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치열한 식사
혼밥, 그러니까 혼자 먹는 밥이라는 뜻의 줄임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단숨에 무슨 뜻인지 납득하면서 동시에 의아했다. 물론 어떤 현상이건 단순하고 간결하게 정의한 단어를 만들면 정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굳이 혼밥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는 발상 자체가 지금도 의문스럽다. 나에게 식사란 기본적으로 '혼밥'이고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이 특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먹는 식사를 기본값으로 인지하던 시절이 있긴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집에서는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학교에서는 경보하듯이 우르르 몰려가서 여럿이 함께 급식을 먹었으니까. 엄밀히 말해서 혼자 밥을 먹을 기회가 별로 없는 시기다. 하지만 대학에 오고 독립을 하면서 누군가가 내 밥을 챙기는 상황이 사라지며 자연히 식사의 기본값은 혼밥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를 만나면 같이 우동을 먹고, 회사에 다닐 때는 점심시간이 되면 옆자리 대리님을 쫄랑쫄랑 따라가 오징어볶음을 시키지만 그날의 할 일이 끝나고 혼자 있는 공간으로 돌아오면 자연스럽게 나 혼자 내 밥을 챙기며 혼밥을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밥에 구애되는 한국인답게 '밥 먹었어?'라고 물어볼 때 내가 떠올리는 식사 장면은 당연히 혼밥인 것이다. 밥=식사=혼밥. 이건 실제로 어느 쪽의 빈도수가 높은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가령 여럿이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잦아지거나 거듭되면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서 혼자 밥을 먹는 시간을 가진다. 이를테면 삶을 일상으로, 기본으로 되돌리는 의식과 같다.
아무리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과 만난다 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으면 먹는 행위 자체보다 대화나 분위기에 집중하고 음식이 상대방의 입맛에 맞는지, 식사 속도가 너무 다르지 않는지 등 여러 정보를 인지하게 된다. 결국 음식의 맛이 덜 느껴지고 기억에 흐릿하게 남는다. 그래서 다시 식사 자체에 집중하는 의식을 거쳐야 비로소 '밥을 먹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혼밥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혼자 떠나는 여행은 정말로 먹고 다니기 좋은 기회다. 코스도 메뉴도 전부 내가 짜기 나름! 맛없다고 나를 탓할 사람도, 그건 싫다고 퇴짜를 놓을 사람도, 대충 먹고 때우자고 줄 서서 기다리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없다. 어제 먹은 거 맛있었다고 오늘 또 먹어도 눈치 볼 사람이 없다. 무엇보다, 순 먹고만 다니느냐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없다.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 제로. 최고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편하고 만만하기만 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에서 나한테 제일 까탈스럽게 구는 건 나 자신인 탓이다.
세상 제일 까다로운 혼밥 먹기
사실 나는 다른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적당히 잘 맞추는 편이다. 정 먹고 싶은 게 따로 있어도 '나중에 혼자 와서 먹지 뭐'라고 생각해버리니까. 하지만 나와 내가 타협하는 과정은 실로 길고 복잡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먹고 싶은가? 무엇을 마시고 싶은가? 가령 스타벅스에 간다고 치자. 더운 여름날이면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만약에 더워서 민소매에 짧은 바지 차림인 데다 걸칠 웃옷이 없고 냉방이 강력한 카페에 한동안 앉아 있을 예정이라면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야 한다. 거기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면 시럽을 잔뜩 넣은 음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녹진한 치즈케이크나 브라우니를 먹을 거라면 이것도 달고 저것도 달아서 목이 두 배로 마를 테니 다시 커피로 노선을 조정한다.
이렇게 몸 상태나 스케줄, 이전 식사, 심지어 기분에 따라서 아주 미묘한 차이로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 달라지는 과정은 마치 시시각각 바뀌는 퍼즐 같다. 아주 딱 떨어지는 정답을 찾으면 희열이 느껴진다. 만일 이걸 누군가에게 실시간으로 줄줄 털어놓는다면 분명 학을 떼고 너랑 커피 안 마신다고 도망칠 것이다. 요컨대 제일 맛의 습관을 관찰하기 좋은 대상도, 실제로 관찰이 가능한 대상도 나 자신이다.
그래서 여행 중의 혼밥은 조용해 보이지만 스릴의 연속이다. 그때그때 정말로 무엇을 먹고 싶을지는 그 순간이 되어야 알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가고 싶은 식당을 끼니 횟수의 서너 배 정도 조사해 둔다.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는 가이드북을 스크랩하고 지도를 프린트해서 맛집 주소까지 꼼꼼하게 기록한 노트를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구글 맵과 즐겨찾기 목록, 캡처 사진을 구비한 스마트폰만 있으면 되니 참 좋은 세상이다. 자고로 설득과 타협은 정보의 싸움이니 준비가 철저해야 스스로를 설득해서 최대한 성공적인 혼밥 여행을 할 수 있기 마련이다. 한 달 전의 나(정보 수집)와 오늘 아침의 나(경로 설정), 지금의 내가(메뉴 결정) 이룩한 협동의 결과다. 아, 치열해라.
혼자서 프렌치 런치
나는 사전에 머릿속(과 구글맵)에 근처 맛집을 거미줄처럼 저장해 두었다가 여행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반쯤 잊어버린다. 그리고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 이 근처에 있다더니 여기 있네! 그러다 진짜 우연히 생각지도 못한 맛집을 만나면 더할 나위가 없고, 정 배가 고파지면 빨리 핸드폰을 꺼내면 된다. 억지가 반이지만 나만 즐거우면 되지. 나름 우연이라는 요소를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런 즉흥용 맛집은 질만큼 양도 중요해서 잔뜩 알아두어야 하지만, 미리 예약을 할 때는 동선과 예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하게 레스토랑을 선별한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프렌치 레스토랑의 런치 메뉴는 여행을 가면 한 번쯤 찾아가 볼 만하다. 우선 런치는 디너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그에 비례하여 코스 규모가 과하지 않아 여러 모로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보통 드레스 코드를 적당히 제한하는 곳이 많으니 가벼운 정장이나 원피스, 구두를 캐리어에 한 벌 때쯤 챙겨가야 한다. 물론 이제 구두를 신으면 오래 걷지 못하는 비루한 체력이 되었으므로 레스토랑 근처에서 신발을 멋없게 우물쭈물 갈아 신기는 하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근처 츠타야 롯폰기점 화장실에서 구두를 갈아 신고 장 조지 도쿄로 찾아갔다. 이곳의 1층에는 오픈 키친과 더불어 바 자리가 대략 일곱 석 정도 마련되어 있다. 2층에는 테이블 석이 있지만 나는 벨리니를 마시면서 키친을 구경하고 싶었다. 그리고 단품 하나가 코스 메뉴 가격에 육박하는 장 조지의 시그니처 메뉴 에그 캐비어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여기는 오픈 키친 중에서도 정말 초밥 가게에 가까울 정도로 주방과 카운터가 딱 붙어 있어서, 애써 눈을 돌리는 쪽이 더 어색해 보일 지경이네. 아무리 그래도 매일 같이 누가 일하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건 싫지 않을까. 퍼포먼스도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시선을 감수하고 멋진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미덕이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내가 누가 쳐다보는 걸 싫어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나.
음식에 대한 감상과 잡생각을 오가는 사이 카운터에서 제일 먼 스테이션에서 셰프가 양고기와 관자를 그릴에 올렸다. 주방에서 제일 뜨거운 곳에서 단백질이 변형되는 모습만큼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장면도 없다. 물론 오픈 키친이 아니었다면 저 아드레날린은 그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치솟고 가라앉아 매우 정제된 형태로 고기에 집약되어 눈 앞에 차려졌을 것이다. 버섯 라구 위에 얹은 부드러운 양갈비를 썰어 입 안에 넣으면서 한 순간도 빠짐없이 음식에 대한 생각만 했다. 양고기의 질감, 온도의 조화, 버섯 라구의 감칠맛. 내가 직접 만드는 것을 제외하면 혼밥보다 더 요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