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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주 Mar 05. 2019

향긋짭짤 토마토 다시즈케 만들기

일곱 코스 디저트에서 만난 토마토 절임

일본식 가쓰오부시 국물에 절인 토마토, 토마토 다시즈케. 이 음식을 본 것은 신주쿠의 디저트 전문점 재니스 웡 Janice Wong에서 여섯 번째 코스로 나온 접시 위였다. 맹세컨대 칵테일을 페어링한 디저트 7코스를 먹겠다고 예약을 할 때까지만 해도 거기서 토마토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도쿄에 갈 때면 주로 신주쿠에 묵는다. 수십 개의 지하철과 전철, 기차가 교차하는 신주쿠 역은 정말로 미로 같아서 잘못하면 목적지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아직도 빙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밖으로 나와서 길을 찾는다. 자주 서쪽 출구로 나와서 남쪽 출구를 향해 걸을 때마다 생각했다. 여기는 대체 언제까지 공사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마침내 지리한 공사 과정이 끝났을 때 신주쿠 버스 터미널과 함께 복합 쇼핑몰인 뉴우먼Newoman이 문을 열었다.


요즘은 어느 나라건 대형 쇼핑몰이 문을 열면 과연 얼마나 매력적인 레스토랑을 론칭했는가에 초유의 관심이 몰린다. 버스 터미널과 붙어 있는 특성상 역 내부와 역 외부로 각종 맛집이 분리된 뉴우먼에도 미국의 유명 로스터리 카페 블루 보틀 커피, 조엘 로부숑의 베이커리, 화과자 전문점 토라야 카페 등이 입점했다.



그리고 그중에 싱가포르의 유명 파티시에 제니스 웡의 디저트 전문점이 있다. 색다른 형식의 디저트를 즉석에서 예술적인 형태로 담아내어 선보이는 곳이다. 디저트만 연속으로 일곱 코스를 내고, 각 디저트에 어울리는 칵테일을 짝지어서 함께 맛볼 수 있다. 예약 대행 사이트에서 디저트 7코스와 칵테일 페어링 7코스 중 후자를 선택하는 데에는 삼 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디저트! 칵테일! 뭘 먹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이 내 길이라는 것은 알겠어!


그리고 그 결정을 후회할 일은 없었다. 예약 당일 낮에는 살짝 갈등을 했다. 단것만 일곱 개씩 이어서 먹을 수 있을까? 속이 부대끼지는 않을까? 설탕과 알코올의 해장 삼아 라멘이라도 한 그릇 먹으면서 마무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헛된 고민이었다. 아뮤즈Amuse로 시작해서 전채와 메인, 퍼포먼스가 제일 화려한 디저트, 프티트 푸르Petit Four로 이어지는 일곱 코스가 짜임새 있는 식사로 손색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가서 널찍한 콘크리트 바에 앉으니 오늘 나올 코스가 순서대로 적힌 날렵한 메뉴판 두 장이 눈에 들어왔다. 디저트와 칵테일로 나뉜 메뉴판에는 각 코스의 이름 아래 아무런 부가 설명 없이 들어간 재료만이 나열되어 있었다. 예컨대 첫 코스인 시트러스 가든 아래 코나츠, 화이트 아스파라거스, 오렌지 꽃물, 딜, 요구르트라는 단어가 일본어와 영어로 무뚝뚝하게 적혀 있는 형식이다. 칵테일과 디저트를 만드는 퍼포먼스까지 식사의 일부가 되는 분위기라 빼곡하게 장식한 리큐어 병부터 바텐더의 손놀림까지 둘러볼 곳이 많았지만 한동안 턱을 괴고 홀린 듯이 메뉴판을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실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 구절 같은 메뉴였다.


고야 수플레. 고야와 매실절임, 매실, 아몬드 밀크 두부, 리코타 치즈.

봄양파 타르트. 봄양파, 허브, 머스터드, 유자, 달걀.

퍼플 카르보나라. 블랙커런트, 판체타, 수제 파스타, 파르메잔 치즈, 후추.


첫 코스에 곁들여 나온 재니스 웡 특제 파나셰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메뉴를 봐도 도무지 뭘 먹게 될지 모르겠는데? 고야는 씁쓸한 채소가 아니었던가? 설마 하니 카르보나라는 모양만 파스타고 맛은 달콤한 디저트겠지? 블랙커런트가 들어가잖아. 가만, 그런데 판체타랑 파르메잔 치즈도 넣었네?


…알 수가 없네….


하지만 딜 그라니테 아래 몽글몽글한 요구르트 무스와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깐 시트러스 가든을 맛보자 모든 걱정은 접어둘 수 있었다. 새파란 그린 아스파라거스와 달리 풋내가 없는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새콤달콤한 코나츠, 산뜻한 딜과 뻔뻔스러울 정도로 잘 어울리는 디저트였다. 많아야 두 모금짜리인 파나셰는 생강 향이 강해서 더운 날씨에 축 처진 정신을 초반부터 확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그런 첫인상은 끝까지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모두 전반적으로 단맛에 방점을 두면서 온도와 질감이 조화롭고 화려한 디저트 본연의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짠맛이나 감칠맛, 대조적인 풍미를 가미해서 지루하지 않고, 맛의 높낮이가 자연스러운 코스 식사답게 이어졌다. 꼭 한두 가지씩 끼어 있는 디저트 답지 않은 재료가 어떻게 어우러질지 흥미진진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토마토 무스에 토마토 젤리를 얹어 톡 터지는 토마토 껍질의 질감을 구현한 여섯 번째 코스에서 나는 토마토 다시즈케를 만나고 말았다.



토마토. 참으로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식재료다. 나는 굳건하게 채소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토마토 티라미수처럼 어째서인지 맛있는 디저트로 승화되기도 하고, 순전히 색깔 때문에 과일 생크림 케이크에 장식으로 올라가는 통탄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은 생토마토를 달콤한 생크림 케이크에 온갖 과일과 함께 올리다니! 언어도단에 형태가 있다면 토마토가 올라간 과일 생크림 케이크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알고 보니 제대로 된 파스타였던 퍼플 카르보나라에 이어진 스트로베리 토마토는 마냥 달기만 한 메뉴가 아니었다. 토마토와 딸기가 어울리는 이유는 색깔뿐만이 아니다. 잘 익은 토마토와 딸기는 퓨라논이라는 화합물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토마토 무스 양 옆으로 딸기 아이스크림과 올리브 오일에 절인 딸기, 손톱 반 만한 마이크로토마토, 절인 토마토를 장식한 스트로베리 토마토는 단맛과 짠맛을 적당한 수준으로 가감해서 토마토와 딸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메뉴였다. 반투명해진 절인 딸기에 이어서 껍질을 벗긴 절인 토마토를 깨무는 순간, 오늘 맛본 중에 최고로 강한 감칠맛과 훈연 향이 터져 나왔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다시를 얼마나 진하게 뽑은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신기한 건 그런데도 토마토 무스와 잘 어우러졌다. 로즈메리를 얹어서 곁들여 나온 스트로베리 우즈 칵테일로 미각을 정돈하면서 생각했다. 토마토를 오일이 아니라 다시에 절여 봐야겠다고.


그동안 토마토를 절일 때는 항상 올리브 오일을 사용했다. 날이 잘 드는 과도로 토마토에 살짝 칼집을 내고 끓는 물에 잠깐 데친 다음 껍질을 모조리 벗긴다. 용기에 담는다. 소금, 후추, 모둠 허브(말린 것 무방)를 잔뜩 뿌리고 올리브 오일을 콸콸 붓는다. 잠기도록 부으면 오일 낭비가 심하니 3분의 2쯤 잠기도록 하고 가끔씩 뒤집어 준다. 올리브를 절일 때는 레몬 제스트나 마늘을 넣기도 하지만 토마토를 절일 때는 아무래도 허브만 넣어 깔끔한 맛을 내는 편이 낫다.


토마토 다시즈케는 올리브 오일에 절일 때처럼 껍질을 벗긴 다음 아주 진하게 뽑은 가다랑어 포 다시에 간장과 소금으로 가볍게 간을 한 다음 국물이 아직 뜨거울 때 토마토를 넣어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된다. 토마토가 잔뜩 머금은 진한 다시가 타고난 과즙처럼 팡 터져 나오는 맛은 먹어 봐야 안다. 여름철에 차갑게 내기 딱 좋다. 김치찌개나 어묵탕에 토마토를 넣는다는 이야기는 '괴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슬슬 솔깃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 사는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 마련인가 보다.



토마토 다시즈케


재료

방울토마토 300g, 가다랑어포 국물 300ml, 간장 2작은술, 맛술 1큰술, 설탕 1작은술, 청주 1작은술, 소금 한 꼬집


만드는 법

1 냄비에 가다랑어포 국물, 간장, 맛술, 설탕, 청주, 소금을 담고 한소끔 끓여서 식힌다.

2 토마토는 씻어서 꼭지를 제거하고 십자 모양의 칼집을 낸다. 끓는 물에 15초간 데친 다음 건져서 얼음물에 담가 식힌다.

3 토마토의 껍질을 벗긴다. 잘 벗겨지지 않으면 10초 더 데친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1의 국물에 담근 다음 냉장고에서 하룻밤 재운다.


* <온갖 날의 미식 여행> 단행본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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