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사디야를 처음 먹은 곳은 이름도 그리운 베니건스였다. 뭔지도 모르고 인기 메뉴라기에 주문했다가 몬테 크리스토와 함께 고정으로 주문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두툼하게 썰어서 수북한 감자튀김과 함께 나오는 몬테 크리스토와 달리 이게 뭐야 싶을 정도로 겉으로 보이는 건 토르티야뿐이지만, 속에 든 건 치즈와 고기니 반드시 맛있을 수밖에 없는 메뉴였다. 유일하게 서러운 점이 있다면 사워크림과 과카몰리가 간장 종지만큼 담겨 나와서 듬뿍 발라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퀘사디야도 타코도 직접 만들어 먹으니 뭐든지 원하는 만큼 얹을 수 있다. 대체로 나의 요리하고 싶은 욕망은 이렇게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먹고 싶다는 욕구에서 기원한다. 과하게, 듬뿍, 너그럽게. 어린 시절의 미묘한 설움 덕분에 퀘사디야를 만들 때면 이탈리아 국기의 삼원색인 마르게리타 피자의 토마토, 모차렐라, 바질 토핑처럼 토마토 살사, 사워크림, 과카몰리를 대접으로 곁들여야 마음이 놓인다.
물론 업그레이드한 부분은 양념뿐만이 아니다. 아아, 토르티야를 주식으로 먹으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쌀을 사듯이 토르티야를 사고, 냉장고에는 항상 퀘사디야를 만들 재료가 있고, 아침 점심 저녁 상관없이 기름 하나 두르지 않은 팬으로 퀘사디야를 굽고 싶다. 밥 먹었냐는 말 대신 토르티야 먹었냐고 묻고, 얘네 집에 가면 밥을 안 준다는 소리 대신 타코도 안 준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물론 절대 그런 말을 들을 일은 없다. 지금도 밥공기 대신 타코 파티로 대접한 손님이 더 많으니까.
토르티야 요리 중에서도 퀘사디야의 장점은 카레나 수프처럼 냉장고 청소가 가능한 요리라는 것이다. 뜨겁게 데워서 녹은 치즈로 위아래 토르티야와 모든 재료를 엉겨 붙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그릴 치즈 샌드위치, 퐁듀, 피자, 기타 녹은 치즈를 즐길 수 있을 만한 모든 요리를 위해 언제나 서너 종류의 잘 녹는 치즈를 구비하고 있으니 냉장고에 대충 고기와 채소가 남아돌 만한 시기가 되면 퀘사디야를 만들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고기와 채소가 남아돌 때를 기다리기 전에 먹고 싶어 진다는 점이 되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퀘사디야를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 무려 3.5cm 두께의 스테이크를 구웠다. 왜냐면 냉장고에 남은 고기가 그것뿐이었으므로. 그리고 팔뚝만큼 긴 열무를 한 단 묶음에서 한 뿌리만 꺼냈다. 보통 시원한 물김치를 주로 담그지만, 열무에서는 루콜라와 비슷한 맛이 나서 여리여리할 때 생으로 먹어도 좋다. 이번에는 한 뿌리만 송송 썰어서 생으로 퀘사디야에 넣고 나머지는 손가락 길이로 잘라 피클을 담갔다. 여하튼.
3.5cm 두께의 스테이크에 페퍼 스테이크 시즈닝을 뿌려 센 불에서 한 면당 1분씩 총 6~7분 정도 구워서 휴지하고, 그 사이에 양파를 굵게 슬라이스해서 아삭아삭한 질감이 남아있을 정도로만 볶고, 스테이크를 저미고, 열무를 송송 썰고, 미몰레트 치즈를 다진다. 토르티야 위에 미몰레트와 파르메산 치즈를 뿌리고, 열무와 양파를 얹고, 스테이크를 올리고, 미몰레트를 더 많이 뿌린 다음 토르티야를 덮는다. 기름을 하나도 두르지 않고 달군 팬에 앞뒤로 바삭바삭하고 치즈가 녹을 때까지 굽는다. 뒤집을 때는 어딘가 전 부치는 기분도 약간 든다. 원하는 모든 양념을 곁들여서 먹는다. 맛있다! 오늘만큼은 당당히 나의 주식은 토르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열무 스테이크 퀘사디야
재료(3개 분량)
토르티야 6장, 열무 1뿌리, 스테이크 300g, 양파 1/4개, 미몰레트 치즈·파르메산 치즈·페퍼 스테이크 시즈닝 적당량씩, 식용유·버터·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법
1 스테이크는 페퍼 스테이크 시즈닝을 뿌린 다음 식용유와 버터를 달군 팬에 넣고 센 불에서 한 면당 1분씩 뒤집어가며 굽는다. 총 6~7분 정도 구운 다음 도마에 옮겨서 쿠킹포일을 덮어 10분간 휴지한다.
2 열무는 잘 씻어서 2cm 길이로 송송 썬다. 양파는 굵게 저며서 식용유를 두른 팬에 넣고 소금과 후추를 약간 뿌려서 부드럽게 볶는다.
3 미몰레트 치즈를 잘게 다진다.
4 토르티야 1장 위에 미몰레트와 파르메산 치즈, 열무, 볶은 양파, 스테이크를 순서대로 올리고 미몰레트 치즈로 마무리한다. 토르티야 1장을 위에 덮는다. 나머지 재료로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5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팬을 달궈서 ④를 넣은 다음 바삭바삭하고 뜨거워질 때까지 굽는다. 뒤집어서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구운 다음 꺼낸다.
Writing&Drawing 정연주
Blog: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http://nonameproject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