 들어 올려서 주머니 모양으로 만든 다음 실로 단단하게 묶는다. 이때 조심하지 않으면 노른자가 터지니 주의한다(알끈을 제거하면 더 잘 터지니 가능하면 그대로 둔 채로 작업하자). 냉장고에 넣어 4시간에서 하루 정도 절인 다음 꺼낸다.
예전에 한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바싹 구운 스팸을 밥 위에 둘러 담고 가운데에 노른자 간장절임을 얹어서 내놓았다. 물론 당연히 맛있겠지만 차마 그렇게까지 할 자신이 없어서 대신 아보카도 덮밥으로 전환했다. 밥을 담은 다음 깍둑 썬 아보카도를 한 켜 깔고 노른자 간장절임을 얹는다. 한 9시간 가랑 절인 상태로, 노른자에 은은한 검은 간장 빛이 돌고 겔화가 약간 진행되어 몽글몽글하다. 그런데 잠깐, 터진다! 빠르게 참기름을 약간 뿌린 다음 얼른 섞어버리자.
맛은 간장계란밥이 뻑뻑해진 느낌이다. 참기름 덕분에 매우 한국적인 맛이 나지만 정통 까르보나라를 좋아하는 이유인 노른자로 입술을 코팅하는 기분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 간도 적당하고, 따뜻한 밥에 골고루 묻은 노른자의 촉감이 좋고, 부드러운 아보카도와도 잘 어울린다. 노른자를 절이는 과정만 거치고 나면 정작 덮밥을 만드는 시간은 5분도 걸리지 않아, 전날 절여놓고 다음날 간단하게 차려 먹으면 좋을 법한 레시피다.
프라이를 부쳐서 밥이나 햄버그에 올리든, 수란을 만들어서 토스트에 올리든, 온천달걀을 삶아서 우동에 비비든, 자르는 순간 주르륵 흘러내리는 노른자에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게 하는 매력이 있다. 달리 ‘노른’자일까. 너무 익어서 퍽퍽한 청회색을 띠는 노른자를 다시 볼 일 없기를 조용히 바란다.
참고: 외로이 홀로 남은 흰자는 지단을 부치던가, 그릇에 부어서 찐 다음 비빔면에 곁들이거나 대충 썰어서 변종 타르타르소스를 만들던가, 머랭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베이킹에 마음껏 활용하자. 개인적으로는 머랭이라는 말을 들으면 요리사가 가는 지옥은 손으로 머랭 치는 곳이라는 얘기가 먼저 생각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식사로 해결하는 편이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