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연주 Dec 04. 2018

음식 사진, 찍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짧고 굵은 눈치 게임

어딜 가도 맛있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먹으러 다니다 보면 필연적으로 실망스러운 음식과 만나게 된다.


실망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타국에 나서면 흔히들 심하게 짜거나, 향신료가 비위에 맞지 않거나, 이름과 거친 영문 설명만 보고 예상한 음식과 너무 다르거나, 양이 많거나 적다는 이유로 실망하곤 한다. 그리고 지금은 명실상부 SNS의 시대. 또 하나의 실망 요인이 늘어났으니 '겉만 번지르르한 음식'이다.


음식을 먹을 때 사진을 찍는 파인가, 찍지 않는 파인가? 웹 상에 유출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던가 맛있는 상태일 때 빠르게 먹기를 바란다는 이유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이제 식사 전의 사진 촬영은 식사 속도만큼이나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맞춰야 하는 사회적 요소가 되었다. 사진을 전혀 찍지 않는 사람, 음식이 예쁘면 찍고 평범하면 데면데면하게 구는 사람, 남이 찍으면 따라 찍는 사람, 마음은 굴뚝같지만 꼭 죄다 먹어 치우고 나서야 사진을 안 찍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 예쁘건 말건 기록 삼아서 일단 빠르게 찍고 보는 사람, 예쁜 곳만 찾아가서 예쁜 사진을 남길 때까지 줄기차게 찍는 사람. 성별과 연령, 사회적 지위 등을 막론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찍건 찍지 않건, 빨리 찍건 공들여 찍건, 본인의 성향과 맞는 사람을 만나면 음식을 차리고 먹기 직전까지의 짧은 순간을 편안하게 넘길 수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예쁘건 평범하건 기록 삼아, 그리고 그림용 자료를 위해 일단 찍고 보는 파다. 같이 둘러앉은 사람들이 모두 찍는 분위기라면 조금 천천히, 찍지 않는 분위기라면 순식간에 찰칵 찍고 빠르게 수그러든다. 남의 손이 찍히거나 음식 형태가 망가져도 개의치 않으므로 누가 손을 뻗다가 멈칫하면 '아냐 아냐 먹어먹어'라고 독려하지만, 아무래도 누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면 다들 신경을 쓰기 마련이니 역시 촬영 습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때가 제일 마음이 편하다.


어쨌든 사진을 찍고 SNS을 하다 보면 유난히 음식이 예쁜 가게가 눈에 띄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들 하니 이왕이면 겸사겸사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예뻐서 찾아간 가게가 맛이 없으면 다른 이유로 기대하고 갔을 때보다 훨씬 깊게 실망하기 마련이다. 이국적이길 바랐는데 평범하거나, 제대로 느끼하길 바랐는데 이도 저도 아니거나(가끔 미친 듯이 느끼한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스트레스겠지), 제일 단순하게는 굉장히 맛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그럴 때도 실망을 한다. 하지만 모양만 예쁘고 맛이 엉망인 음식을 만나면 그 어떤 이유로 실망할 때보다 기분이 착잡하다. 


음식을 과시용으로 소비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 제대로 만든 음식에 대한 조예가 사라져 가는 씁쓸함? 무엇보다 평범하게 실패한 음식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맛 내기를 무시한 요리에 대한 가벼운 경멸이 섞인다.



SNS에는 국경이 없으니 해외여행 중에도 그저 예쁠 뿐인 식당과 만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신주쿠에 따끈따끈하게 문을 연 서점 겸 카페에 들린 것은 인스타그램에서 본 블랙 라테에 홀렸기 때문이었다. 사용료를 내고 일정 시간 머무를 수 있는 서점을 겸한 카페로, 음식은 전부 까맣게 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노르스름한 갈색이 일절 섞이지 않은 새카만 라테, 아마 오징어 먹물을 섞었을 까만 식빵을 도화지 삼아 알록달록하게 아보카도나 딸기를 얹은 토스트. 이때는 하여튼 소위 '힙한' 재료인 아보카도만 보면 홀리는 내 마음이 화근이었다.


다행히 라테는 맛있었지만 나무 상자로 이루어진 의자는 앉기 불편했고(앉기 불편한 카페라니, 책을 보면서 오래 눌러앉을까 싶어서 걱정인 걸까), 낮은 테이블마저 몇 개 없어서 접시를 둘 곳이 여의치 않았다. 접시를 무릎에 얹고 아보카도를 올린 토스트를 칼로 뒤뚱뒤뚱 썰어야 하는 걸까? 식빵은 부드러워서 들어 올리면 수북한 아보카도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는데, 예쁜 토스트를 손으로 반 접어서 와구와구 먹어야 하는 걸까? 무엇보다 식빵에 아보카도를 올리고 소금, 후추에 치즈를 뿌렸을 뿐 별다른 맛이란 게 없었다. 음, 나 여기 왜 왔지. 사진은 예쁘게 찍었지만 SNS에 올리고 싶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자 왔기 때문에 나를 탓할 사람도, 신경 써야 할 사람도 없어서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털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 01화 혼밥족의 혼밥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